아침 7시에 인천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했다. 16박의 태국 방랑길에서 돌아온 길이다. 방랑을 떠날 때도 좋았지만 귀국도 신난다.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것도 일상을 떠나는 것 못지않은 신나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제 갈등의 순간이다.
갈등은 여기서 어떻게 집에 가느냐는 것이다. 선택의 메뉴가 너무 많다. 익숙하지 않은 외국의 메뉴가 많은 음식점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큰 짐이 없다면 당연히 공항철도를 이용하여 서울역까지 이동하고, 환승하여 4호선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이 습관적인 이동이다(어르신 완전 무료). 삼선교역에서 내려 마을버스 타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올라가면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15kg이나 나가는 골프백이 있다. 골프백을 들고 서울역 환승을 할 수는 없다. 공항부터 집까지 택시를 탈 것이냐? 공항철도로 서울역까지 가서 택시를 탈 것이냐가 갈등의 핵심이다(5만 원 정도의 차이가 있을까?).
또 다른 옵션은 리무진 버스를 타고 정릉부근에 내려 택시를 타는 것도 있으나, 팬데믹 이후에 리무진버스를 탄 기억이 없다. 시간 간격이 너무 벌어졌고, 정릉에서 공항 갈 때는 좌석의 보장도 없다.
진정한 방랑자라면 조금 일찍 집에 도착하는 것이 아무 의미 없다. 16박을 방랑했는데 오늘도 방랑 중이라 생각하면 된다. 아침 출근길이라 택시도 공항에서 집까지 한 시간 반 이상 걸린다고 내비가 알려준다. 의미 없는 것에는 돈 쓰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방랑자 속이 좀 불편하다. 아침마다 화장하는 것은 습관이다. 골프백이 실린 카트를 밀고 장애인 화장실(카트와 함께 입장 가능)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화장하고, 옷(아직 태국 패션이다) 갈아입으면 생각이 정리될지 모른다.
쓸데없는 갈등에 인생의 귀한 시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젊은 사람들은 생각이 많다. 그 생각이란 것이 결국은 갈등이다. 무수한 결정을 하고, 결정한 대로 실행하는 것이 인생이다. 결정할 것 없이 습관으로 점철된 일상을 살다가, 일상을 벗어난 것이 생기면 생각하고 고민하다 결정하겠지. 보통 결정은 시간에 구속된다. 소위 due day란 것이 있다. 직장을 때려치울지 고민하기도 하고, 이직할 직장을 망설이기도 하고, 결혼할 배우자를 고민할지도 모른다. 젊은이에게 직장이나 결혼할 상대보다 더 중요한 결정이 있을까?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니 이직이 자주 발생하고, 과연 남들처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것이 최선인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은퇴한 어르신은 이직할 직장도 없고, 결혼할 가능성도 없다. (아닌가? 지금 연애 중인 친구도 있으니 있을지도 모르나?) 그렇게 중요하고 시급한 고민거리는 없다는 얘기다. 방랑에서 돌아와 집에 빨리 갈 이유가 없다. 객사가 꿈이고( https://brunch.co.kr/@jkyoon/551 ), 낭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무엇이 급하단 말인가?( https://brunch.co.kr/@jkyoon/572 ) 장애인 화장실에서 화장하고 옷 갈아입으니 정신이 맑아졌다. 인천공항(이런 공항 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참 좋은 장소다. 야간 비행을 마치고 띵한 머리를 맑게 해 주는...
서울역 가는 직통열차도 아닌 일반열차(십여분 느리다)에 골프백을 실었다.
인생은 주어진 시간인데 갈등하느라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몇 번 더 방랑하다 보면 인천공항에서 집에 가는 것도 습관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p.s. 집에서 공항 갈 때는 서울역까지 택시 타고 가서 서울역 공항터미널을 이용했다. 공항터미널에서 골프백 부치고 직통열차로 공항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