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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Aug 20. 2023

낭인(浪人)

낭인이 되렵니다.


낭인의 사전적 정의는 '일정한 직업이 없이 허랑 하게 돌아다니며 날을 보내는 사람'이랍니다.


일본에서는 낭인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하네요. 하나는 낭인 무사입니다. 의탁할 주인 없이 떠도는 사무라이를 가리킵니다. 얼마나 자유롭겠어요. 사무라이의 실력은 오직 검술뿐입니다. 훌륭한 실력을 갖춘 낭인 무사 얼마나 낭만적입니까? 언제 더 센 놈 만나 죽을지 모르지만, 영화나 만화의 주인공은 절대 안 죽으니까요.


또 하나는 재수생을 가리킨답니다. 미래가 창창한 그러나 미래가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재수생을 낭인이라고 한답니다. 소속이 없어서 그렇게 불렀다고 봐야겠지요. 일본은 특히 소속에 민감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니까요.


한국사람들도 소속에 민감합니다. 조직에서 떨어져 나가면 엄청 불안합니다. 조직과 싸운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인생을 걸고 해야 하지요. 그만큼 조직은 무서운 것이고 그 조직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MZ세대는 좀 다르다고 하네요. 자의건 타의건 퇴직한 사람들은 새로운 조직을 찾아 나섭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제일 클 수 있지만 아침에 눈뜨고 갈 곳이 없다면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방랑, 유랑, 부랑 모두 같은 뜻입니다. 방랑은 중립적 의미를 갖고 있고, 유랑은 긍정의 의미를 부랑은 부정의 의미를 갖지요. 그러나 소속 없이 떠도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른다고 봐야지요. 곧 정년(2024.2.29 하필 윤년이네)을 앞둔 저는 이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이제 무엇을 하실 건가요?'


하긴 뭘 해요. 더 이상 일하지 말라고, 노동하지 말라고 정년이 있는 것인데... 전 방랑, 유랑, 부랑하는 낭인이 되렵니다. 동가숙 서가식하며 돌아다닐 생각입니다. 그런데 습관이 무섭습니다. 자던 침대에서 자야만 편히 자고, 싸던 화장실에서만 싸야 편안하니 말입니다. 제 아버지는 만 55세에 은퇴하시고 94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거의 집에만 계셨습니다. 물론 마지막 10년 이상은 거의 누워만 계셨고요. 눕기 전 건강수명이 제법 많이 남아 있을 때에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골프 치고, 친구들과 점심식사하며 반주하는 것 말고는 국내 여행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집이 제일 편하다며...


집이 제일 안전하지요. 집이 제일 편안하고 안락하지요. 특히 심리적으로... 그렇게 많은 시간을 집에서 하루 놀고 하루 쉬며 보내시고 나중에는 제게 억울하다고 하셨어요. 저는 짓궂게 되물었지요. 무엇이 대체 억울하냐고? 아버지가 시간이 없었어? 돈이 쪼들렸어? 아니면 아들 둘 자식 걱정할 일이 있었어? 무엇이 아버지 인생을 억울하게 만들었냐고? 대답하지 못하셨어요. 서운해하셨던 것 같아요. 본인의 생각에 아들이 동의해주지 않으니...


억울한 인생이 되지 않도록 실컷 방랑, 유랑, 부랑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안락한 습관과 중독( https://brunch.co.kr/@jkyoon/411 )이 장애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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