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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l 30. 2016

아버지의 꿈이 가족여행이다.

5억짜리 생명보험 들고 오토바이 탈까?


생명보험회사 동영상 광고였다. 많은 베이비부머 아버지들이 공감하여 한 때 페이스북에서 여기저기 공유되던 것이다. 고등학교 교실에서 시작한다. 고등학생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종이에 써보라고 한다. 소위 bucket list 를 쓰라는 것이다. 다 쓴 학생들에게 묻는다. "당신이 살 날이 일년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할 때 만약 이 꿈들을 선택하겠니? 아니면 5억을 선택하겠니?" 모든 학생들은 당연히 자신의 꿈을 선택한다. 5억이란 돈이 얼마나 큰 돈인지는 관심 밖이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영상을 보여준다. 똑 같은 상황의 질문을 학생들의 실제 아버지에게 한 것을 녹화한 것이다. 모든 아버지들은 살 날이 일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당신들은 가족을 위해 5억원이란 돈을 선택한다. 교실은 한순간에 감동과 눈물의 바다가 된다.

결국 "아버지들이여! 5억원 짜리 생명보험을 가입하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동영상광고에서 내가 특히 주목한 것은 많은 아버지들의 꿈이 가족여행, 아들과 배낭여행 및 아들친구들과 맥주마시기 등이라는 것이다. 아버지들의 꿈은 참 소박하다.


터키에 입국할 때 두시간 이상 걸린 입국심사의 긴 줄에서 내 앞에 가족여행객이 있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것 같은 아들 둘과 엄마 아빠였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자유로운 셋과 달리 아빠는 무거울 것 같은 검은 배낭 하나를 메고 있다. 온갖 중요한 살림살이들이 거기 다 들어 있을 것이다. 입국심사를 받기 전의 긴장감도 아마 아빠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자유배낭여행객이라면 지금 아빠의 머리속은 복잡할 것이다. 예약한 숙소를 잘 찾아갈 수 있을까? 출구를 나가자마자 공항에서 환전을 할까? 택시타는 시스템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혹시라도 소매치기나 사기꾼은 없겠지 하며...

아버지들은 가족여행하고 싶다. 내가 얼마나 든든한 집안의 가장인지를 보여주고 싶다. 자기를 의지하고 사는 아내와 자신의 DNA 를 갖고 있는 자식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먹고 싶다는 것 다 먹여주고, 사고 싶다는 것 다 사주고 싶다. 그것이 아버지의 역할이라고 확신한다.

비행기 기장이란다. 일학년 일학기에 학사경고 받은 아들에 대하여 지도교수인 나와 면담을 하고 싶다고 전화하신 것이다. 자신의 비행일정과 내 시간을 맞추고 싶단다. 저는 토요일 일요일에도 학교 나오는 날이 많으니 먼저 가능하신 시간을 말해보시라 했다. 어느 한가한 토요일 오후에 내 연구실을 찾아 오셨다. 조니워커 블루 한병을 들고서...

나는 토요일이 항상 제일 한가하고 여유롭다. 이즈음은 아들 낚시따라 다니느라 바쁘지만... 학생의 아버지와 면담하기는 처음이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 한번도 없었으니...

보잉 777 기장인 아버지는 아들과 여행을 많이 다녔단다. 대학에 입학했는데 학사경고를 받았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으신다. 철 없는 일학년 때 이런 경우 아주 많다고 했다. 일학년 끝나면 바로 군대 보내라고 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군대 갔다오면 철들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고 했다. 아들과 좋은 시간 많이 가지시라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했다.

몇년이 지난 후 다급한 아줌마 전화가 왔다. 학교로 찾아 오시겠단다. 무슨일이냐고 물으니 아들이 학사경고를 받았는데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무슨 소리하는지 하나도 이해가 안가서 학교 안가겠다고 한단다. 일단 학생 이름을 물어 학사정보시스템을 열었다. 몇년 전 아버지와 상담한 그 학생이다. 그 간의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들이 군대가 있을 때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단다. 한강에서 제트스키 타다가...  어머니가 학교 오실 것 없고 아들을 보내라고 했다. 같이 여행도 다니고 모든 것을 챙겨 주시던 아버지가 예상치 않게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상실감이 클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아직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였을 것이다. "넌 군대까지 갔다왔으니 더 이상 클게 없어. 마음 굳게 다잡고 졸업을 해서 어머니 걱정을 덜어줘야지." 이 말 밖에는 해 줄 말이 내겐 없었다. 전화로 어머니에겐 정신과 상담을 한 번 받아보시라고 했다. "High risk high fun." 이지만 자식들이 다 성장하기 전에는 위험한 것을 삼가야 할까보다. 내 자식들은 다 큰거지?

이 순간 오토바이 한대가 쌩하고 내가 탄 버스를 추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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