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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n 15. 2024

우도에서 야영 2


1인용 텐트지만 혼자서 세우기가 쉽지 않다. 바람이라도 불면 더 힘들 텐데 다행히 오후 다섯 시 바람이 불지 않는다. 태양은 마지막 열일을 하느라 뜨겁게 내리 꽂히고 있다. 둘이서 타피를 마주 잡고 텐트를 세우고 있는 커플이 보인다. 괜히 부럽다. 텐트주머니에 붙어 있는 매뉴얼을 참고하며 간신히 텐트를 설치했다. 텐트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땅에 박는 펙(?)이 문제다. 땅이 딱딱하면 펙이 들어가지 않는다. 망치로 두드려야 하는데 망치가 없다. 주변의 돌을 주워 망치 대용으로 사용했다. 화상을 입은 왼손 엄지손가락이 아직도 완전히 낫지 않았다. 2주일 전에 한쪽만 달궈진 황동접시를 왼손으로 받다가 데고 말았다. 피부의 재생력도 어르신이라 떨어지는 것 같다.


티셔츠가 흠뻑 젖었다. 긴 바지 속 팬티도 축축하다. 샤워를 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공중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세면대에서라도 샤워를 할까? 비양도 입구에 편의점이 있다. 편의점 2층은 게스트하우스다. 시원한 이온음료 한 병을 비우고, 2층 게스트하우스에서 샤워할 수 있냐고 물었다. 손님이 없어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안 한단다. 그러면서 샤워할 수 있는 근처 민박집을 소개해준다. 찬물 샤워는 오천 원이란다. 더운물 샤워는 육천 원. 샤워를 하고 나니 살 것 같다. 맥주가 당긴다.


우도 관광은 대부분 당일치기다. 다섯 시가 넘어 모든 배가 끊기면 거의 모든 상점과 음식점이 문을 닫는다. 설마 했는데 저녁식사를 할 음식점이 없다. 캠핑장 옆 해녀의 집도 문을 닫았고, 성게비빔밥을 먹었던 비양도 입구 음식점도 닫았다. 늦은 점심을 잘 먹어서인지, 힘들게 땀내며 텐트를 쳐서인지 일곱 시가 되었는데 전혀 배가 고프지 않다. 나중에 먹을 요량으로 편의점에서 맥주와 안주거리(치즈육포와 꿀땅콩)와 삼립호떡을 샀다. 결국 안주와 호떡이 저녁식사가 되고 말았다.


연두색의 똑같은 2인용 텐트가 쌍둥이처럼 2개가 낮부터 이미 쳐져 있었다. 일몰 시간 즈음에 젊은 남녀 커플이 돌아왔다. 저녁을 먹더니 각자 다른 텐트로 들어간다. 무슨 관계지? 쓸데없는 궁금증이 발동하지만 차마 물을 수는 없다. 똑같은 텐트를 함께 구입해서 따로 잔다? 어르신 부부는 각방을 사용하는 것이 편하다고도 하더구먼 저들은 어르신이 아니다.


캠핑장이 넓고 바닷가 전망 좋은 자리도 많은데, 주차장과 화장실 가까운 곳에 텐트가 있다. 그럴듯한 테이블과 의자도 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커플이 자리 잡았다. 자세히 보니 여인이 앉아 있는 캠핑 의자 옆에 지팡이가 걸쳐져 있다. 화장실을 가는 여인을 남자가 부축을 한다. 여인의 왼쪽 반이 끌려가고 있다. 뇌졸중으로 왼쪽 반쪽을 잃은 여인이다. 저렇게 불편한 몸을 끌고 캠핑이라니...  남자가 하자고 했을까? 여인이 하겠다고 했을까? 거동이 불편하여 주차장과 화장실이 가까운 자리에 텐트를 쳤구나 했다.


서쪽 하늘로 내려가는 일몰은 장관이었다. 순간을 잡으면 일출인지 일몰인지 모를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서쪽 하늘에 구름이 없다. 주홍빛 태양이 열일하고 쉬러 간다.


일몰 후의 여명이 조금 남아 있을 때 젊은 남자 셋이 오더니 텐트 칠 자리를 찾는다. 셋이 와서 각자 자신의 텐트를 세운다. 친한 친구 사이는 아닌가 보다. 그러고 보니 나이차가 좀 있어 보인다. 텐트를 세우고 테이블과 의자 등을 셋업 하는 것을 보니 상당히 수준급의 백패커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세 개의 텐트 중의 하나가 농협텐트다. 왠지 반갑다. 그런데 최소한 2인용은 될 듯하다. 나도 혼자 자더라도 1인용 텐트 말고 저 정도 크기의 텐트를 샀어야 하나?


어두워져 가는 바다를 보며 맥주 큰 캔 두 개와 치즈육포와 호떡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한치 잡는 배들의 집어등이 점점 밝아지고 있다. 가까운 바다, 먼바다 할 것 없이 집어등을 밝힌 어선들이 점점 늘어간다. 오늘 밤 수많은 한치들이 갑판 위로 올라올 것이 틀림없다. 여명이 완전히 사라진 8시 반쯤 양치질을 하고 자리에 누웠다. 텐트 안으로 들고나는 동작이 힘들다. 1인용 텐트는 기어들어가고 기어 나와야 한다.


바람으로 유명한 제주도에서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다. 기온도 20도가 넘어, 가져간 겨울 침낭이 부담스럽다. 아쉬움이라면 베개를 준비하지 못했다. 에어 매트리스 덕분에 바닥 냉기도 없다. 양압기 없이 자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내 코 고는 소리가 주변 텐트까지 들릴까 걱정이다.


끊임없이 파도치는 소리 속에 한치 잡는 배의 발전기 엔진소리가 아련하게 묻어 들린다. 가끔 텐트에 이슬이 맺히는 소리를 느낄 수 있다. 양 쪽의 텐트면이 가깝고 천장도 낮아 관 속에 있으면 이런 기분일까 했다. 그렇게 싫지 않다. 임사체험한다고 진짜 관에 누워보는 프로그램도 어디 있다고 하던데...


잠이 올까?


다섯 시 반이 일출이라 다섯 시 알람을 하고 잤는데 알람 울리기 7분 전에 깼다. 텐트의 지퍼를 올려 벌어진 사이로 바다를 보았다. 아직 태양은 뜨지 않았지만 이미 여명이 충분히 밝다. 수평선 위에 낮게 드리워진 구름이 보인다. 구름 위로 아주 연한 붉은색의 하늘이 보인다. 수평선 밑에 있는 태양이 자신이 곧 왕림할 것을 알리고 있다. 텐트 밖으로 힘들게 기어 나왔다. 좀 더 나이 들면 기어 나오고 기어들어가는 이 동작 못할 것이다. 지금도 이렇게 힘드니...


사람들이 내 텐트 옆의 봉수대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서 남들보다 더 일찍 보겠다는 마음 아닐까?  수평선과 낮게 드리워진 구름 사이로 진홍색의 태양이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구름에 가려졌다. 잠시 후 구름 위로 나오면서 진홍색에 노란색이 더해졌다. 이런 일출의 광경을 이제껏 몇 번이나 봤을까 생각했다. 수십 번 보지 않았을까? 매일 뜨는 같은 태양을 다른 장소에서 다른 나이에 다른 사람들과 보았다.


운이 좋았다. 내 지난 인생처럼...


바람도 없고 기온도 적당하고 구름도 거의 없어 일출을 보는 데 성공했다. 설혹 날씨 때문에 보지 못했다 하여도 그렇게 아쉬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출을 보겠다고 비양도에서 백패킹을 한 것이 아니다. 백패킹 장비를 시험하고 내 몸이 아직 백패킹에 적합한지를 테스트하기 위함이었다.


어제 편의점에서 준비한 오렌지 주스와 두유 한 병을 마시고 철수를 시작했다. 비 한 방울 오지 않았지만 텐트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그리고 텐트 바닥면은 제법 젖어 있다. 황토색 진흙이 군데군데 묻어 있다. 마르지 않은 텐트를 접고 개어 정리하는 것이 영 찝찝하다. 에어 매트리스의 바람도 쉽게 빠지지 않아 아무리 해도 케이스에는 넣지 못하겠다. 배낭에 차곡차곡 싸지 못하고 자동차에 대충 때려(?) 실었다. 주차장이 가깝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결론 났다.


아무리 가벼운 1인용 텐트라 해도 텐트를 세우고 철수하는 것이 너무 번거롭고 괴롭다. 세울 때는 펙이, 거둘 때는 젖은 바닥이 힘들게 한다. 그리고 텐트 안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동작을 이제는 우아하게 할 수 없다. 애초에 음식은 사 먹을 생각이라 자는 짐만을 넣었는데도 등에 지는 배낭의 무게가 10kg이 넘는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백패킹을 하려면 배낭의 무게를 아무리 줄여도 15kg은 넘을 것이다. 이런 배낭을 메고 하루에 10 km 이상의 산길을 오른다는 것은 불가능이다. 이생망이다. 이생도 얼마 남지 않았다.


빨리 우도를 벗어나야겠다.

비데 있는 화장실과 맥도널드 핫케이크가 그립다.

우도 청진항 앞
우도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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