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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l 30. 2016

호기심이 있어야 삶이 재미있다.

예는 격식이고 격식은 자유를 방해한다.


카파도키아 괴레메에서 3일을 연속으로 하루 두 시간씩 ATV를 타는 나를 Gorgeous tour의 매니저가 신기해했다. 두 시간의 투어를 마치고 타이어에 바람 넣는 컴프레서의 압축공기를 이용하여 에어샤워를 해서 몸의 먼지를 털어낸다. 그러면 매니저가 쉬었다 가라고 나를 붙잡는다. 터키 차를 한잔 가져오게 하고 이것저것 묻는다. 풍선 투어 얼마에 했냐? 어느 호텔에 있냐? 첫날 다른 곳에서 예약했을 때 얼마 줬냐? 소위 시장 상황 파악하는 것이다. 마지막 날은 상당히 조심스럽게 나더러 몇 살이냐고 묻는다. 58이라고 하자 놀란다. "Really?" 이렇게 나이 먹어 ATV 타는 것을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 못 봤단다.

젊어 보인다고 하는데 싫어하는 사람 보았는가? 예쁘다는데 싫어하는 여자 보았는가? 케메르의 호텔 수영장에서 속눈썹이 아주 긴 어린 여자아이를 안고 있는 터키 아빠를 만났다. 내가 웃으며 자기의 딸을 보자 자랑스러운 듯 자기도 웃으며 말을 건다. 소위 영락없는 딸바보 아빠다. 아이를 안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아직 공갈 젖꼭지를 물고 있을 아이 같은데... 24시간 손이 가고 눈길을 뗄 수 없는 아이임에 틀림없다. 속눈썹이 아주 길다고 예쁘다고 하니 그런 경우 터키어로 "마샬라."라고 하면 된단다. 내가 마샬라 하며 아이를 얼르자 아이보다 아빠가 더 좋아한다. 옆에 친척 같은 몸에 문신한 남자가 아주 갓난아기를 보고 있다. 내가 눈길을 갓난아이로 돌리자 태어난 지 한 달 된 자신의 아들이란다. 자기 딸 아들이라며 뿌듯해한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그러나 좋을 때보다는 항상 정신없고 힘들던 기억이 더 생생하다.

미국에서 포스트닥 할 때니 아들 우석이가 만 세 살 정도였다. 자동차로 온 가족이 여행을 많이 다녔다. 내 supervisor 인 교수가 "How are you doing?" 할 때마다 "It couldn't be better."라고 이보다 좋을 순 없다고 답하던 시절이다. 새로운 곳을 보면 아이들은 흥분한다. 기념품 가게라도 들어가면 거의 정신 못 차린다. 모든 것이 처음 보는 것이니... 당연하다. 이것을 사달라 저것을 사달라 엄청 조른다. 무시하고 무시하다 "아빠 돈 없어!" 하니 왜 돈이 없냔다. "기계 가서 꺼내면 되잖아." 수시로 ATM에서 현금을 찾는 것을 본 것이다. 차를 세우고 카드를 넣으면 달라가 나온다.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인가 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기 무섭게 아들이 아빠를 찾는다. "아빠, 아빠 죽으면 아빠 것 다 내 것 돼?" 너무나 진지하고 너무나 궁금해서 묻는다. 아마 친구 중의 하나가 낮에 학교에서 그랬나 보다. 어이가 없기는 했지만 사실은 사실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내 원칙에 아마도 그렇다고 했을 것이다.

호기심이 있어야 삶이 재미있다.


어릴 때는 일 년이 너어-무 길다. 매일매일 새로우니... 나이 들면 일 년은 훅 간다. 매일매일이 그저 그러니... 곧 결혼하는 딸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 뼈아픈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다. 온 가족이 이탈리아 베니스에 있었다. 자동차를 이용한 가족여행 중이었다. 베니스는 중심지역에 자동차로 갈 수 없다. 외곽의 큰 주차장 건물에 아침에 주차하고 배를 타고 여기저기 호핑을 하며 관광을 해야 한다. 수상택시와 수상버스가 즐비하다. 베니스에 왔으니 곤돌라를 타야겠단다. 뱃머리가 멋들어지게 만들어진 사람이 젓는 곤돌라! 사실 나는 피곤했다. 여름이라 덥고 짜증 날 때였다. 얼른 이곳 베니스에서 사진 몇 장 찍고 근처 호텔을 찾아 이동해야 한다는 부담에 이 땡볕에 곤돌라 타고 유유자적할 마음의 여유가 내겐 없었다. 결국 지민이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계속 찡찡대는 딸이 누굴 닮아서 저러나 하며 베니스의 관광은 내내 찝찝했다. 아직도 그 당시의 지민이의 모습이 생생하다. 긴 머리에 노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큰 축복이기도 하고 엄청난 짐이기도 하다. 눈 뜨고 옹알이하고 재롱 피다 걷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신비하기까지 하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아빠가 놀이를 함께할 대상일 수 있지만 사춘기에 접어드는 중학교 가면 아빠보다 친구들이 더 좋다. 용돈이나 많이 주길 바라지...

아버지들은 자식들과 여행하고 싶고 대화하고 싶어 한다. 많은 자식들의 우선순위에서 아버지와의 여행이 어디쯤 있을까? 왜 아버지들은 자식들과 친구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 친구사이란 상의하고 격려하고 토론할 수 있는 사이지만 아버지와 자식 간에는 동등한 대화가 될 수가 없다. 자식은 부모에게 예를 갖추어야 한다.

예는 격식이고 격식은 자유를 방해한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싫은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아버지가 변해야 한다. 가장으로서 위엄을 차릴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계급장 떼고 대화를 해야 한다. 나는 항시 계급장 떼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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