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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Aug 01. 2016

걱정이 아니라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터키 안탈랴 공항 라운지에서 끊임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보고 있다. 저렇게 많은 비행기들이 여기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흩어져서 엄청 날고 있는데 정말 가끔 비행기사고가 보도되는 것이 신기하다. 통계적으로는 고속버스 타고 있는 시간보다는 거의 열배 가까이 위험하다고 하는데 주변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분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비행기사고로 돌아가신 분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거의 모든 사람이 거의 매일 교통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지만 비행기사고에 노출되는 사람은 아주 일부이고 그 시간 또한 매우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사회를 고위험사회라고 한다. 자연재해는 옛날부터 있어온 것이고 나름 대비를 하기 위한 여러 구조물들을 설치하고 있다. 문제는 이동수단이다. 산업혁명 이후 공학의 발달로 모든 이동수단의 속도가 엄청 빨라졌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좋기는 한데 잘 정돈된 시스템에 작은 결함이나 인간의 실수가 개입하면 대형사고를 야기한다. 매일 뉴스에 등장하는 각종 사건사고에 보면 교통사고는 빠지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얌전하게 운전해도 갑자기 달겨드는 음주운전자나 졸음운전자를 피할 수 없다. 운전을 하거나 길을 걷거나 지하철을 탄다면 길에서 죽을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

텍사스에서 열기구가 떨어져 탑승자 18명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친구가 카톡으로 보내준다. 양평에서 바나나보트 사고가 났다고 바나나보트 타지 말라고 딸이 카톡한다. 사실 위험이 없는 재미는 드물다. 도박이나 전자오락? 스키타다가 고관절 부서지는 사고도 당하고, 죽을 각오로 히말라야도 오르지 않던가? 오토바이는 얼마나 위험한가?

걱정보다는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한다. 걱정과 불안의 유전자가 누구나 있기에 위험한 것을 할 때는 긴장한다. 법으로 허용된 activity 를 할 때 긴장하는 것 이상을 할 것이 없다. 만에 하나 잘못될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 가족이나 친지가 위험이 있는 무엇인가를 한다면 이 때도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 가족이나 친지를 잃을 수 있음을...

바다에 나가려거든 한번 기도하고, 전쟁터에 나가려거든 두번 기도하고, 결혼 하려거든 세번 기도하라는 러시아 속담이 생각난다. 각오하고 기도로써 긴장을 풀라는 것이다. 그것 밖에는 할 것이 없다.

아들 우석이가 어릴 때 일이다. 아마 만 네살 반 정도. 우리 가족은 사우나를 좋아했다. 휴일이면 온가족이 유성의 대온천탕으로 향한다. 아내가 어린 지민이와 우석이를 여탕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아마도 우석이는 장남감 가지고 탕에서 누나와 놀 생각에 신났을 것이다. 나야 남탕에서 아무리 버텨봐야 혼자서 한시간이면 다 끝난다. 아내는 지민이와 우석이까지 붙잡아 씻기느라 항상 약속시간을 못맞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여탕 앞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도 없던 시기에 멍하니 시계를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나올 때가 되었지 되었지하며 기다리는데 아내가 우석이를 안고 지민이는 달려 허겁지겁 나온다. 우석이가 탕에서 넘어져서 뒤통수에 피가 엄청 난단다. 바로 차에 태워 충남대병원 응급실로 직행했다. 뒤통수에 아마 세바늘 꿰맸던 것 같다. 레지던트가 졸음이 와서 자꾸 자려는 우석이의 뺨을 때린다. 의식을 잃으면 위험하다고... 결국 집에 가서 토하거나 의식을 잃지 않으면 괜찮을 것이라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집에 와서 한숨 돌리자 아내가 묻는다. "나는 아까 너무 당황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당신은 그렇게 냉정하게 바로 응급실로 우리를 데려갈 수가 있어? 마치 예상하고 있던 사람처럼."

나는 이런 사고를 예상하고 있었다. 하체가 부실하고 머리가 큰 우석이는 잘 넘어졌다. 달리기라도 하면 보기에도 불안불안하다. 목욕탕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는 당연히 자주 발생한다. 오늘이 휴일이니 충남대병원 응급실 아니고는 갈만한 병원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육아 사고 처치 매뉴얼을 마음에 두고 있었고 사고가 발생하자 매뉴얼대로 움직인 것뿐이다.

그런 우석이가 취직하여 힘들다고 내 카톡도 씹는다. 낮에 전화하면 안받기 일쑤다.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며...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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