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상황이 이해가 안되니 의사소통도 안된다.
터키는 여기저기서 부딪히는 사람마다 조금씩 영어로 의사소통이 된다. 관광안내소 직원은 물론이고 버스승무원이나 길에서 마주치는 젊은 사람들은 기본적인 영어소통이 가능하다. 인도만큼 쉽지는 않지만 소통이 어렵던 기억이 별로 없다. 사실 이방인이 알아 듣지 못하는 경우는 언어때문이 아니라 시스템이 전혀 다른 경우이다. 예를 들면 파묵칼레에서 클레오파트라 수영장 입장료가 따로 있고 락카 사용료가 따로 있는 것이라든지, 버스터미날에서 버스회사마다 다른 시간표와 다른 요금을 받는 것처럼 표준화 되지 않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시스템에 처했을 때, 상황이 이해가 안되니 소통도 잘 안된다. 따라서 충분히 이해된 상황이거나 이미 익숙한 상황에서는 언어가 필요없다. 눈짓과 단어 하나만으로도 의사소통이 충분하다.
터키의 지중해 연안의 가장 큰 도시인 안탈랴는 올해 엑스포가 열린다. 이즈음과 같은 정보혁명 사회에서 엑스포 무용론도 있기는 하나 터키 전역에 이를 알리는 표지판이 많이 붙어 있었다. 안탈랴에서 남쪽으로 50여키로 떨어진 케메르에서 버스를 타고 안탈랴에 입성했다. 안탈랴 일대의 해변 휴양도시들에는 러시아 관광객이 많다. 아마도 흑해 연안의 휴양도시 소치에 만족하지 못하는 러시아인들이 여기까지 몰려오나 보다. 상점들의 간판이나 음식점의 메뉴에도 영어보단 러시아말이 더 흔하다. 케메르 중심에서 안탈랴 버스터미날까지 오는 동안 운전기사가 바쁘다. 한사람이라도 더 태울려고 중간에 걷는 사람이 보이면 빵빵댄다. 수시로 사람들이 내리고 올라탄다. 러시아 관광객들이 러시아말로 물어보고 운전기사가 러시아말로 알려주는 것 같다. 두명을 드바라고 하는 것과 쓰빠시바(댕큐)와 빠좔스따(유아웰컴) 하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내가 탈 때 분명 영어로 내게 말했는데... 버스에서 마지막 손님으로 내리면서 물었다. 당신 러시아말도 할 줄 아냐고? 궁금한 것은 못 참는다. 할 줄 안단다. 그럼 당신은 터키어, 영어, 러시아어 세개를 할 줄 안다고? 한단다. 내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베리굿 하니 좋아 죽겠단다. 동네 완행버스 기사가 3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다니...
터키를 배낭여행할 때 기억해두면 좋은 단어가 Otogar 와 Havalimani 이다. Otogar 는 버스터미날이고 Havalimani 는 에어포트이다. 어디서나 이 두 단어만 얘기하면 편하다. 다들 친절히 가리켜주니...
안탈랴 오는 버스에서 옆에 터키남자가 앉았다. 꼽슬머리에 얼굴이 검고 턱수염이 장난 아니게 무성한... 20년두 전에 대전 연구소에서 같이 근무하던 항공과 동기가 생각났다. 과학원에서 비슷한 시기에 박사학위 받고 같은 연구소에 근무하게 되면서 알게된 친구였다. 항상 웃는 얼굴에 사람좋은 터키사람 모냥 큰 소리로 웃는 모습이 보기좋은 동기였다. 만성간염을 그 당시 갖고 있어서 나와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기도 하던 친구다. 그 친구가 영국에 항공기설계 연수를 1년 갔다왔다. 휴가를 내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자동차로 가족과 함께 여행했단다. 구글맵이나 내비가 없던 시절에 영어밖에 못하는 친구에게 어떻게 운전하며 여행했냐고 물었다. 길을 잘못 든것 같으면 창문열고 '스타찌오네?' 하면 이탈리아 사람이 손으로 다 방향을 가리켜줘. 그 방향으로 가다 아니다 싶으면 다시 창문열고 '스타찌오네?' 하면 된단다. 영어의 station 은 기차역을 의미하고 기차역 앞에 가면 어김없이 관광안내소가 있단다. 내가 서울로 직장을 옮기고 지난 20년 동안 만난 적이 없는 것 같다. 터키에 오니 생각나네... 한국가면 안부 전화라도 해야겠다. 잘 있냐고? 간염 항체는 생겼냐고? 터키에서 너 닮은 사람들 보니까 생각나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