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아닌 것에 너무 마음쓰지 말자.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을 딸 지민이가 가르쳐줬다. 작년 가을 둘만이서 네팔을 2주 여행하면서 '아빠와 딸의 계획없는 결혼준비' 란 매거진을 브런치에 처음 만들었다. 둘이서 하나의 주제를 갖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써서 붙여 놓은 글이 우리는 너무 재미있었다. 여행의 짜투리시간들도 의미있는 생각으로 채워지고 세대차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고 잘 커준 딸이 고마왔다.
'내가 하는 환갑준비' 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때 그때 드는 내 생각을 한장 정도에 정리한다는 것이 내겐 큰 즐거움이다. 지난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내 글에 대한 아내와 딸의 평가는 아주 혹독하다. 나의 지난 경험들이나 지금의 상태가 너무 부르조아적이란다. 그래서 읽는 사람들한테 거부감과 상처를 줄 수 있단다. 조심해서 쓰란다.
시기심이나 질투는 인간의 본능이다. 성서와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그런 말 있잖은가? "부러워하면 지는거야." 지기 싫어하는 인간의 또 다른 본능을 자극하여 시기심이나 질투를 억누르겠다는 일종의 다짐이다. 시기질투와 부러워하는 것은 종이 한장 차이이다. 본능인 시기질투가 이성과 교육에 영향 받아 부러움이란 긍정적인 감정으로 덧씌워 지는 것이다. 본능은 어쩔수 없다. 이성적으로 지금의 내 마음이 시기와 질투란 본능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의 마음의 평정을 구해야 한다.
시기나 질투는 결코 좋은 감정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낭비할 뿐이다. 인간의 본능인 시기질투심을 자극하는 뉴스들을 이즈음 너무 많이 접한다. 검사장과 청와대수석에 대한 폭로성 기사들을 보면 일반 대중의 말초적이고 비생산적인 본능을 자극한다. 언론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는 것은 인간의 잔인함을 뻔뻔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자본주의의 극으로 치달으며 염치없는 인간들도 너무 많아졌다. 이러다가 자본주의가 폭발하여 전 세계가 테러와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지도 모르겠다. 그런 조짐이 보이는 것 같다.
시기질투와 유사한 본능 중에 인정욕구란 것이 있다. 인정욕구는 외부와 내부로 구분할 수 있다. 외부의 인정욕구에 불타서 젊을 때 열심히 산다. 부모의 인정이 받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고 회사의 인정을 받고 싶어 열심히 일하고... 내부의 인정욕구는 내가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자신이 확인하는 것이다. 외부의 인정욕구는 기준이 사회적으로 거의 공통이지만 내부의 인정욕구는 그 기준이 다양하다.
누구나 잘 살고 싶다.
내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정리해서 일목요연하게 글을 썼다고 나는 항상 생각한다. 그러나 가끔 내 글에 달린 댓글을 읽다보면 "내 글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한거지? 댓글에 내가 전혀 공감이 안가는데..." 하고 느끼는 때가 가끔 있다. 인간은 자신의 사고의 틀을 통하여 외부의 모든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고의 틀은 사람마다 자라온 환경과 읽고 공부한 것이 다양하기에 다른 것같다. 내 딴에는 잘 정돈된 논리로 무장하고 쓴 글이기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엉뚱한 답글을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정말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살다보면 많은 일을 하며 산다. 직업적으로 해야 할 일도 있고, 집안 가족이나 친척들과 관련된 일도 해야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해야할 일도 있고, 순전히 내 취미로 내가 좋아서 하는 것도 있고, 체면이나 인정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하는 것도 있고, 노후대비를 위해 해야 하는 것도 있고 등등 오늘 지금 해야하는 것들이 많다. 이럴 경우 우선순위를 잘 정하고 해야 한다고 다들 말한다. 그래야 성공적인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그런데 중요한 것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나이 들어감에 따라 달라진다.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가 아닌 것에 너무 마음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