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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Aug 01. 2016

기억력은 꽝 되고 눈은 잘 안보인다.

살만큼 살았나보다.


터키의 호텔 화장실에 비데가 있을까 궁금했다.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에는 양변기 옆에 아파트 베란다 청소할 때 사용하는 손샤워기가 대부분 달려 있다. 인도의 저렴한 숙소에는 화장실에 양동이와 바가지가 꼭 있다. 오히려 미국에서 비데나 비데 대용품을 못본 것 같다.

터키의 화장실 양변기에는 일종의 찬물비데가 있다. 변기 중앙에 애기고추만한 노즐이 달려 있고 뒷 벽에 수압을 조절하는 밸브가 있다. 호텔은 물론이고 음식점이나 돈받는 대중화장실의 변기에도 다 있다. 양변기의 표준인가 보다. 찬물만 나오지만 아주 요긴하다.

이삼일에 한 번씩 호텔을 옮기다 보니 호텔 욕실의 구조와 냉온수 방향이며 밸브 손잡이의 구조가 제각각이다. 방마다 있는 커피포트의 구조도 제각각이고 TV 나 에어콘의 리모콘 버튼 배열도 다 다르다.

그런데 문제는 잘 안보인다.

노안이 이제는 확실히 심해져서 리모콘의 그런 작은 표시들은 돋보기 안경없이는 구별이 안된다. 찬물 더운물 표시도 잘 안보인다. 특히 호텔 욕실에 비치되어 있는 작은 통의 샴푸, 린스, 바디워시 등의 표시가 안보여 짜증나게 한다. 샤워기 밑에서 이미 머리랑 몸을 적셨는데...

세계표준이란 모든 사람이 편하기 위해 하는 것인데 왜 이런 것은 표준배열이나 표준 색깔로 구별되게 안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리모콘의 표준배열이나 샴푸와 린스의 표준 색깔이 정해질 때 쯤이면 리모콘, 샴푸 린스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10년전 쯤 노안이 점점 불편해져서 혹시 좋은 방법이 있을까 하여 안과에 갔다. 나보다 네살 많은 안과의사가 내 눈상태를 검사하더니 문제 없단다. 아주 좋단다. 그래도 안보여서 죽겠다고 하니, "선생님보다 심각하게 안보이는 사람 많지만 죽지는 않구요. 이제 책도 좀 그만보고, 웬만한 것은 못 본척 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하면서 해줄게 없단다. 결국 살만큼 살았다는 표현을 완곡하게 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황반변성이다. 망막의 중심부를 황반이라 한다.  황반에 새로운 실핏줄이 생겼다 터졌다 하면서 시력이 점점 떨어져 실명까지 이르는 병이다. 이즈음 안구에 주사를 놓아 진행을 지연시키는 약은 개발되었지만 퇴행성으로 생기는 병이라 결코 좋아질 수는 없다. 만 89세인 아버지에 비해 아직 젊은 아들들은 퇴행성이 결코 좋아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당사자인 아버지는 요즘 세상에 의사들이 이 것두 못 고쳐준다고 화를 내신다. 동생과 둘이서 교대로 아버지의 병원 나들이를 따라간다. 화내는 아버지를 진정시키고 달랠수 있는 사람이 아들들 밖에 없어서...

눈이 문제다.

울루데니즈의 Tonoz hotel 은 좀 비싸다. 해운대나 경포대에서 숙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비쌀 수 밖에... 스마트폰을 호텔 와이파이에 연결하려면 로그인 화면이 나온다. ID 에 여권번호, PW 는 방번호다. 그리고 잠깐만 사용안하면 수시로 떨어져 나간다. 여권번호의 숫자 8자리가 참 안외어진다. 2박3일 동안 여권번호 입력을 열번은 했는데 할 때마다 새롭다. 내 기억력과 암기력 하나는 끝내 줬는데... 나이 들수록 단기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친구 말이 생각난다. 세자리인 방번호 정도는 기억하겠는데 네자리이상만 되면 힘들어지고 전화번호처럼 긴 것은 절대 못외운다.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인터넷으로 골랐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아내가 자기번호, 딸 번호, 아들 번호를 좋은 것으로 골랐단다. 내 것도 바꾸겠냐길래 나는 싫다고 했다. 010-7400-xxxx, 010-4400-xxxo, 010-7400-xxoo 아마 이 것 세개인 것 같다. 한 10년된 것 같은데 아직도 어느 것이 누구 것인지 모른다. 맞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스마트폰에 단축키로 저장하여 누르니 영영 알길이 없을 것 같다. 사실 핸드폰 때문에 전화번호를 외울일이 이제는 없다. 터키에 도착하고 터키 심카드를 사서 옛날 아이폰5에 꽂았는데 스마트폰으로 항공권살 때 전화번호란에 터키심카드 번호를 입력하는게 좋을 것 같아, 할 때마다 번호를 써놓은 종이를 찾는다. 정말 기억력이 꽝 되었다.

살만큼 살았나 보다.

노안이 오고 어깨근육과 무릎관절에 이상이 오고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에 대해 우리는 서로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이런 퇴행성 변화들이 우리가 살만큼 살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임은 애써 모른채 한다.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 지금을 즐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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