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레
나린스카야주의 주도 Naryn에서 비포장도로 4시간을 달렸다. Kol Suu 호수의 입구(트레킹 시작점)다. 여기서 7 km를 더 가야 호수라고 한다. 난 사실 4X4 자동차로 호수까지 가는 줄 알았다. 이곳의 고도가 3350m다. 호수의 고도는 3500m가 넘는다고 알고 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좀 이상하다. 속도 좀 메슥거린다. 애플워치로 혈중산소농도를 재니 87%다. 전형적인 고산증상이다. 호수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걷든 지 말을 타든 지.
운전사 Kojo에게 타고 갈 말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고산증상이 심하진 않지만, 왕복 14km를 걷는 것은 무리다. 좀 떨어진 곳에 말들이 모여 있고 사람들도 있다. Kojo가 그쪽을 향하여 뭐라고 소리쳤다. 그러더니 15분만 기다리란다. 말과 가이드가 준비되는데(말이 1500 솜, 가이드가 2500 솜). 그 순간, 고삐 풀린 망아지 한 마리가 무리에서 뛰쳐나왔다. 우리 앞을 지나 멀리 도망간다. 그러자 얼룩말을 탄 사람이 소리치며 따라가기 시작한다. 한참을 따라가는 것이 보인다. 망아지와 얼룩말 탄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10여분 지나 얼룩말 탄 사람이 아직도 반항하며 날뛰는 망아지의 고삐를 잡고 끌고 왔다. 그러자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망아지를 붙잡고 쓰러트렸다. 자빠진 망아지는 발길질을 하며 저항한다. 한 사람이 망아지의 배를 심하게 걷어찬다. 그리고 망아지의 앞 두발을 밧줄로 짧게 연결했다. 그제야 사람들이 물러나고 누워있던 망아지가 일어섰다. 이제 묶인 발로는 달리지 못한다. 절뚝거리며 걷는 망아지가 안쓰럽다.
항상 엄마말을 따라다니는 어린 망아지는 온순하다. 코를 꿰지도 않고 굴레를 씌우지도 않고 발을 묶지도 않는다. 어린 망아지가 커서 다루기 어려워지면 코를 꿰고 굴레를 씌우고 고삐를 단다. 그리고 멀리 달아나지 못하도록 앞발을 묶는다. 앞발이 묶인 말들은 키르기스스탄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고삐가 풀려 내달리던 망아지가 결국 앞 발이 묶였다. 이젠 자유가 없다. 진정한 가축의 인생이 시작하는 것이다. 말 안 듣는 가축의 배를 걷어차서라도 복종시키는 사람을 주인이라고 한다. 주인은 가축의 생사여탈권도 갖는다. 가축은 주인을 위해 산다.
가축이 아닌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66년을 살았나?
굳이 한 문장으로 서술하라면 '자유를 얻기 위해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제는 자유를 얻었나?
자유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신이 하고 싶을 때 하는 것 아닌가? 매일을 하고 싶은 것만 하기 쉽지 않다. 그보다는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면 자유를 얻은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고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았다.
호구를 위해 하는 것을 노동 또는 직업이라고 한다. 좋은 직업, 나쁜 직업, 귀한 직업, 천한 직업 하며 직업의 종류와 속성이 다양하지만 자신과 부양가족의 생존을 위해 하는 것이 노동이고 직업이다. 이제 퇴직했으니 출퇴근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것 아닌가? 그 자유를 확인하기 위해 방랑하고 있다.
검은 말을 탄 젊은 키르기스 청년이 고삐 풀린 망아지를 우아하게 쫓던 얼룩말의 고삐를 끌고 오는 것이 보인다. 얼룩말의 고삐를 내게 건넨다. 얼룩말이 내가 탈 말이다. 난 참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아까 고삐 풀린 망아지를 쫓던 말을 타게 되었으니. 말머리를 감싸고 있는 장구가 굴레다. 입에 물린 재갈이 굴레에 연결되고 재갈에 양쪽 고삐가 연결된다. 양쪽 고삐를 쥐고 한쪽을 당기면 당긴 방향으로 말이 움직인다.
고삐를 내가 직접 쥐고 말 타본 적 없다. 고삐는 마부가 쥐고, 나는 올라탈 때 붙잡고 오르는 '안장머리'만 잡고 있었지. 말을, 낙타를, 노새를...
암말인지 수말인지 물었다. 몇 살인지도 물었다. 9살 난 암말이란다.
말은 굴레를 쓰고 재갈을 물고 있다. 굴레와 재갈에 연결된 고삐를 쥔 사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고삐를 꼭 조여 잡고 있어야 한다. 말이 딴생각하지 못하도록. 말의 굴레는 주인이 씌우지만 '인간의 굴레'는 누가 씌우나?
인간의 굴레라는 책 제목이 생각난다.
(절름발이 소년 필립 캐리가 신체적, 사회적, 심리적 굴레를 극복하며 의사로 성장하고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찾아가는 서머셋 모음의 자전적 성장소설)
굴레를 벗고 싶다. 누가 씌운 굴레인가? 내가 쓴 것인가?
대대로 전하는 레가시, 전통, 관습, 도덕, 윤리 같은 것도 굴레 아닌가?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니까.
부모, 자식, 가정, 사회도 굴레다. 굴레를 벗어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에 취직했을 때 기뻤다. 6년을 회사생활하더니 그만두겠다고 내게 통보했을 때 내심 당황했다. 상의가 아니고 통보였으니… 그렇지만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결정하는 아들을 보며 아들이 내게서 독립했음을 깨달았다. 독립을 해야 진정한 자유에 접근할 수 있다. 아들도 자유를 원한다.
부모의 보호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립해야 부모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식이 심리적으로도 독립해야 부모도 자식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아들에게 전화하는 것조차 참는다. 아들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어찌 보면 난 아직 자식이라는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