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방랑을 다니며 즐기는 것 중에 사우나가 있다. 특급호텔의 피트니스센터와 함께 운영되는 고급사우나 말고, 현지인들이 찾는 대중목욕탕의 사우나. 목욕하는 방식도 나라마다 좀 다른 것은 나라마다 목욕문화가 있다. 키르기스스탄 지난 방문에서는 코치코르( https://brunch.co.kr/@jkyoon/719 )에서 경험했다.
오늘 9홀 골프가 일찍 끝나 오후에 시간여유가 많다. 호스텔로 돌아와 데스크 직원에게 물었다. 비슈케크의 대중목욕탕에 대해서.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사우나와 반야가 같은 것이란다. 사우나는 북유럽에서 생겨난 것이고, 반야는 러시아에서 기원한 것이다. 북유럽이나 러시아나 결국 추운 지방에서 몸을 덥히기는 마찬가지다..
데스크에서 가르쳐준 공중목욕탕( https://maps.app.goo.gl/svzxv7nCFf8jZEHQ6 )을 구글맵에 입력하고 얀덱스고 택시로 갔다. 시내 중심이라 멀지 않았고 커다란 돔이 두 개 있는 독특한 외형을 하고 있는 건물이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구글맵의 리뷰를 보니 구 소련시대부터 있던 시설인데(그 당시는 국립?), 최근에 리모델링하고 비싸졌다고 아우성이다. 아마도 입장료를 1000 솜(16원/솜)으로 올렸다가 비난이 빗발쳤는지 지금은 800 솜.
국립(?) 목욕탕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시설의 크기가 제법이다. 락카키와 영수증을 받고 남자 탈의실로 들어갔다. 입구에 키르기스여인이 앉아 있다. 영수증을 받고 내 락카키를 보더니 고갯짓으로 방향을 가르쳐준다. 락카 안에는 면 소재의 커다란 천이 잘 접혀 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팬티를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천으로 아랫도리를 감싸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혹시 몰라 수영복을 갖고 왔다. 어쨌든 남자 탈의실의 관리와 청소를 여인이 한다. 그녀에게는 남자들의 물건이 정육점에 걸린 소시지나 진배없다.
옛 기억이 떠올랐다. 1995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제법 긴 장기출장 중이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객실이 3000개가 넘어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러시아호텔'에 묵고 있었다. 장기출장이다 보니 주말에는 심심해 호텔의 부대시설을 뒤지다가(안내책자가 없다) 호텔의 지하공간에 수영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어렵게 미로를 헤매 지하수영장을 찾았다. 탈의실에 아무도 없다. 수영장은 있지만 사람들은 모른다. 호텔 측은 알려줄 마음도 없다. 탈의실에서 수영복을 갈아입는데 러시아 아줌마가 나타났다. '어떤 놈이 수영하러 나타난 거야?' 하는 표정으로. 러시아도(일본처럼) 남자탈의실 관리를 여성동무가 하는구나 했다.
탈의실 구석에 공용 슬리퍼들이 있다. 수영복을 입고 혹시 몰라 천도 갖고 욕실로 들어갔다. 팬티를 입거나 천으로 아랫도리를 두르고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홀딱 벗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다. 탕은 없다( https://brunch.co.kr/@jkyoon/58 ). 터키탕에 탕이 없듯이... 샤워시설과 때 밀리는 공간이 있고, 사우나실이 두 개나 있다. 하나는 내부가 나무인 소위 핀란드식이고, 하나는 모든 면을 하얀 석회(?)로 마감했다. 여름이라 손님이 적어서인지 핀란드식은 가동하지 않고 하얀 동굴 같은 곳만 가동 중이다. 슬리퍼를 신지 않고는 뜨거워 들어갈 수 없다. 사우나실 밖에 방석처럼 네모난 나무판자들이 있는데 이것을 갖고 들어가야 엉덩이를 대고 앉을 수 있다. 가장 낮은 바닥면에 앉았는데도 머리가 너무 뜨겁다. 허연 모자를 쓴 사람들이 있다. 모자만 쓴 나체를 상상이라도 해본 적 있을까? 난생처음 본 광경이다.
밖에서 보았던 큰 돔 모양의 시설은 원형수영장이었다. 사우나에서 열이 바짝 오른 사람들이 수영장으로 다이빙을 한다. 알몸의 남자들이 덜렁거리며 다이빙하는 광경! 신선하다고 해야 할까? 쇼킹하다고 해야 할까? 제법 큰 원형 냉탕(?)의 깊이가 제법 된다. 그러니까 저렇게 다이빙하지. 수영장 사다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얼마나 깊은가 보려고... 사다리 꼭 잡고 바닥에 발을 대보니 딱 2미터다. 제대로 수영 못하는 어르신은 냉탕에 몸을 담갔다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다이빙은 못했지만...
때 밀리는 장소에 사람들이 들락날락한다. 열린 문으로 보니 돌침대가 두 개 있는데, 때 밀리는 사람은 홀딱 벗고 있다. 그래서 이 공간이 가려져 있구나 싶다. 내 몸에도 때가 제법 축적되어 있는지라 돌침대가 비기를 기다려 돌침대에 오르려 하니, 때 미는 사람이 '아진'이라고 한다. '아 때 밀리는 값이 1000 솜이구나(러시아말로 아진은 우리말로 하나다)' 했는데, 약간의 손짓과 멍 때림이 지나간 후 무사히 때를 밀렸다. 끝나고 보니 때 밀리는 값은 800 솜이고, 아진이란 기다리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이었는데, 말 안 통하는 외국인이 새치기하는 것을 누군가 참아준 것이었다.
사우나, 냉탕, 사우나, 냉탕 후, 때 밀리고(머리까지 감겨줘서 가져간 샴푸 쓸 일이 없네), 탈의실로 다시 입장했다. 탈의실 한쪽 면에 마사지라고 쓰인 문이 세 개 있다. 목욕문화가 나라마다 좀 다르듯이, 마사지 문화도 나라마다 좀 다르다. 마사지라면 환장(?)하는 호기심 많은 어르신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가운데 문이 열려 있다. 내 복장은 사각팬티 위에 (돈 들어 있는) 반바지 차림이다. 중년의 건장한 키르기스여인이 반갑게(?) 맞이한다. 방은 완전한 개인실이다. 마사지사의 개인 영업장 같다는 느낌이다. 방이 좁아 대각선으로 철제 침대가 놓여 있고 침대 끝에는 얼굴을 묻을 수 있게 만들어진 둥근 구멍이 있다. 한 시간 마사지가 1500 솜.
반바지를 벗어 놓고 사각팬티는 입고 침대에 오르려는 나를 여인이 제지한다. 팬티도 벗으란다. 헐! 내가 난감한 표정을 보이자, 크고 기다란 천을 양손으로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린다. '아아 안 볼 테니 빨리 벗고 침대에 오르란 뜻이구나!' 홀딱 벗고 얼굴을 묻고 엎어지니 들고 있던 천으로 내 몸을 덮는다. "Bluetooth connected."란 소리와 함께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그리고 나는 황홀경에 빠졌다. 덮은 천의 일부분을 제치고 오른발부터 시작하여 온몸에 오일을 바르고 양손으로 세게 문지르기 시작한다. 종아리, 허벅지 그리고 엉덩이까지. 내 평생 어떤 여인이 내 엉덩이를 이렇게 떡 주무르듯 만져준 적 있던가? 이렇게 열심히!
생식기와 항문을 제외하고 오일범벅이 되었다. 심지어 얼굴 및 머리까지.
탈의실 옆에는 식당과 흡연실이 있다. 샐러드, 달걀프라이 세 개(키르기스스탄에서는 기본이 세 개), 그리고 맥주를 주문했다. 운동(골프는 걷기 운동), 사우나를 포함한 목욕, 황홀한 마사지 그리고 맥주. 이보다 더 환상적인 조합이 있을까 싶다. 실존의 엄숙함이 아니라 실존의 행복함을 느낀 하루였다.
나린 갔다 와서 출국하기 전에 꼭 다시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