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에서 가장 못 사는 주가 나린스카야 주다. 나린스카야주의 주도가 나린이다. 영어로 Naryn이라고 쓰지만 현지 발음은 나른에 가깝다. 나린스카야 주는 평균고도가 3000m에 가까운 고지대라 아직도 유목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콜수(켈수) 호수는 나린에서도 150 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것도 중국과의 국경 근처에. 그래서 추가의 Border zone permit이 있어야 하고, 퍼밋은 CBT(일종의 여행사)를 통하여 신청할 수 있다. 퍼밋의 유효기간은 4주고, 일주일 전에는 신청해야 하고, 1박 2일 발급도 가능하지만 급행료가 부가된다.( https://www.cbt-naryn.com/index.php/border-permit/ )
한국에서 CBT에 퍼밋을 신청하고 당일로 왕복할 기사 딸린 차량(160유로)도 예약했다. 사람들은 호수 부근의 유르트 캠프에서 보통 하루 잔다. 그렇지만 난 3500m 고산지대에서 자고 싶지 않다. 이왕이면 작년에 나를 Tash Rabat에 데려다줬던 Kojo를 수배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익숙함과 작년의 아쉬움 때문에...( https://brunch.co.kr/@jkyoon/720 )
https://maps.app.goo.gl/mTjYW6VQi6Gnd2N77
아침 7시 약속이었지만 6:45에 숙소를 나가보니 눈에 익은 니산 패스파인더와 Kojo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 깔끔하게 면도를 해서인지 작년의 기억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린의 남쪽 고개를 넘자마자 왼쪽으로 길을 들어서니 비포장도로가 시작된다. 그리고 Ak Muz란 작은 마을을 지난다. 비슈케크에도 악뮤즈 거리가 있는 것을 보면 이곳 키르기스스탄에서도 잘 알려진 마을임에 틀림없다. 구글맵의 길을 따라 Bosogo란 곳을 지나자 구글맵에는 있는 도로가 없다. 도로는 직선으로 그려져 있는데 앞에는 아무것도 없는 산이고, 도로는 왼쪽으로 90도 꺾어져 나있다. 그때부터 구글맵에도 없는 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한 시간 반을 달려 검문소에 도착했다. Permit과 여권을 들고 운전기사 Kojo와 함께 차에서 내려 검문소로 향한다. 해발 3410미터, 좀 어지럽다. 군인이 여권사진과 대조를 하고 장부에 내 이름을 적더니 게이트를 열어준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 가는 내내 길에 차가 없다. 간간이 이동하는 가축떼(양, 염소, 소, 야크, 말)가 있을 뿐이다. 그렇게 4 시간을 꼬박 달려 호수 입구 유르트 캠프촌에 도착했다. 검문소 정차를 제외하고는 딱 한 번 쉬었다.
유르트 캠프가 넓은 초원 여기저기 널려 있다. 알틴 아라샨보다 더 많은 것 같다. 이렇게 오기 힘든 곳을 찾는 관광객이 엄청 많다는 것에 놀랐다. 유르트 캠프촌부터 콜수 호수까지는 7km. 이 구간은 거의 평지지만 마지막에 고도를 200미터 정도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나는 가이드 '빅스'와 함께 말을 타고 이 구간을 통과했다. 한 시간 반 정도 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쓰느라 정신없었다. 승마는 말과의 교감이 중요하다는데, 내가 말을 제어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말이 나를 우습게 여기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이렇게 힘들게 말 타지 말고 걸을 걸 그랬나 했는데, 200미터 정도 고도를 높이는 마지막 구간에서 그래도 말타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콜수호수는 무시무시한 암벽 계곡 입구에 큰 산사태가 나 계곡을 막는 바람에 생긴 길고 깊은 호수라고 한다. 호수 시작점에 모터보트들이 여러 대 대기하고 있다. 모터보트를 타고 호수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오는데 일인당 1000 솜이다. 보트는 대여섯 대나 있는데 관광객은 나 혼자라 기다리란다. 나 하나를 태우고 갈 수는 없으니. 좌우에 무서운 암벽산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압도당했다. 저승길에 건넌다는 요단강이 있다면 이런 모습 아닐까? 나중에 요단강 건널 때 익숙해질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때 여유 부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경치에 압도 당해 요단강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한국말이 들린다. 한국 단체 관광객이 도착한 것이다. 허걱! 정말 대단한 민족이다. 그들과 함께 보트를 탔다. 그리고 오랜만에 한국말했다. 일행은 전부 18명이고, 그중에 남자는 셋, 평균 나이는 70세란다. 내가 말 타고 지난 7km도 걸어서 왔단다. 고산증세를 느끼는 평균 70세 어르신들이. 정말 용감한 할머니들이다. 어르신들이 사진을 잘 찍기 위해 작은 보트에서 일어난다. 난 기겁했다. 오백미터 정도 호수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돌아오는데 30분 정도. 오랜만에 만난 장관이다. 남미의 토레스 델 파이네, 이탈리아의 돌로미테, 스위스의 융프라우에도 절대 뒤지지 않을 장관이다. 이렇게 비교를 해야 어느 정돈지 감이 오려나?(3510m 고산에 있는 무시무시한 암벽산에 둘러 싸인 에메랄드 호수)
관광객들은 바로 떠나고, 나는 10여 분간 앉아서 주머니에 넣고 온 바나나와 초코바를 먹었다. 이미 시각이 오후 한 시라. 속이 메슥거리지만 주머니를 가볍게 하고 요단강 경치를 좀 더 가슴속에 넣으려고...
돌아가는 길은 훨씬 쉬웠다. 이제는 고삐를 양손으로 당겨 잡고, 등자(안장에 붙어 있는 발받침) 위에서 두 발로만(안장머리 안 잡고)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익숙해져서 여유가 생겼다. 어르신에게 필요한 운동은 유산소운동뿐 아니라 근육운동과 균형(Balance) 운동이 필요하다던데, 승마는 확실한 균형운동이다. 계속 덜렁거리는 등자 위에서 몸의 균형을 잡는 것이 재미있다.
거의 네 시간 만에 돌아오니 Kojo가 차에서 기다리고 있다. 점심을 먹었냐고 물으니 해결했다고 한다. 나는 속이 좋지 않아서인지 식욕이 전혀 없다. 이것도 고산증세다. 바로 출발했다. 보트까지 타고, 볼 것 다 보고 말도 충분히 탔으니 빨리 숙소로 돌아가고 싶다. 혈중산소포화도가 87%다.(애플워치 정확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27만 마일을 뛴 니산 패스파인더는 당연히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다.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는데 비포장도로에는 이제 제법 오가는 차들이 있다. 엄청난 먼지를 날리며. 난 거의 반은 졸은 거 같다. 늘어선 설산과 눈앞의 초원을 봐야 하는데 봐야 하는데 하면서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 없다. 전형적인 고산증상이다.
나린에서 콜수 호수의 당일 투어는 꼭 12시간 소요되었다. 비포장 도로 왕복 8시간, 말 타고 보트 타고 호수 주변에서 네 시간. 비포장이기는 하지만 두세 군데 유실된 곳을 제외하고는 도로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도로가 바짝 말라 있을 때는 굳이 사륜구동까지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비가 내리면 진창으로 변할 구간은 제법 많았다. Kojo와 WhatsApp 연락처를 교환하고 작년에 주지 못한 팁까지 챙겨주고 격하게 포옹하고 헤어졌다.
Kojo가 영어를 조금만 더 잘하면 좋을 텐데...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