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학동기 셋이서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일상적 얘기를 하다가 대통령 탄핵문제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그 두 친구가 모두 탄핵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한 친구가 부정선거는 의혹에 그치는 것이 아닐뿐더러, 계엄포고가 탄핵될만한 거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에 동조하는 다른 친구는 저한테 그놈이 대통령 돼도 좋다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탄핵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제가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친구들이 보기에 저는 현실파악 못하는 한심한 놈이었습니다.
셋이 모이면 하나가 왕따 되거나, 소외되거나, 차별받는다 했는데, 그날 실감했습니다.
영화 '콘클라베'를 소개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콘클라베를 시작하며 추기경의 단장으로 콘클라베를 주관하는 로렌스 추기경은 매뉴얼대로 쓴 글을 낭독하다 안경을 벗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교회에 주신 선물은 다양성입니다. 무엇보다 두려운 죄는 확신이고 확신은 통합과 포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그리스도조차 마지막에는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앙은 필요 없을 것입니다. 의심하는 교황을 보내주십사 주님께 기도합시다.”
좋은 문장, 아니 저만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문장을 보면, 특히 한국어로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저는 원문으로 읽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낍니다. 인간은 언어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하면서 ChatGPT에게 영어로 번역을 부탁했습니다.(아니다. 명령했다고 해야 한다)
“The gift that God has given to the Church is diversity. The most fearful sin is certainty, for certainty is the mortal enemy of unity and inclusion. Even Christ Himself was not certain in the end. If there were only certainty and no doubt, faith would not be necessary. Let us pray that the Lord sends us a Pope who doubts.”
너무 깔끔한 문장입니다. 너무 깔끔해서 나를 위한 문장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너무 깔끔해서 영어 원문은 아닐 거라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대본을 검색해서 쉽게 찾았습니다.
St Paul said that God’s gift to the Church is its variety. It is this variety, this diversity of people and views that gives our Church its strength. In the course of a long life in the service of our Mother the Church, let me tell you that there is one sin I have come to fear above all others. Certainty. Certainty is the great enemy of unity. Certainty is the deadly enemy of tolerance. Even Christ was not certain at the end. My God,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 Our faith is a living thing precisely because it walks hand in hand with doubt. If there was only certainty no doubt, there would be no mystery, and therefore no need for faith. Let us pray that God will grant us a Pope who doubts. Let Him grant us a Pope who sins and asks for forgiveness. And carries on.
이제야 확실히 영어 같네요! 영어가 그렇게 깔끔할 리가 없지요. 그렇게 싫어하던 영어가 심지어 재미를 주는 것을 보니 오래 살았나 봅니다. 일종의 기적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거리에서 탄핵반대와 탄핵찬성을 외치는 저 많은 사람들은 확신에 차 있습니다.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강요하는 사람들입니다. 저 역시 친구들과 식사하는 중에는 탄핵해야 한다고 확신에 찬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화 '콘클라베'의 대사를 음미(?)하고 나서 마음을 바꿨습니다. 확신을 버렸습니다.
확신에 찬 사람들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