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이 좀 그렇다. 뭔가 좀 불편하다. 번역 때문인가 해서 원문을 보니 'On Death and Dying'이다.
Death와 Dying에 대한 얘기다.
늙어감과 죽음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다 보니 어느 책에서나 이 책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1969년에 처음 나온 책이니 참 오래된 책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도 관심 없는 주제에 대한 책임에 틀림없다.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스위스 태생의 정신과 의사다. 스위스에서 공부했지만 미국인 의사와 결혼하여 미국에서 주로 활동했다. 죽어가는 사람들(시한부 환자)과의 수많은 대화를 통하여 죽음의 5단계(부정, 분노, 협상, 우울 그리고 수용)를 처음 제시했고,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라고 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란 난제를 대면하지 않고는 삶을 의미 있게 완성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1960년대에는 의사들은 죽음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말자는 입장을 고수했고, 환자와 환자 가족들은 죽음을 말하지 않는 분위기에 너무도 쉽게 동조했다. 그리고 시한부 환자는 종종 아무 권리도, 의견도 없는 사람 취급을 당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우리 중에 70세를 넘기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대부분 독특한 일대기를 살고, 우리 자신을 인류 역사라는 직물에 짜 넣는다."란 문장이 있다. 70세라는 숫자에 이 책이 참 오래전(1969년)에 쓰였음을 새삼 느낄 수 있다.
동료의사의 추천사에서 이 책은 호스피스 운동(좀 더 확대한다면 호스피스와 완화의학이라는 새로운 전문영역까지)의 시초로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이 책이 일으킨 변화는 의료계와 간호계의 거의 모든 분야에 스며들었다고 한다. 1990년 후반이 되어서야 환자의 활력 징후(체온, 맥박, 혈압, 호흡)에 통증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말기 환자의 통증에 대한 완화가 그전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음을 뜻한다. 마약성 진통제의 남용을 걱정하느라 임종기에 들어선 환자에게조차 의사들은 처방을 꺼렸다고 한다.
급속 냉동된 사람(의료기술이 발전한 미래에 해동되고자 한)들의 미망인이 연금을 받을 수 있는지, 혹은 재혼을 할 수 있는지 묻는 사람들을 보고 웃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질문들은 외면하기에는 너무도 심각한 문제다. p.54
나는 누구나 실제로 죽음과 맞닥뜨리기 전에 평상시에 습관적으로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믿는다. p. 73
출산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아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음과 죽어감을 우리 삶의 고유한 일부로 여기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p. 246
우리의 내면에 어린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지 우리는 자주 잊곤 한다. p.271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죽음은 성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청소년기는 그 자체로 이미 힘든 시기이고 그 시기에 보태어진 부모를 잃은 상실감은 그야말로 감당하기 벅찬 일일 것이다. p.299
교육, 교양, 사회적 유대, 직업적 책무가 낮은 소박한 사람일수록, 물질적 부유함, 안락함, 대인 관계의 측면에서 훨씬 더 잃을 게 많은 부유층 사람들보다 대체로 죽음을 맞이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덜 느꼈다. 고통과 시련, 노동으로 단련된 사람, 자식들을 키워놓고 만족한 사람일수록 평화롭고 품위 있게 죽음을 받아들인 반면, 주변 환경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며 수많은 사회관계를 구축했지만 정작 마지막 순간에 가장 의미 있는 대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p.423
본질적인 의미의 진정한 신앙인은 지극히 소수였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그들은 신앙의 도움을 받았으며 무신론자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 p.423
죽음이란 죽어감이 끝나는 순간이라고 몽테뉴가 말했던가? 우리는 죽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에 수반되는 절망감, 무력감, 소외감으로 인한 죽어감에 대한 두려움이 문제임을 깨달았다. p.426
그들은 해결하지 못한 일들 때문에 삶을 놓지 못하고 있다. p.430
우리는 그들이 자신의 병원 친구 중 한 명이 죽을 때 거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런 일이 당신에게는 일어나지만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아.'라는 무의식적 확인이기 때문이다. p.436
살아 있는 사람을 돌보기 위해 병원을 나서야 할지 아니면 임종을 위해 병원에 있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다. p.438
저자는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시구를 여기저기 인용했다. 타고르의 철학적인 문장들을 깊이 사랑한 듯하다. 타고르가 누군지는 알지만 그의 시를 읽은 적 없기에 그의 시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이 행복이다. 더 늙으면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한다.
탄생이 삶의 일부이듯 죽음도 삶의 일부입니다.
드는 발도 걸음이고 딛는 발도 걸음입니다. -타고르, [길 잃은 새들]-
작은 진실에는 분명한 말이 있고 커다란 진실에는 위대한 침묵이 있습니다. -타고르, [길 잃은 새들]-
오늘도 나는 내게 묻는다.
‘잘 살고 있는가?’
우아하게 늙어가다가 평화롭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고 싶다.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