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경험일까? 낭비일까?
“여행을 다녀와도 남는 게 없다”거나 “사진 몇 장, 피곤함만 남는다”며 낭비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남는 것이 없다는 말은 생산적이지 못했다는 말이다. 생산적인 것에 돈과 시간을 써야 한다고 너무 어릴 적부터 교육받았다. 특히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도 지겹게 들었다. 자본주의에서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기에 돈이 되어야만 생산적이란 소리를 듣는다. 돈이 안되고 오히려 돈을 써야 하는 여행에 대해 낭비라고 말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은퇴한 어르신에게 낭비란 없다. 물론 경험일 수도 없지만.
낭비란 비용 대비 효과가 부족한 경우인데, 효과의 충족과 부족을 가를 기준을 어르신이 되면서 상실했기 때문이다.
실존의 엄숙함만 남은 상황에서 경험도 낭비도 아무 의미가 없다.
딸이 손주들과 호찌민에서 한 달(아니 40일) 살기를 함께 하자고 했을 때 망설였다. 기대 반, 걱정 반이라...
새로운 환경은 독특한 경험과 신선한 추억을 만들어낸다. 손주들과의 외국생활이 가져올 추억이 기대된다. 그렇지만 딸과 손주들이 기대하는 할아버지의 역할(?)은 부담스럽다. 무엇인가를 꼭 해야 한다는 것은 항상 의무나 책임처럼 느껴져 이제는 본능적으로 피한다. 나는 아무 역할도 없다는 전제로 시작이다. 존재함만이 역할인 허수아비가 생각난다.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국가가 한국인 무비자 체류가능기간이 30일인데, 베트남은 45일이다.
딸은 손주들을 호찌민의 국제학교 여름캠프에 4주 등록했다. 학교 가까운 아파트를 한 달 렌트하고, 이후의 열흘간은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딸과 손주들에게 호찌민 한 달 살기는 경험이다. 결코 낭비일리 없다.
한 달 살기를 함께하는 나도 경험일까?
아니다. 내게는 추억 만들기다. 딸과 손주들에게 기억을 심는 중이다. 이왕이면 좋은 기억을 남기려고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