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박 9일의 두 번째 키르기스스탄 방랑이었다. 방랑은 확실한 목적이 없는데, 이번 방랑에는 목적이 있었다.
Kol(Kel) Suu lake를 보겠다는 오직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Kol Suu lake(해발고도 3510m)는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790m)에서 다섯 시간을 마슈르트카(미니버스)를 타고 일단 나린(2050m)이란 도시(나린스카야주의 주도지만 인구가 2만여 명 밖에 안되는데 도시라고 할 수 있을까?)로 가야 한다. 나린에서 비포장도로를 네 시간이나 달려 호수 입구인 유르트캠프촌(3300m)을 간다. 그 중간에 해발 3410m에 위치한 검문소를 통과한다. 현지 여행사를 통하여 미리 발급받아야 하는 Border zone permit이란 것이 검문소에서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유르트 캠프촌에서 1박 이상을 한다. 캠프촌에서 정작 호수까지는 편도 7km다. 이 길은 걷든지, 말을 타고 가야 한다.
호수는 무시무시한 암석협곡의 입구가 산사태로 막혀 생성된 것이다. 호수면은 해발 3510m다. 호수 주변을 트레킹 할 수 없다. 그래서 호수의 안쪽을 보기 위해 배를 타야 한다. 딱히 배를 댈만한 곳도 없기에 배를 타고 한 번 돌아보는 것으로 호수 관광이 끝이다. 배를 타고 있는 시간은 20분 정도다.
20분 정도 배 타고 유람하는 것이 관광의 하이라이트다.
유르트에서 숙박하는 것은 키르기스스탄 전역에 산재한 유르트에서 숙박하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 유르트가 위치한 지역의 경치가 다르고, 유르트가 위치한 곳의 해발고도가 다를 뿐이다. 심지어 비슈케크의 게스트하우스 마당에도 넘쳐나는 여행객을 위한 유르트가 있다.
호수에서 배 타는 곳에서 한국 단체관광객을 만났다. 18명의 평균 70세 어르신들을. 심지어 어르신들은 마지막 7km 구간을 걸었다. 난 고산증상 때문에 말을 탔는데. 유르트 캠프촌의 규모를 보면 이제 Kol Suu 호수에도 여행객의 방문이 많아질 것이 확실하다. 캠프들 간의 경쟁으로 와이파이(아마도 위성을 이용한), 사우나, 샤워실, 그리고 유르트가 아닌 하우스 등을 갖춘 캠프촌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 장엄한 호수의 경치를 보기 위해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 왜? 고산증상 때문에. 다른 여행객들처럼 유르트에서 자고 싶지 않다. 왜? 고산증상과 열악한 화장실 때문에. 그래서 나린에서 당일 투어로 다녀온 것이다. 꼭 12시간 걸렸다.
Kol Suu Lake는 처음이지만 비슈케크와 나린은 두 번째다. 갔던 곳을 다시 방문하면 익숙함이 안정과 여유를 가져다준다. 그래서 비슈케크나 나린에 있을 때 편안했다. 그 안정감과 여유가 대중목욕탕, 현지 이발소, 골프장 등의 새로운 경험을 시도할 의욕을 생기게 했다. 새로운 경험은 보통 예상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상황을 맞게 한다. 그리고 그 애매모호함을 벗어나면서 난 희열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 문제해결의 기쁨을 즐기는 것이다.
어르신이 되도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란 별로 없다. 그렇고 그런 유사한 상황이고 비슷한 여행이다. 유튜브의 동영상들과 구글맵의 사진들을 열심히 보다 보면 처음 가는 곳도 와본 듯한 느낌이 든다. 데자뷔! 그렇기에 와봤다는 것이 가봤다는 것이 대단한 목적일 수 없다.
가는 과정, 방랑하는 과정 중에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또는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한 번도 늙어보지 못한 생을 살고 있다는, 처음 늙어가는 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키르기스스탄은 방랑하기 좋은 곳이다. 실존의 엄숙함을 느끼기 좋은 곳이다. 고산증상이 좀 불편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