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한 번 여행했던 곳을 다시 방문하기 쉽지 않다. 웬만큼 좋았다 하더라도...
좋았던 기억보다 더 좋을지 모르는 장소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하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여행이 아니고 방랑이지만, 방랑에도 애매모함에 대한 불편함과 호기심 충족에 의한 만족감이 있다.
낮이 가장 긴 하지를 전후하여 키르기스스탄을 다시 간다. 아주 좋았던 곳은 세 번을 가야 한다는 나의 지론에 따라 작년 이 맘 때 2주간 방랑했던 곳을 이번에는 8박 9일로 비교적 짧게 계획했다. 왜? 키르기스스탄에 대해 제법 많이 안다고 생각하니까... ( https://brunch.co.kr/brunchbook/kyrgyzstan )
이번 여행에는 목적이 있다. Kel Suu lake( https://maps.app.goo.gl/4AEc4hcwhngCBNSY6 )를 보러 가는 것이다. 호수는 중국과의 접경지대에 있어 따로 Permit을 받아야 한다. 한 달 전에 나린의 CBT(여행사)에 돈과 여권사진을 보내 신청해 두었고, 기사 딸린 4X4 차량도 예약했다.(하루에 160유로)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 직항으로 날아가, Apple hostel에서 3박 하고, 나린으로 가서 3박 하는 동안 호수를 방문(?)하고, 다시 비슈케크로 돌아와 1박 하고 밤 비행기로 귀국하는 일정이다. 일정의 숙소를 다 예약했으니 방랑이라기보다 잘 짜인 여행에 가깝다.
비슈케크의 마나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꼭 1년 만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전자여권 소지자를 위한 자동입국심사대가 설치되어 있다. 내 전자여권도 가능할 것 같은데, 여권에 스탬프를 찍고 싶어 기존의 입국심사를 받았다. 키르기스스탄은 입국신고서도 필요 없고 세관신고서도 없다. 정말 호의적이다.
짐을 찾고 세관을 지나 출구로 나오면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의 환영인파(?)를 만난다. '택시? 택시?' 하며 열렬히 환영하는 사람들을 피해 한적한 곳에서 '얀덱스 고' 앱으로 택시를 호출하고 싶지만 거의 불가능하다. 자신의 택시에 관광객을 태우려는 절박함(?)을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뿌리치기 쉽지 않다. 작년처럼 뿌리치고 나서도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기에 이번에는 애플호스텔에 공항픽업을 부탁했다. 픽업 나온 사람이 있는 외국인은 바로 포기하기 때문이다.
비와 함께 내린 흙먼지를 뒤집어쓴 회색 현대 그랜저 차량에 탑승했다. 주행거리가 25만 km가 넘지만 차량 상태는 아주 양호하다. 엔진소리도 매끄럽고 하체소음도 없다. 'Bakyt'란 이름의 기사가 운전하며 자꾸 말을 건다. 운전을 하며 번역기까지 돌리며. 가뜩이나 피곤한데 사고 날까 봐 불안하기까지 하여 안전벨트를 채웠다. 자신이 카라콜 출신이라 이식쿨호수나 알틴 아라샨을 잘 안다며 자신이 구경시켜 줄 수 있다고... 'Bakyt'은 러시아로 happiness를 뜻한다며... 작년에 카라콜에서 6박이나 해서 이번에는 카라콜 가지 않고 나린을 간다 해도,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계속 자신이 'Service'할 수 있단다. 무엇이든지.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다고...
익숙함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작년 키르기스스탄 방랑길에서 비슈케크 출발 전에 이틀을 머물렀던 애플 호스텔의 장점은 버스터미널 바로 옆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넓은 마당에 큰 지붕을 씌운 평상이 있고, 평상 위에는 서양 젊은이들이 노트북이나 스마트폰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거의 매일 무리를 지어 당일 투어를 떠난다. 키르기스스탄의 베이스캠프로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했기에 망설임 없이 비행기표 사자마자 예약했었다.(욕실이 있는 개인실은 몇 개 없다)
아침에 일어나 터미널 구경과 산책을 겸하여 호스텔의 뒷문을 열었다. 뒷문이 바로 터미널과 연결된다. 뒷문을 열자 앞이 막혔다. 공사장의 울타리 같은 벽이 세워져 있다. 다시 정문으로 나와 골목길을 돌아 터미널 앞에 섰다. 터미널 전체가 울타리 쳐진 공사현장이다. 그렇게 많던 버스와 합승택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2024년 8월에 터미널을 외곽으로 이전하고, 기존부지를 개발 중이란다. 아직 터미널 건물을 철거하지도 않았으니 터파기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터미널 바로 옆이라 애플호스텔을 예약한 것인데...
모든 계획이 계획한 대로 진행된다면 무엇이 문제가 될 수 있겠는가?
호스텔에서 배낭을 메고 걸어 나와, 복잡한 버스터미널을 가로질러, 익숙하여 제법 여유 있게 나린 가는 버스나 합승택시를 골라 타려던 내 계획이 어그러졌다. 호객꾼들에게 둘러싸여 생소하고 정신없는 새 버스터미널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혼란스럽다. 비슈케크의 하늘도 오늘따라 구름이 잔뜩 내려앉아 그렇잖아도 불편한 내 마음을 더욱 조여 온다.
숙박에 포함된 아침식사를 했다. 원래 오늘 해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던 것은 환전과 이발뿐이다. 그리고 시차적응을 핑계로 호스텔에서 푹 쉬는 것이다. 마음 편히 푹 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