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가 엉망이다. 하긴 내 좌석이 프리미엄 이코노미라고 얘기해주진 않았다. 라탐항공의 3x3 좌석 항공기 (B737 or A320)에서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은 제일 앞 4줄 정도를 지정하고, 연결된 3자리 좌석 중에 가운데를 비운 것이다. 내 항공편을 입력하고 ChatGPT에 물었다. 밥 줄까? 두 시간(에콰도로 키토에서 페루 리마) 정도의 거리에서는 밥 안 준단다. 그래서 키토 공항에서 굳이 먹고 싶지 않은 시저 샐러드를 사서 꾸역꾸역 먹었다. 그런데 탑승하자마자 근사한 연어 샐러드를 준다. 함께 포도주를 2잔이나 마셨다. 기분이 삼삼하다.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아시나요?
담배 한 대 물면 참 좋겠다. 그리고 위내시경하기 위한 수면마취할 때처럼 세상을 떠나도 좋겠다. 술이 이렇게 가끔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해 준다.
리마에서 환승하여 산티아고 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괜찮은 샌드위치를 준다. 포도주 2잔을 또 마셨다. 그렇게 삼삼한 기분으로 파타고니아를 향하는 방랑을 시작했다.
라탐항공의 프리미엄 이코노미의 좋은 기억을 갖고 파타고니아 방랑을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방랑을 끝내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애틀랜타로 가야 한다. 애틀랜타에서 한국 가는 비행기표는 거의 일 년 전에 구매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애틀랜타 직항은 10시간 이상 소요되고 밤비행기 밖에는 없다. 비즈니스석이 아니라면 앉아 가야 한다. 방랑자가 그렇게 비싼 비즈니스 편도 비행기표를 살 수는 없다. 남미에서 애틀랜타 가는 낮 비행기를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페루 리마에서 출발하는 라탐항공이 있다. 12:15 출발이고 7시간 소요된다.
페루 역시 파타고니아 방랑에 갈 일이 없는 곳이다. 순전히 애틀랜타를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리마 가는 항공편을 검색했다. 옵션이 두 가지다. 직항은 출발 시간이 좋지 않다. 늦은 밤 리마에 도착한다. 산티아고 경유 편이 함께 검색되는데 산티아고 환승대기 시간이 한 시간 15분이다. 좀 빠듯할 듯 보이지만 같은 라탐항공이 연결해 주는 것이라 안심이 된다. 안 좋은 시간 도착의 리마 직항을 선택할 것이냐? 좋은 낮 시간의 산티아고 경유를 선택할 것이냐? 가격은 같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산티아고 가는 비행기의 내 좌석이 1A이다. 당연히 창가자리다. 1C에 키가 큰 백인 어르신이 앉았다. 승무원이 지팡이를 받아 오버헤드빈에 넣는다. 나보다 열 살은 많을 것 같아 보인다. 노인은 앉자마자 안경을 쓰고 신문을 읽기 시작한다. 신문의 깨알 같은 글자가 그 나이에도 잘 보이나 보다. 큰 햄이 두 장 있는 샐러드를 나눠준다. 어르신이 포도주와 스파클링 워터(Agua con Gas)를 주문한다. 나도 따라 주문했다. 탄산수를 포도주와 함께 마시는 것은 처음이다. 괜찮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노인이 포도주를 추가 주문한다. 나도 따라 주문했다. 내릴 때 보니 노인은 휠체어 서비스를 받는다.
산티아고 공항의 환승통로가 무척 길다. 걷는 것에 문제가 없거나 휠체어 서비스를 받는다면 환승에 아무 문제가 없다. 공항은 아주 깨끗하고 한산하다. 심지어 시간 여유가 있어 면세구역에서 칠레 현금 남은 것으로 남미 풍의 화려한 모자를 하나 샀다.
산티아고에서 리마 가는 비행기의 내 좌석은 2F다. 안데스를 볼 수 있는 오른쪽 창가 자리다. 창가 자리에서 무엇을 볼 것이냐에 따라 오른쪽과 왼쪽을 결정한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태양의 위치다. 오후 시간의 태양의 위치와 마주하면 창문가리개를 열 수가 없다. 1F가 제일 좋지만 내가 표를 구매하는 시점에 1F는 이미 선점되어 있었다. 할 수 없이 2F를 지정했다. 2D에 연세가 있는 아줌마가 곧 터져 나갈 것 같은 큰 핸드백을 들고 앉는다. 가볍게 눈인사 정도는 한다. 4 시간을 함께 가야 하니.
비행기가 이륙하고 안전벨트 사인이 꺼지자 아줌마가 가운데 빈자리로 옮겨 앉는다. 나를 좋아하나? 빈자리에 놓아뒀던 내 베개와 담요를 들더니 자기 것 마냥 묶음을 풀고 이리저리 놓더니 두 자리에 눕는다. 엉덩이를 받힌 베개가 내 엉덩이 쪽으로 밀려온다. 영 불편했던지 잠시 뒤에 일어나 앉는다. 승무원들이 음식과 음료 서빙을 시작하는데 계속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다. 계속 두 자리를 독식하고 가겠다는 마음이다. 안 되겠다 싶어 정색을 하고 자리를 비우라고 했다. 왜냐하면 가운데 좌석 테이블에 와인과 탄산수를 올려 두어야 하니까. 그렇게 뻔뻔한 아줌마를 밀어냈다.
그 이후 4 시간 동안 아줌마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4 시간 동안 화장실을 못 갔다. 나도 참 소심한 인간이란 생각이 든다. 포도주와 탄산수는 착륙할 때까지 가운데 좌석의 테이블에 올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