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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Sep 09. 2016

캠핑카를 갖고 싶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동행이다.


4인용 벤츠 캠핑카

뉴질랜드에서 경험한 캠핑카는 이렇다. 벤츠의 스프린터라는 미니버스에 네 명이 먹고 잘 수 있는 작은 집을 올려놓은 것이다. 스프린터는 현대자동차의 스타렉스보다 조금 큰 솔라티와 동급의 미니버스이다. 차체에 비해 올려 놓은 집의 크기와 무게가 커서 뉴질랜드 고속도로의 캠핑카 제한속도인 시속 90키로를 내기도 버겁다. 장보기 위해 마트를 갔을 때는 주차가 용이하지 않다. 따라서 하루의 이동거리가 길면 운전이 힘들고 아주 피곤하다. 오클랜드 같은 대도시에서는 이동과 주차에 엄청 신경이 쓰인다.

운전석과 조수석 바로 뒤에 두명이 앉을 수 있는 벤치석이 있어 이동할 때는 네 명이 앉아서 간다. 운전석과 조수석 위의 공간에서 두명이 잘 수 있다. 그러나 천장이 너무 낮아 폐쇄공포증이 느껴진다. 프로판을 이용하는 가스렌지, 물탱크를 이용한 싱크대, 배터리와 외부 전원을 이용하는 냉장고, 전자렌지, 작은 TV 등이 있고 샤워부스와 작은 양변기와 소변기도 있다. 캠핑카 뒤쪽에는 비교적 큰 식탁이 있다. 식탁을 치우면 셋은 충분히 잘 수 있는 침대가 만들어진다. 거의 모든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지만 물탱크의 용량이 크지 않고 변기의 오물탱크 역시 크지 않아 매일 오물탱크를 청소해야 하고 물탱크도 열심히 채워야 한다. 아무 곳에나 주차하고 잘 수는 있지만 모텔비 값에 버금가는 캠핑장을 열심히 찾아 다니는 이유는 샤워실과 화장실 뿐 아니라 배터리를 충전할 전원과 오물탱크를 비우는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는 캠핑카를 위한 시설이 워낙 잘되어 있고 많다. 대도시 외곽에도 많은 캠핑장이 있다.

경치 좋은 곳에 있는 비교적 큰 캠핑장을 가보면 캠핑카가 아니라 큰 버스를 개조한 캠핑버스가 보이기도 한다. 이런 큰 버스들은 대부분 노인부부가 움직일 수는 있으나 움직이지 않는 집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버스 주변에 가꾸어 놓은 꽃밭을 보면 이동할 마음이 없음을 알 수 있다. 한 할머니는 자신의 캠핑버스를 기웃거리는 내게 자신의 집을 사라고 권하기도 했다.
 
캠핑카가 갖고 싶다.

환갑이 가까운 이 나이에 내가 갖고 싶은 캠핑카는 화장실에 샤워부스까지 갖춘 4인승 캠핑카가 아니고 뉴질랜드의 노부부가 사는 움직이지 않는 큰 캠핑버스도 아니다. 두명의 좌석과 두명이 잘 수 있는 침대, 그리고 커피와 라면 정도 끓일 수 있는 간단한 취사도구 만을 갖춘 미니밴이다. 이런 미니 캠핑밴은 기동성이 좋다. 아무 때나 갑자기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

어느 초가을 저녁 식사후 뉴스에서 대청봉에 첫 눈이 왔다고 호들갑을 떤다. 갑자기 권금성에 오르고 싶고, 동해의 일출이 보고 싶다. 친구들과의 카톡방에 내일 아침의 동해 일출을 보러 지금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바로 전화요망! 하고 글을 남긴다. 가장 먼저 전화한 친구를 픽업하여 곧 개통될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탄다. 두시간 만에 동해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주차하고 맥주 한캔씩을 친구와 마신다.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양치질만 하고 캠핑카에서 일찍 잔다. 새벽에 일어나 커피를 끓이고 동해바다 위로 떠오르는 달걀노른자 같은 태양을 본다. 그리고 캠핑카 안에서 다시 늦잠을 잔다.  충분히 잔 후 9시쯤 일어나 근처의 맥도날드를 찾는다. 내가 좋아하는 핫케익과 커피로 우아한 아침식사를 한다. 다음은 근처의 목욕탕을 찾는다. 아니 해수탕을 찾는 것이 더 쉬울지 모르겠다. 목욕탕을 나설 때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이제는 설악동으로 향한다. 권금성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굳이 샤워장 있는 오토캠핑장을 찾을 이유가 없다. 워낙 대중목욕탕이 많아서... 인구에 비하여 음식점이 이렇게 많은 나라도 없다. 바베큐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식사를 만들어 먹을 이유도 없다. 외딴 섬에도 음식점이 있기에...

결국 중요한 것은 동행이다. 아무때나 함께 떠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 서울에서 떨어져 집을 짓고 사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 멀리 살고 있다면 어느날 불쑥 캠핑카 몰고 찾아온 친구가 얼마나 반갑겠는가? 그런 반가움, 설악산의 첫 눈, 정동진의 일출을 위해 캠핑카가 갖고 싶다.

캠핑카 안에서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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