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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Sep 05. 2016

십이동파도

절정의 순간을 뜨거운 심장에 낙인찍고 싶다.


십이동파도는 군산 앞바다에 있는 12개의 무인도 군도이다. 구글맵에서는 검색되지 않는다. 비응항에서 서쪽으로 직선거리 33 km 나 떨어져 있는 섬이라 배로 가려면 해경에 입출항신고를 해야 한다. 비응항으로 내려오는 중에 아들이 스마트폰에서 십이동파도를 찾았다. 연도, 방축도, 말도, 선유도 등은 지난 8월에 가보았으니 새로운 섬을 찾은 것이다.

2016년 9월3일 새벽에 아들의 레저보트 포카리호를 바다에 띄웠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 다섯시간도 자지 못했으니 당연하다. 어제 내려오는 길에 저녁 8시 경에 고속도로 상에서 트레일러의 오른쪽 바퀴가 펑크났다. 대천 IC 2 km 직전에서 갓길에 정차시키고 아들과 한시간을 기다렸다. 고속도로 상황실에서 연락 받고 엄청 큰 압축기를 실은 1톤 트럭이 왔다. 자주 하는 일인양 트럭 기사는 20분 만에 주저앉은 트레일러 타이어를 가져온 새타이어로 교체했다. 한시간 반 정도 지체하여 비응항 근처 모텔에 도착한 것은 거의 자정이 가까워서 였다.

낚시의 재미는 집을 떠나기 전부터 시작한다. 누구와 어디를 갈 것인가? 어떤 고기를 잡기 위한 채비를 준비할 것인가? 배를 타고 항구를 빠져 나오면서는 가슴이 설렌다. 얼마나 큰 고기가 오늘 잡힐 것인가를 상상하며...  이런 기대와 바램으로 오늘도 수많은 낚시꾼들이 바다를 향해 낚시대를 던진다.

새벽에 비응항을 나오면서 보는 경치는 압권이다. 특히 최근 지나간 태풍의 영향으로 대기가 엄청 깨끗하다. 바다와 구름이 만들어 놓은 조형물에 떠오르는 태양빛이 색칠하여 만드는 경치는 순간순간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노랗게 물든 하늘은 다른 행성의 하늘처럼 보이고 멀리 드문드문 보이는 섬들은 전혀 다른 세상일 것이란 상상을 하게 한다. 왼쪽으로 보이는 고군산군도와 오른쪽의 연도 사이에 저멀리 십이동파도가 보인다. 지난 8월 이틀 연속으로 이 곳 비응항을 기점으로 출조에 나섰지만 당시에는 낮게 드리운 스모그로 십이동파도는 보이지 않았다. 오늘 대기가 정말 깨끗하다. 근 한시간을 달려 십이동파도에 도착하였다. 두척의 어선만이 근처에서 조업을 하고 있다. 어선에 어청이라고 쓰여있는 것으로 보아 가까운 어청도에서 온 것이리라 추측한다. 북쪽으로는 외연도가 서쪽으로는 어청도가 아주 가깝게 보인다.

첫수로 올라온 것은 제법 큼직한 놀래미였다. 아들이 이렇게 큰 놀래미는 처음 본다며 사진을 찍어준다. 손바닥 반만한 빨간 도미가 배에 낚시바늘이 꿰여 올라온다. 도미는 도미다... 우럭과 놀래미가 심심하지 않게 올라온다. 힘이 좋은 고기들이라 끌어 올리는 손 맛이 일품이다.

점심은 편의점도시락으로 배에서 때웠다. 오후 들어 제법 큰 입질과 함께 33센티 우럭이 올라왔다. 아들과 함께 올 봄부터 낚시를 시작한 이후에 잡은 수많은 우럭 중에서 가장 큰 놈이다. 우럭을 건져 올리기 무섭게 묵직한 입질이 손에 느껴진다. 우럭과 놀래미는 끌어 올리는 중에 고기가 요동을 치는 것이 느껴지는데 이 놈은 조용하지만 무게감이 느껴진다. 거의 수면 가까이 올라오자 하얗고 큰 배가 보인다. 그렇게 잡고 싶던 광어다. 이렇게 큰 놈은 뜰채로 건져야 한다. 잘못하면 건져올리다가 놓칠 수 있다. 아들이 뜰채로 건져 올려 길이를 재보니 44센티였다.

아들과 거의 24시간을 붙어 있었다. 향남의 아들기숙사에서 출발하여 비응항 근처 모텔에서 자고 새벽부터 오후 두시까지 낚시하고 배를 들어 올려 세시간 운전하여 다시 향남으로 돌아 오는데 꼭 24시간이 지나갔다. 모텔의 더블침대에서 함께 잔 다섯시간을 포함하여... 24시간의 잊지 못할 추억을 함께 만든 것이다.

추억은 사건사고와 가슴이 저린 경치가 있어야 더 뚜렷하게 각인된다. 트레일러 타이어의 펑크는 위험하고 드문 사고이고, 내 생애 가장 큰 우럭과 광어를 잡은 것은 사건이다. 일출과 함께 한 항구의 경치와 다가갈수록 눈 앞에 펼쳐지는 십이동파도는 가슴을 저리게 한다. 추억을 만드는 시간은 존재의 기쁨과 환희의 순간들로 채워진다. 내가 끌어 올린 배가 흰 광어를 아들이 뜰채로 건지는 순간이 환희의 절정이다. 아들이 준비해준 채비와 아들이 끼워준 미끼로 내 생애 최대의 광어를 잡은 기억을 사진으로 남긴다. 그러나 배 위로 올라온 광어는 이미 절정의 순간을 지났다. 몇 시간 뒤에는 소주의 안주일 뿐이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을 잡아 두기 위해 연신 아이폰의 셔터를 누르지만 눈으로 느낀 그 순간의 감흥을 사진에 남길 수는 없다. 아련한 기억만이 사진에 남을 뿐이다.


가슴에 담아야 한다. 절정의 순간을 뜨거운 심장에 낙인찍고 싶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 순간을 정지시켜 절정의 순간을 붙잡아 두고 싶다...

첫수인 놀래미
선장과 갑판원
손바닥 반만한 뽈락 한마리 잡은 아들
십이동파도
오늘의 조과
우럭 두마리
광어 한마리, 우럭 두마리, 놀래미 세마리
포카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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