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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Aug 04. 2016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여한없이 살았다는 고백의 근거다.


나는 이스탄불에 아야소피아만 덩그러니 우뚝 서있을 줄 알았다. 터키 오기 전에는...


소피아성당 내지는 소피아사원으로 나에게 인식되어온 아야소피아는 성당이었다 모스크이었다 지금은 박물관이다. 아야소피아를 마주보고 우뚝 서있는 블루모스크는 아직도 많은 무슬림들이 기도하기 위해 드나드는 곳이다. 아름다운 이스탄불의 스카이라인은 여기저기 우뚝 솟아있는 모스크들이 만들어 낸다. 그만큼 큰 모스크들이 많다.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 사이의 넓은 광장은 관광객과 현지인들로 항상 인산인해를 이룬다. 사진찍느라 찍히느라 다들 바쁘다.

셀카봉이 유행이다. 터키에서도 단돈 10리라(3800원)면 기념품가게에서 어디서나 쉽게 살 수 있다. 아야소피아, 블루모스크 뿐 아니라 터키 어디를 가도 셀카봉을 든 남녀를 쉽게 볼 수 있다. 저렇게 찍은 많은 사진들이 페북에 오르고 인스타그램에 오를 것이다. 사람들은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확인하고 싶은 그 마음이 사진 속 아름다운 풍광이나 유적지에 자신의 얼굴을 껴넣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진으로 자신이 그 때 그 곳에 존재했음을 두고두고 증명하는 것이다. 합성할 수도 있지만 사진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나는 아쉽다. 사진과 함께 그 때의 생각, 그 때의 느낌을 함께 기록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런 장치나 도구를 누가 발명한다면 처음 사진을 발명했던 것보다 획기적인 업적이 될 것 같다. 셀카봉을 잡고 배경속에 내 얼굴을 넣으면서 내 생각과 내 느낌도 함께 찍히는 그런 상상을 해본다.

길에서 오렌지와 자몽을 짜준다. 순식간에 두개의 자몽이 컵 하나에 담긴다. 가격은 5 리라. 2000원이 안된다. 이렇게 싸고 맛있는 것은 계속 자주 먹어줘야 하는데... 아쉽다.

만 3주가 지난다. 터키에서 혼자...

오늘은 오전에는 호텔에서 딩굴다 오후에는 테러도 있었고 쿠데타도 있었던 아타튀르크 공항 라운지에서 시간 보내다 오후 5:30의 아시아나 귀국비행기 타면 집에 간다. 너어무 좋다.

할아버지들이 귀여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손주들이 오면 반갑고, 싫컷 놀다가 가면 더 좋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공항가는 셔틀도 예약했고 아시아나 체크인도 했다. 터키에서 세번 비행기타고 점핑했다. 스마트폰으로 표사고 스마트폰으로 체크인하고 모바일보딩패스로 비행기 탄다. 아직 모바일 보딩패스를 사용하는 사람이 흔하지 않지만 시스템은 이미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항공사의 체크인 카운터의 직원도 점점 줄일 것이다. 컴퓨터와 인공지능 기술이 점점 일자리를 줄여가고 있다.

나도 호텔을 선택할 때 부킹닷컴이나 트립어드바이저의 평가나 랭킹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호텔의 주인이나 직원들은 이 평가에 목을 맨다. 체크아웃 할 때 말로 부탁하기도 하고 이메일로 부탁한다. 아니 내가 보기에는 애원한다. 제발 잘 써달라고... 공급과잉 시장에선 소비자가 왕이다. 싸고 좋은 것을 선택할 혜택과 자신의 경험을 평가할 권리를 갖는다. 여행자가 갑이고 호텔이 을이다. 더욱이 지금처럼 여행자가 없는 핫시즌에는...

나는 여행하며 절대로 선물을 사지 않는다. 살만한 물건을 보지 못했다. 좋은 것은 서울에 다 있고 인터넷에 다 있다. 선물이나 기념품들은 집안에서 딩굴다 버리지도 못하고 사용할 일도 없는 골치덩이가 되기 쉽다. 먹어버리는 것이라면 모를까? 이스탄불을 드나들며 두번 체크아웃한 호텔에서 두번 내게 선물을 준다. 부킹닷컴의 평가가 정말 중요하다. 터키차와 독특하게 생긴 터키 찻잔, 아몬드가 들어간 터키과자...

체크아웃한 한가한 호텔로비처럼 존재를 느끼기 좋은 장소도 없다. 대리석 바닥위에 유명한 터키카펫이 깔려 있고 은은한 음악과 에어컨디션된 공기와 넓고 큰 소파. 완벽한 장소이다. 가슴이 저리는 경치는 없지만 생리적으로 이렇게 완벽한 장소는 없을 것이다.

통굽의 구두, 스키니한 청바지, 상아빛의 무릎까지 내려진 긴 자켓, 베이지색의 히잡과 얼굴을 반쯤 가린 선글라스. 얼굴의 아주 일부만이 보이지만 거의 완벽한 아름다운 터키 여자가 내 앞을 지나간다. 나는 지금 존재하고 있다. 나는 지금 깨어있다. 가슴이 저리는 것 같다.

내가 터키 있는 동안 할아버지가 지민이에게 매일 전화하셨단다. 니 아빠 언제 오냐고? 내일 공항 도착하자마자 할아버지한테 전화하란다. 지민이가...

터키에 존재하였음을 완벽하게 인식하고 느낀 3주 였다. 쿠데타가 일어나고 데모크라시를 외치는 정치집회가 매일 밤 전국 주요광장에서 행해지는 혼돈의 터키에서 이방인으로 있었다. 가슴저리는 경치 속을 ATV 타고 휘젓기도 하고, 열기구 타고 패러글라이딩 하며 Bird's eye view 로 터키와 지중해를 보았다. 나를 반기는 터키 여인들과 친절하고 호의적인 터키 아저씨들과의 대화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엄선된 내가 찍은 사진 한장과 내 생각 내 느낌을 브런치 한페이지에 정리했다. 41장의 내 브런치는 터키에서의 내 존재를 증명한다.

존재이유를 찾기위해 떠난 내 터키여행은 계획보다 하루 일정을 당겨 끝난다. 한국음식에 대한 내 그리움 때문에, 가족과 친지들의 우려 때문에, 아시아나항공의 운항일정 조정 때문에 이렇게 끝나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지난 추억들과 가슴저린 터키의 풍광과 항상 깨어있음을 바라는 내 마음이 어우러져 내 인생의 귀한 시간을 채웠다.


여한없이 살았다는 고백의 하나의 근거다.

블루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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