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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로에섬을 떠나며

by 재거니

칠로에섬에는 외국 여행자가 별로 없다. 그래서 그런지 영어가 통하는 장소가 거의 없다. 묵언수행할 수밖에 없다. 번역기를 이용하여 간신히 소통하거나, 눈치와 몸짓으로 버텨야 한다. 파타고니아와는 딴 세상이다. 파타고니아는 유럽이나 미국 여행객들로 넘쳐난다.


칠로에섬에는 새들이 정말 많다. 광장 같은 곳에서는 새똥을 맞을까 항상 걱정된다. 날면서 똥을 싸다니! 하기는 늙은 새들은 날다가 툭 떨어져 죽는단다. (타조와 펭귄을 빼면) 날지 못하면 새가 아니다. 죽는 순간까지 난다.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죽기를 기다려야 하는 인간과 다르다. 카스트로의 아르마스 광장에 예쁜 여인의 조각상이 있다. 칠로에섬 민속신화에 나오는 바다 정령 La Pincoya라는데 새똥을 완전히 덮어쓰고 있다. 머리뿐 아니라 탐스러운 가슴 위에도 새똥이 흘러내리다 멈췄다. 세찬 비가 내리면 씻겨내릴까?


칠로에섬에서 4박을 하며 딱 한번 우버를 불렀는데, 깔끔한 새 중국자동차를 깔끔하게 생긴 백인아저씨(?)가 운전한다. 놀랍게도 영어가 좀 된다. 나이를 물었더니, 68세란다. 그런데도 이렇게 일하고 있다는 것에 한껏 자부심을 갖고 있다. 산티아고에서 태어났지만 칠로에섬 온 지 21년 되었단다. 나더러 일하러 온 거냐? 관광 온 거냐? 묻는다. 이럴 때 좀 당황스럽다. 일하러 온 것이 아니면 관광객인데, 난 내가 관광하러 다니는 것은 아니라는 착각이 든다. 그저 돌아다닐 뿐이다. 파타고니아의 야간(Yagan)족처럼 이동할 때 살아 있다는 단순한 기적을 느낀다.


야간족은 카누를 타고 파타고니아 섬 사이를 이동하며 사는 원주민이었다. 항상 이동을 하며 수렵채집생활을 하는 부족이다. 야간족의 언어가 있는데 2022년에 야간어를 할 줄 아는 마지막 여인(?)이 돌아가셔서 이제는 영영 없어졌다고 한다. 자신의 정체성이 야간족이라는 사람들이 1,600명 정도 남아 있단다. 언어가 없어졌으니 곧 멸종할 부족이다. 곧 사라질 것이 야간어와 야간족뿐이겠는가?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남미 대륙으로 이주했는데, 특히 칠레에 독일사람들이 많이 이주했단다. 그래서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나치 전범들이 또 칠레로 많이 도망쳤단다. 잘 생긴 우버 운전수 어르신이 그들의 자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칠로에섬에는 워낙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다. 우버 모는 어르신처럼 완벽한 백인은 보기 드물다.


칠로에섬에서 이발을 했다. 'Gentlemen's Barber Shop'에서 했는데 3명의 이발사가 전부 흑인이었다. 이제 별로 남지도 않은 머리 카락 아주 시원하게 밀었다. 손톱은 지난주에 갖고 다니는 작은 트리머로 어찌 깎았는데, 발톱 깎기는 쉽지 않다. 공중목욕탕이 있으면 사우나도 하고 발톱도 깎겠는데, 파타고니아에도 칠로에섬에도 목욕탕이 없다. 카스트로에 어울리지 않는 쇼핑몰의 6층에 남녀 공용미용실이 있다. 소위 Pedicure 의자에 앉아 레게머리를 한 흑인 여인에게 발톱을 깎였다.


칠로에섬을 떠나기 위해 카스트로 버스터미널에서 대기 중이다. 30분 이상 기다려야 내가 탈 버스가 도착할 것이다. 아마도 칠로에섬 남쪽 끝 Quellon에서 출발한 버스가 카스트로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Ancud를 거쳐 푸에르토 몬트로 갈 것이다. 오늘은 푸에르토 몬트까지 이동하여 하루 자고 내일 Balmaceda로 비행기로 간다. 이렇게 여유 있게 버스로 이동하는 날이 좋다. 끊임없이 변하는 경치가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중간 페리에서 점심을 해결할 것이다.


2층 버스의 2층 제일 앞 가운데 자리가 제일 좋다. 앞뒤 좌우 제일 흔들리는 자리이기는 하지만 시야가 파노라마다. 180도 시야다. 운전기사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다. 2층버스나 단층버스나 장거리버스들은 다 화장실이 있다. 흔들림 속에서 일을 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화장실의 존재 자체가 안정감을 준다.


존재 자체가 즐거움을 주는 사람, 그런 사람 있을까?

시야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