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소망
누가 내게 물을 수 있을 것 같다.
왜 방랑하고 있냐고?
Las Grutas의 스튜디오 형태의 민박집 침대에 누워 나도 생각 중이다.
오후 5시 기온이 29도지만 전혀 덥지 않다. 방에 에어컨도 없는데 자동차가 지나가며 만드는 흙먼지 때문에 창문도 꼭꼭 닫아놓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덥지 않은 것은 파타고니아가 매우 건조하고 바닷바람이 계속 불어오기 때문이다. 모기가 걱정되어 홈매트를 넣고 다닌다. 그런데 모기가 없다. 파타고니아가 너무 건조하여 장구벌레가 자랄 물웅덩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 끊임없이 이동하고, 신나고 즐겁게 구경하고, 떠들며 먹고 마시고 하는 여행은 괜찮은 인생과 유사하다. 그리고 언젠가 둘 다 끝난다. 여행은 목적이 있는 듯이 흘러간다. 어디를 가고, 어디서 잘 것이며, 무엇을 구경하고 무엇을 맛볼까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목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일상은 지루하고 따분하고 때론 고통스럽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내가 혼자 하고 있는 여행이 방랑이다. 방랑에 딱히 목적이 없다. 은퇴한 이후의 내 일상은 지루하거나 따분하지도 않고 오히려 재미있고 아주 만족스럽다. 그런데 그 일상을 왜 탈출했을까?
일상은 반복된다. 반복으로부터의 탈출이다. 매너리즘에 대한 저항이다. 방랑은 계속 이동한다. 한 곳에 며칠 머물기도 하지만 곧 다음 방랑지로 이동한다. 방랑의 즐거움은 이동의 즐거움이다. 눈앞의 경치가 계속 움직인다. 마주한 상황이 계속 변한다. 시각을 비롯한 다양한 정보가 끊임없이 들어온다. 방랑의 이유가 있다면 끊임없는 변화에 대한 갈망 아닐까?
목적이나 이유를 묻는 것은 인간은 끊임없이 의미를 찾기 때문이다. 의미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한다. 모든 일에, 모든 현상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것 아닐까?
공항은 기다리기 좋은 공간이다. 우선 넓고 높아서 공간의 시원함이 있다. 그리고 공항의 모든 사람이 탑승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라 이질감도 없다. 칠레의 푸에르토몬트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생각이 난다. 게이트 앞에서 유튜브로 '까뮈의 문학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이어폰을 끼고 보고 있었다. 부조리와 반항에 대한 고찰에 이렇게 집중할 수 있을까? 이방인으로 방랑 중인 상황이라 너무나 절절하게 이해되었다.
끊임없이 의미를 찾아 나서는 인간. 그렇지만 삶에 의미는 없다. 살아가는 세상은 인간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거기서 인간은 부조리를 느낀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내게 전혀 관심이 없다. 열심히 살다 보면 성공하고 부자 되고 싶은데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성공의 정의는 무엇일까?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을 인정할까? 선함? 아름다움? 높은 지위와 권력? 무엇이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다는 말인가? 은퇴란 일하기를 끝내는 것이다. 일을 끝냈으니 열심히 할 것이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산단 말인가? 열심히? 노력, 성실, 근면 다 어릴 때부터 엄청 듣던 말이다. 엄청 가스라이팅 당하면 산 것이다. 열심히 놀아야 한다면? 사람들은 논다는 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 그러니 열심히 논다면 사람들은 한심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부조리를 느끼는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부조리한 세상은 없다. 세상은 무관심할 뿐이다. 세상이 인간의 이성과 합리에 기반을 두고 돌아가지 않는다.
까뮈는 생전에 가장 부조리한 죽음은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1960년 1월에 친구가 몰던 자동차의 조수석에서 교통사고로 즉사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간과 세상의 부조리함을 깨닫고 저항하는 삶을 살면서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1957년)한 그가 가장 부조리한 죽음을 맞았다는 것이...
이 이야기를 읽고 궁금해졌다. 원래 기차를 타고 가려던 까뮈를 자신의 차에 태우고 운전한 친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AI가 찾아주길 중상을 입고 5일 뒤에 죽었단다. 뒷자리에 탔던 아내와 딸은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단다. 쓸데없는 호기심 많은 내게 AI는 벌써 여생의 동반자인 듯....
제주항공 여객기의 무안공항 사고나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시간이 흘렀지만 슬픔과 고통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것은 가장 부조리한 죽음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식이나 가족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을 당한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치유될 수 없는 트라우마다.
교통사고로 죽는 것이 부조리한 것이라면,
방랑 중의 객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