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 Grutas에서 새벽, 새소리에 잠을 깼다. 새들이 시끄럽게 해서 깼다기보다는 보통 6시간을 자고 나면 규칙적으로 깬다. 그때 새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다. 이 동네 새들이 왜 이리 시끄럽냐고 AI에게 물었다. 파타고니아 앵무새란다. Grutas가 동굴을 의미한다. 바닷가 사암 절벽에 새들이 동굴을 파서 둥지를 만들고 산다. 색깔도 화려하고 크기도 까치만 한 앵무새들이다. 아침저녁으로 먹이 활동을 하면서 떼 지어 날아다닌다. 그리고 엄청 시끄럽다.
전깃줄에 참새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니고, 앵무새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끊임없이 짖어댄다. 자기들끼리 소통하는 것이다. 이 동네에서 날아다니는 새들의 80%는 이 새들이다. 그리고 앵무새의 80%는 짝지어 날아다닌다. 일부일처제란다. 'Monogamy' 암컷이 절벽 깊숙한 구멍 안에서 알을 품는 동안, 수컷은 밖에서 먹이를 구해와 암컷에게 먹여준다고 한다. 새끼가 태어나면 부모가 함께 먹이를 나르며 정성껏 키운단다. 지금(1월)은 새끼들이 둥지를 떠날 준비를 하거나 막 독립을 시작하는 시기라 부모들이 아주 바쁠 때란다. 그래서 이리도 시끄러운가?
펭귄과 파타고니아 앵무새는 일부일처제이지만 차이가 있다. 펭귄은 6개월만 같이 산다. 번식기 동안만 같이 새끼를 키운다. 6개월은 완전히 떨어져서 각자 산다. 바다라는 험한 공간에서 각자 먹이활동을 하며 생존한다. 앵무새는 항상 같이 산단다. 펭귄처럼 일정한 지역을 이동하는 새도 아니고, 육지에서 먹이활동을 하거나 천적을 피하기 위해서는 짝지어 다니는 것이 유리하다. 짝이 죽을 때까지 함께 한단다.
당신은 펭귄이 부러운가요? 파타고니아 앵무가 부러운가요?
아니면 콘도르, 매, 올빼미처럼 항상 혼자 사는 새가 부러우신가요?
뜨거운 태양, 모래, 바닷물 모두 내가 싫어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의 해운대라는 Las Grutas에 왜 왔을까? 후회가 막심하나 어쩔 수 없다. 파타고니아의 도시들이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6 시간 이내의 버스 이동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숙소도 잘못 잡았다. 사람들이 몰리는 해변지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지도만 보고 바다와 가까운 줄 알고 잡았더니 가까운 바다는 절벽이라 접근이 안된다.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곳이라 숙박비가 저렴한 것은 좋은데 편의시설들이 다 너무 멀다. 다행인 것은 주방이 있는 스튜디오 형태라 계란프라이 정도는 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9시 일몰 시간에 맞춰 해변으로 나갔다. 해변까지의 도로가 비포장이다. 먼지를 풀풀내며 자동차들이 지나간다. 해변의 절벽에 앵무새들의 둥지가 있다. 지금 시간이 먹이활동을 하는 시간이라 새들이 분주하게 날아다닌다. 계단을 타고 바닷가로 내려갔다. Las Grutas의 바닷물이 얼마나 따뜻한지 발만이라도 담가볼 생각에. 밍밍한 바닷물의 온도가 느껴진다. 낮에는 비치의자와 파라솔로 가득한 해변이 지금은 조용하다. 낚싯대를 던지려는 사람들과 나처럼 산책 나온 사람들뿐이다.
붉게 물드는 하늘이 장관이다. 동쪽은 대서양의 수평선, 서쪽은 안데스까지 이어지는 지평선과 깨끗한 공기가 이런 일몰 광경을 만드는 것 아닐까? 서쪽 하늘만 붉게 물드는 것이 아니다. 하늘의 모든 구름들이 붉게 물든다. 주홍빛이 번진 하늘이 장관이지만 일종의 처량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또 하루가 끝나간다는 느낌. 이런 장관을 볼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하는 의구심. 노인에게는 평균 3000일 남았다고 하는데, 그 하루가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내게도 2999일이 아직 남아 있을까?
호텔의 첵아웃 시간이 빨라졌다. 정오가 아니고 대부분 10시나 10시 반이다. 체크인 시간은 늦어졌다. 일러야 오후 2시고, 4시 이후인 숙소들도 많다. 체크아웃과 체크인 사이에 딱 이동을 하면 좋겠지만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비행기도 그렇고, 심지어 버스들도 파타고니아에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Las Grutas에서 Viedma 이동을 위한 버스 출발이 오후 5:45이다. 아주 애매하다. 서너 시간 정도면 카페나 터미널에서 버틸 수 있겠지만 무려 8시간 가까운 시간이다. 그렇다고 하루치 숙박료 50불을 지불하기는 아깝다. 내일 어디 가서 시간을 보내야 하나 하고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화장실의 비데다. 칠레에서는 4성급 호텔에는 가야 있던 독립된 비데가 아르헨티나는 거의 모든 숙소에 있다. 전기 연결 없이 수압으로만 작동하는 고전적인 비데다. 더운물도 나온다. 화장실 변기만큼의 자리를 차지하는 독립 비데가 거의 모든 숙소에 있다. 아르헨티나가 100년 전에는 아주 잘 살던 나라라고 한다. 1913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처음 지하철이 만들어졌는데 그 당시 런던, 파리, 뉴욕 다음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선진국이었다는 얘기다. 그 시절의 영화가 비데 문화를 만든 것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