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하고 비 오는 상황에 낯선 도시에 떨어졌다
Las Grutas를 떠나 Viedma로 이동하는 날이다.
비에드마(Viedma)는 리오 네그로(Río Negro) 주의 주도(남위 40.8도)이자, 파타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파타고니아를 정의할 때 남위 40도 이상의 지역으로 정의하기도 하고, 리오 네그로 강 이남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그러니 비에드마는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입구 격이다. 비에드마는 네그로 강을 사이에 두고 카르멘데파타고네스(Carmen de Patagones)와 마주 보고 있다. 이 두 도시는 사실상 하나의 생활권인데, 강 북쪽(파타고네스)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에 속하고 강 남쪽(비에드마)은 리오 네그로 주에 속하는 독특한 구조다. 비에드마는 1779년에 세워진, 파타고니아 지역에서 가장 유서 깊은 정착지 중 하나다. 1980년대 혼잡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대신해 아르헨티나의 수도를 이곳 비에드마로 옮기려는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결국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오후 5:45 라스그루타스 출발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숙소를 첵아웃하고, 바다가 보이는 호텔의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와이파이가 빵빵하고 에어컨도 작동 중이다. 오늘 이곳 라스그루타스의 기온이 오전 11시에 이미 33도가 넘었고 바람도 세게 분다. 포장 안된 도로에서 흙먼지들이 심하게 날리는 것을 실내에서 통창으로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다. 오늘 최고기온이 38도까지 오른다고 예보되었다. 이런 날 밖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버스터미널에서 비에드마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다. 어두워지기 전에 비에드마 숙소에 체크인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있는데, 버스가 30분이나 지연 도착했다. 숙소 주인에게 왓츠앱으로 버스의 지연 출발을 알렸다. 초조한 내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버스는 20분을 가더니 항구도시인 San Antonio Oeste에서 20분을 정차한다. 아마도 기사와 차장이 저녁식사하는 듯...
빗방울이 뿌리기 시작한다. 건조한 파타고니아에는 단비겠지만 비에드마 도착했을 때도 내린다면 매우 불편할 것이다. 비에드마에 점점 가까워지는데 이제는 번개까지 친다. 너무 멀리서 치는지 소리는 들리지 않고 번쩍임만 보인다. 번개 치고 빗줄기도 굵은데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는 주홍빛의 태양이 보인다. 너무 신기해서 한참을 지켜보았다. 파타고니아 같은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 아닐까?
결국 3시간 만에 9시가 넘어 비에드마에 도착했다. 200km가 안 되는 거린데... 우려한 대로 깜깜하고 비 오는 상황에서 낯선 도시에 떨어졌다. 사인도 제대로 없는 택시승강장을 찾았다. 택시는 없는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줄 서지 않고. 우버도 이 도시에는 서비스가 없다고 뜬다. 어쩌지? 사람들은 전화로 택시를 부르는 것 같다. 택시 한 대가 도착하면 서로 얘기들 하며 자신이 부른 택시인지를 확인하고 탄다. 초조해진다. 숙소 주인한테는 8시에는 도착할 것이라 했는데 이미 9시 반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택시를 부를 방법이 없으니...
번역기를 돌려 택시를 어떻게 부르냐는 스페인어 문장을 만들어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 젊은 처자한테 무턱대고 들이밀었다. 내 상황을 이해한 듯 자기가 택시를 불러주겠다며 전화를 한다. 이 처자가 부른 택시가 먼저 와서 가버리면, 나는 이 처자가 불러준 택시를 어떻게 확인하지? 불안감에 싸여 있는 순간 다행히 택시 두 대가 왔다. 뒤에 택시가 내 택시라고 손짓해 준다. "무챠 무챠 그라시야!!!!" 그렇게 10시가 다되어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투베드 아파트라고 알고 왔는데, 택시가 주택가에 정차한다. 다행히 숙소 주인이 택시를 보고 나와 집 찾느라 헤매지 않았다. 안내받아 들어간 집은 엄청 깨끗한 듀플렉스다. 한 채는 집주인이 살고, 한 채를 부킹닷컴에 올려 운영하는 것이다. 식탁 위에는 풍성한 아침식사가 이미 차려져 있다. 온갖 차와 커피, 베이글 한 줄, 달걀 6개와 과일바구니가 있다. 저녁도 굶었는데 다행이다. 내일 것을 당겨 먹으면 되니까...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는 집이다. 구석구석에 없는 것이 없다. 한달살이 하면 딱 좋을 것 같은 집인데 난 겨우 두 밤만을 예약했다. 아쉽네. 라스그루타스를 건너뛰고 여기서 5박을 했으면 좋았을걸. 비에드마는 관광지가 아니다. 그냥 행정도시다. 그래서 특별한 것이 없다. 그래서 AI가 두 밤만을 추천하고 라스그루타스는 세밤을 추천한 것이다. 숙소주인 카를로스는 깔끔한 중년이다. 어쩌면 나랑 나이가 같을지도 모른다. 세심하게 설명을 해주고 자기는 아침 8시까지 잘 것이니 물을 것 있으면 오늘 왓츠앱으로 물으라고 한다. 물을 것 없다. 'Good Night!"
잠이 오지 않는다. 아침 일찍 라스그루타스에서 첵아웃하고, 저녁 버스를 초조하게 세 시간을 타고, 어렵게 택시 타고 오다 보니 긴장해서 나오는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졸이 몸에 충만한 것 같다. 방이 더워서 거실의 소파에서 에어컨을 켜고 제대로 자지 못했다. 7시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려고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밤에도 오던 비는 그치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온도도 떨어져 아주 선선하다. 티셔츠만 걸치고 있기에는 쌀쌀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열쇠를 문 안쪽 구멍에 꽂아 두었는데 문이 잠길 줄을 예상 못했다.
현관문이 호텔방문처럼 닫으면 그냥 잠기는 구조다. 아뿔싸!!!
시계를 보니 7시 반이다. 카를로스는 아직 자고 있다. 왓츠앱으로 문자를 보내고 결국 전화도 했지만 받지 않는다. 초인종을 눌러보지만 소리도 없고 조용하다. 커피를 마셔 배에서 급할 수 있다는 신호는 은근히 오는데, 현관문과 정문 사이의 공간에 갇힌 것이다. 잘못하다가는 마당에 엉덩이 까고 앉을 수도 있겠단 불길한 예상이 든다. 안 되겠다. 카를로스의 현관문을 힘차게 두드릴 수밖에....
아침부터 쇼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