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칼라파테의 마지막 밤

by 재거니

브루스 채트윈의 'In Patagonia'의 표지 뒤에 파타고니아 당시의 지도가 있다. 브루스가 다녀갔던 도시나 마을들이 표시되어 있는데, 이 지도에 엘칼라파테는 없다. 엘칼라파테는 브루스가 파타고니아를 여행했던 1970년대에는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지금은 파타고니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도시가 엘칼라파테다. 공항도 있어 부에노스아이레스, 바릴로체, 우수아이아로 직항이 연결된다. 자료를 찾아보니 엘칼라파테의 인구는 1991년 3101, 2001년 6410, 2010년 16,655, 2022년 22,844라고 한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모레노빙하 투어와 엘찰텐의 피츠로이 트레킹 투어의 베이스캠프로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10년 전 머물렀던 Hostel del Norte(지금은 Hostel Elal)는 중심도로에서 2 블록 밖에는 떨어져 있지 않지만, 옮긴 숙소(Kelta Hosteria)는 중심지와 1.2km나 떨어져 있다. 더구나 언덕 위에 있어 전망은 좋지만 들고 나기가 영 불편하다. 그리고 엘칼라파테에서는 우버가 작동하지 않는다. 점심과 저녁을 해결하는 것이 하루 중에 가장 큰 일이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하루에 세끼를 꼭 먹어야 하나?


밥 세끼를 다 찾아 먹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다. 그렇게 맛있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밥을 먹기 위해 옷 입고 숙소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영 귀찮다. 조식 포함 숙소에 머무르니 아침은 해결된다. 숙소에서 조식이 뷔페식으로 제공된다. 뷔페식이니 잔뜩 뱃속에 집어넣으면 오후 두세 시까지는 견딜만하다.


혈당이 떨어져 배가 고파오는 네댓 시에 점심을 건너뛴 저녁을 먹을 식당을 찾는다. 아르헨티나 대부분의 식당들이 저녁 7시에 문을 연다. 그런 식당을 피할 수 밖에는 없다. 엘칼라파테의 마지막 저녁을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을 찾았다. 500m 나 떨어져 있다. 역시 언덕 위라 전망이 좋은 식당에 손님이 아무도 없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저녁 먹기에 너무 이른 시간이다.


아시아음식도 한다는 이 식당 메뉴에 아시아 음식은 초밥이다. 찰진 밥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큼지막한 연어가 올라 있는 초밥을 까만 김으로 띠를 둘렀다. 맛에 대해서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 6박을 하는 엘칼라파테의 마지막 밤이다. 와인을 주문했다. Copa de Vino(와인 한잔)가 없어 한 병을 주문했다. 가격이 비싸지도 않으니 마시다 남기지 하고. 아르헨티나 물가가 결코 싸지 않다. 경제난이라는데 어떻게 사나 싶다. 한국보다 저렴한 것은 마트의 소고기와 와인뿐이다. 결국 혼자 한 병을 다 마시고 말았다. 이번 방랑 길에서 이렇게 많이 마신 적 없다. 몽롱한 기운을 느끼며 숙소로 언덕길을 걸어 오르면서 드는 생각.


지금 내가 비틀거리며 걷고 있을까?


아이폰 건강앱의 많은 측정 항목 중에 '보행비대칭성'이란 것이 있다. 바지주머니에 아이폰을 넣고 걸으면 아이폰 흔들림의 규칙성을 측정하는 것이다. 흔들림의 비대칭 정도를 %로 나타내는데 걸음걸이를 통하여 어르신 노화의 정도와 경향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규칙적으로 걷기 위해 나름 애쓰고 있다. 비틀비틀 걷다가 비실비실해지면 결국 자리에 눕고 만다. 건강수명이 끝나는 것이다. 비틀 비틀의 정도가 심해지는 것과 노화도가 비례한다.


트레킹 중에는 보행비대칭성이 크게 증가하는 것이 설명이 된다. 그리고 확실히 저녁에 증가한다. 걷는 것이 오전보다 힘든 것이다. 저녁에 술이라도 한 잔 하면 비대칭성이 크게 증가한다.


아이폰으로 노화의 정도와 속도를 가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