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Calafate

by 재거니

엘칼라파테에서 6박을 머물고 있다. 10년 전 묵었던 숙소에서 처음 2박을 했다. 체크인 데스크가 11시까지 운영한다 했는데 20분 전인가 도착했다. 10년 전 건물 구조와 배치가 생각나며 감개가 무량하다. 건물 내 외장을 좀 더 깔끔하게 손보고 호스텔 이름도 바꾼 것이다. 예전의 형편없다는 리뷰를 다 지우려고 했겠지. 숱이 많지 않은 머리칼이 크게 웨이브진 젊은 남자가 데스크에 앉아 있다. 분명 남자인데 목소리는 여자처럼 부드럽다. 데스크에는 엘칼라파테 지도가 놓여 있다. 근처 아침 먹을 식당이며, 환전(웨스턴유니온)할 곳이며, 슈퍼마켓이 표시되어 있다. 옆에는 엘칼라파테에서 할 수 있는 투어 상품들이 표시된 또 다른 지도가 놓여 있다.


엘칼라파테에 오기 며칠 전부터 숙소에서 메시지가 매일 날아온다. 모레노빙하 투어를 하려면 하루 전 날에는 예약해야 한다고. 늦게 체크인하면 다음 날 빙하 관광 못한다는 것을 암시하며 투어를 미리 예약할 것을 은근히 끈질기게 여러 번 내게 강조하였다. 그렇지만 난 빙하 투어를 할 마음이 전혀 없다. 10년 전의 기억과 사진과 남긴 글( https://brunch.co.kr/@jkyoon/21 )로 이생에서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좋은 것은 세 번해야 하지만 빙하 투어를 돈 들여 다시 할 마음이 없다. 공짜로 시켜준다면 모를까...


여기서 2박을 하고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 '내가 그것을 왜 네게 말해야 하는데?' 다른 호텔로 갈 생각이라고 했다. 의아한 표정이다. 보통은 엘찰텐으로 가든지, 우수아이아로 가든지, 토레스델파이네로 간다고 해야 하는데... 그러자 그러면 내일은 뭐 할 거냐고 묻는다. '내가 그것을 왜 네게 말해야 하는데?' 아직 정한 것 없어. 환전이나 하고 엘칼라파테에서 그냥 개길 거야. 또다시 의아한 표정이다. 투어를 예약 대행해 주고 대행수수료를 여행사에서 받는 것에 아주 너무 열심이다.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데스크 직원 역시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숙박료를 페소나 달러 또는 유로로만 받는다고 했다. 달러로 예약했기에 65불을 10불짜리 6장과 5불짜리 한 장으로 건넸다. 50불짜리 지폐 없냐고 묻는다. 50불짜리는 없고 100불짜리는 있는데. 그러면 100불짜리 달란다. 거슬러주겠단다. 아르헨티나 페소로. 환율을 얼마로 쳐줄 건데. 계산기로 1475를 보여준다. 나도 지금 페소가 하나도 없으니 좋다고 했다. 사무실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지금 페소가 모자란단다. 주인이 늦게 올 테니 그때 주겠단다. 아니면 내일 아침에 주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내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받을 돈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감개무량하던 좋은 기분을 이 놈이 망치네!!!




엘칼라파테는 우수아이아, 토레스델파이네와 함께 파타고니아 여행의 중심이다. 모든 남미 패키지 투어가 꼭 거쳐가는 곳이다. 일반 배낭여행자도 마찬가지지만. 도시가 관광객으로 붐빈다. 가장 유명한 모레노 빙하 트레킹(한두 시간 정도 빙하 위를 걷는다)은 35만 원이 넘는다. 국립공원 입장료까지 하면 거의 40만 원을 넘나드는 엄청 비싼 상품이다. 10년 전 빙하트레킹에 나이 제한이 있었다. 만 65세.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AI에게 물으니 아이젠을 신고 하는 것이라 안전상 그리고 보험계약 때문에 지금도 65세라고 하네. 어차피 이제는 하고 싶어도 못하네...ㅎㅎ


엘칼라파테에 한식당이 생겼다. 대단한 발전이다. 10년 전에는 한식당은 커녕 일식당도 없었다. 구글맵에 있는 일식당을 힘들게 찾아갔는데 허탕을 쳤던 슬픈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지금은 일식(?)을 취급하는 식당도 두 군데나 생겼다. 찰진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모든 음시값이 엄청 비싸다. 김밥이 20,000페소, 불고기 정식이나 닭갈비 정식이 39,000페소다. 공깃밥 추가는 4,000페소, 반찬 추가는 6,000페소. 한국의 두 배 이상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일 년에 반 정도도 장사를 못할 테니...




2박을 자고 옮길 호텔의 위치는 이미 확인해 두었다. 15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데 언덕 위라 캐리어를 끌고 가기는 별로다. 캐리어가 아니고 배낭이라면 운동삼아 갈만 하지만... 엘칼라파테에서 우버가 작동하지 않는다. 앱은 작동하지만 우버 기사가 거의 업거나 아예 없거나. 택시를 불러 달래야 하나 하고 망설이다가 캐리어를 끌고 말았다. 땀 뻘뻘 흘리며. 높은 곳이라 호텔의 전망은 좋다. 우버도 없는데 들고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외벽을 촌스런 핑크색으로 도장한 고전적인 모습의 호텔이다. 스페인어만 해대는 호텔 안주인과 번역기로 소통하며 체크인했다. 3층 호텔인데 캐리어 같은 짐만 올리는 투명한(?) 엘리베이터가 있다. 화장실에 고전적인 별도의 비데가 있다. 제대로 작동한다. 침대에 이불이 없고 시트와 침대 커버뿐이다. 이불은 어디 간 거지? 담요를 찾아보았다. 옷장에도 없다. 천장도 높은데 아무리 둘러봐도 난방기는 보이지 않는다. 번역기로 간신히 담요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방과 화장실이 춥지를 않다. 다 벗고 있어도 괜찮다. 어디에 난방기가 숨어 있는 거지? 건물 전체에 바닥 난방이 들어온다. 이럴 수가...


각 층마다 라운지가 있다. 아르헨티나 호수가 멀리 보인다. 빙하 녹은 물이라 옥색이다. 라운지에 앉아 호수와 설산을 보고 있노라니, 캄차카 반도의 'Geyser hotel' 라운지에서 아바차만과 빌류친스키 화산을 보며 시간을 보내던 기억이 난다. 캄차카 참 좋았는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끝나면 다시 갈 수 있을까? 내게 다시 기회가 올까?


https://brunch.co.kr/@jkyoon/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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