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칼라파테에서 'Full day El Chalten'
피츠로이는 찰스 다윈이 탔던 비글호의 선장이다. 그의 이름으로 불리는 유명한 봉우리가 있다. 엘찰텐이란 작은 마을에. 피츠로이 연봉의 그 독특한 형상이 '파타고니아'란 아웃도어 브랜드의 마크에 새겨져 있다. 10년 전 엘칼라파테에서 2박을 하면서 모레노빙하 트레킹은 했지만, 피츠로이는 보지 못했다. 엘찰텐이 엘칼라파테에서 200km 이상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방랑길에서 꼭 하겠다고 마음먹은 세 가지 중에 두 번째가 피츠로이봉을 내 눈으로 보는 것이다.
200km 정도는 파타고니아에서는 아주 가까운 곳이다. 엘칼라파테 여행사에서 ’Full day El Chalten’이란 투어를 신청했다. 아침 7:30 호텔 픽업이란 것이 마음에 들었다. 엘칼라파테의 대부분 호텔 조식이 6시부터라 여유가 있다. 이런 투어프로그램은 당일 참가자 인원수에 맞춰 차량이 배차되는데, 픽업당하는 순서가 중요하다. 지난 ‘Full day Torres del Paine’ 때는 제일 마지막에 픽업당하여 벤츠 스프린터 제일 뒷자리 구석에 처박힐 수밖에 없었다. 답답하기도 하고, 오르고 내릴 경우가 많은데 번거롭기도 하다.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이 중심지에서 좀 떨어져 있고, 엘찰텐 가는 방향과도 반대라 제일 먼저 픽업당했다. 이렇게 좋을 수가…
25인승 미니버스의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피츠로이를 제대로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멀리서 엘찰텐으로 가까이 다가가면서 피츠로이가 계속 잘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2층 버스의 제일 앞자리에서 본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겠지만 투어 프로그램에 그렇게 크고 좋은 버스가 배정될 수는 없다. 옆자리에는 브라질에서 혼자 왔다는 젊지 않은 처자가 앉았다. 투어가이드 토비와 스스럼없이 대화하기에 물었다. "포루투칼어로 얘기하니? 스페인어로 얘기하니?" 자기는 포루투칼어, 토비는 스페인어로 얘기하는데 서로 다 알아듣는단다.
전부 17명을 픽업하느라 엘칼라파테의 구석구석을 돌면서 픽업하느라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하루에 200불 이상하는 고급 호텔부터 하루 자는데 25불 하는 호스텔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탄다. 신분에 따라 숙박 장소에 등급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사회니까. 거의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이번 방랑에서 가장 비싼 숙소가 어디였나 하고 기억을 더듬었다. 코이아이케의 110불이 최고였던 것 같다. 확실히 자본주의에선 시설의 안락함과 비용이 비례한다.
드디어 픽업을 끝내고 엘찰텐을 향하여 출발했다. 키 크고 잘생긴 가이드 도비가 블루투스 마이크를 귀에 건다. 오늘의 일정과 주의사항을 스페인어와 영어로 순차 통역하듯이 말한다. 하나도 못 알아듯는 스페인어가 어디서 끝나는 줄 모르고 있다 보면 간간이 영어 단어가 들린다. 하나도 못 알아듣는 스페인어와 조금 알아듣는 영어 사이에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주의사항을 놓치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쓰니 양 미간이 긴장하고 있음을 내가 느낀다.
듣고서 전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의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이다. 소화불량이나 두통이 생길 정도다. 오늘 같은 영어 가이드 투어를 하고 나면 엄청 피곤이 몰려온다. 육체적 피로뿐 아니라 정신적 피로를 심하게 느낀다. 그래서 이런 스트레스 상황을 피하느라 여행사 투어 프로그램을 즐기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숙소 픽업하고, 열심히 설명해 주고, 안내하고, 식당에서 메뉴도 추천해 주고, 다시 호텔에 떨궈주는데도 말이다.
한 시간을 달려 휴게소에 도착했다. 거의 유일한 휴게소다. 엘찰텐으로 가는 모든 관광버스와 승용차들로 엄청 붐빈다. 와이파이가 가능하다고 쓰여 있고, 신호도 뜨지만 워낙 많은 사람이 몰려서인지 연결이 안 된다. 쿠키 하나와 커피 한잔이 13,000페소. 대체 커피값을 얼마를 받는 거야? 휴게소를 벗어나자 왼쪽 창문으로 멀리 피츠로이봉의 꼭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졸려서 어쩔 줄 모른다. 몸을 앞으로 숙였다가, 뒤로 다리를 쭉 뻗었다가, 사탕을 찾는지 이 주머니 저 주머니 뒤진다. 가이드 토비는 뒤돌아 서서 계속 스페인어와 영어를 순차통역하고 있다. 파타고니아의 역사와 생태에 대해서... 난 운전기사가 걱정되어 가이드 토비의 설명은 더욱 안 들린다.
결국은 가이드 토비가 마테차(파타고니아 전통차)를 만들어 기사에게 건네면서 졸음을 어느 정도 쫓아준 것 같다. 옆에 앉은 브라질 여인에게 물으니 마테차가 브라질 남부, 우루과이, 아르헨티나에서는 흔하다고 한다. 부루스 채트윈의 'In Patagonia'에도 마테차가 여러 번 나온다. 아르헨티나에서 함 마셔봐야 할 텐데...
엘찰텐 60km 사인이 나온 뒤에는 피츠로이 연봉들이 아주 잘 보인다. 정말 잘 생겼다. 잘 생기고 볼 일이다. 한 번 보면 결코 그 모양을 잊을 수 없는 형상이다. 앞 유리창을 통하여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심호흡이 이루어지며 가슴이 벅차오름을 난 느낀다. 오늘 투어는 성공적이다. 피츠로이가 해발 3405m라 구름이 낮게 드리우면 저 잘생긴 봉우리를 보지 못한다. 새벽 일출의 태양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드는 피츠로이봉을 '불타는 고구마'라고 한다. 엘찰텐에서 숙박을 하고 일출 시에 구름이 없어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엘찰텐은 마을이 작은데 여름 시즌에 사람들이 몰려 숙박할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나처럼 전용화장실 딸린 독방은 한참 전에 예약해야 한다. 불타는 고구마를 가장 가까이서 보려면 산 위의 호수(Laguna de los Tres, 해발 1,170m)까지 10km를 야간산행을 해야 한다. 어르신은 무리다. 이생망이다.
투어 프로그램에 콘도르 전망대까지 가벼운 트레킹이 포함되어 있다. 왕복 한 시간 반 정도의 아주 가벼운 트레킹인데 이 전망대가 국립공원 입장료 받는 구역에 포함되어 있다. 아르헨티나도 2024년부터 공식적이고 체계적으로 국립공원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트레킹을 하기 위해 외국인은 입장료가 무려 45,000페소, 자국민은 15,000페소. 2025년 12월 현재 아르헨티나 페소와 우리 돈이 거의 1:1이라 아주 편하다.
그리고 근처의 폭포(Chorrillo del Salto)를 구경하고, 점심식사 하고 엘찰텐을 오후 4시에 출발했다. 이제는 피츠로이를 등지고 달리는 것이다. 중간 휴게소까지나 가야 잠깐 피츠로이가 보일 것이다. 쉬지 않고 파타고니아 벌판을 시속 100km의 속력으로 미니버스가 달린다. 엔진이 터질 듯이 왕왕거린다. 정말 쉬지 않고 달려 두 시간 반 만에 엘칼라파테에 도착했다. 드롭은 픽업의 역순이다. 제일 앞자리에 앉아 사람들이 내리면서 가이드 팁을 주는지 안 주는지 관찰했다. 팁 주는 사람과 안 주는 사람으로 인류는 양분된다.
팁 안 주고 가이드와 악수하고 돌아서면 뒤통수가 따갑지 않을까? 난 마음이 편치 않아 잠 못 들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