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파타고니아의 푸에르토나탈레스에서 아르헨티나 엘칼라파테로 버스를 타고 크리스마스에 국경을 넘었다. 2층 버스의 2층 제일 앞자리를 잡기 위해 열흘 전쯤에 온라인으로 버스표를 구매했다. 크리스마스 날 출발하는 버스가 세 편이나 있었는데, 두 편은 이른 아침 출발이라 오후 3:30 출발 편을 예매했다.
푸에르토나탈레스 버스터미널은 비교적 한산했다. 그렇지만 터미널 2층의 카페와 3층의 카페테리아가 크리스마스라고 문을 닫았다. 음료와 주전부리를 파는 키오스크들도 두 군데만 열었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아직 배가 고프지는 않지만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이동을 생각하면 먹을 것을 좀 챙겨야 하는데...
온라인으로 구매한 버스표를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이고 승차하면 되는데, 국경을 넘어야 하니 30분 전부터 창구에서 여권을 확인하는 체크인 과정을 거친다. 창구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다. 한국인은 보이지 않고, 중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젊은 커플, 늙은 커플, 젊은 처자 등 다양한 연령대의 중국인들이다.
캐리어를 짐칸에 맡기고, 2층 버스의 3번 좌석에 앉았다. 2번과 3번이 통로자리다. 창가 자리는 햇볕이 들기도 하지만 약간의 폐쇄공포증이 생겼던 경험이 있어 피했다. 키 큰 서양 젊은이가 1번 자리를 찾아 앉는데, 야릇한 노린내가 내 코 점막을 자극한다. 심하지 않지만 옆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잠시 뒤에 중국인 처자 둘이 버스에 오르더니 2번과 4번 좌석에 앉는다. 둘이 일행이라면 내가 자리를 바꿔줘야 하나 하고 잠시 고민했다. 자리를 바꿔주면 냄새를 맡고 가야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2번 자리에 앉은 처자가 머뭇머뭇하는 것이 느껴진다. 모른 척했다. 결국 그녀는 마스크를 꺼냈다. 중국인 처자 둘은 모르는 사이다. 버스를 타면서 마주친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내 눈앞에서 왓츠앱 QR코드로 연락처를 교환했으니...
북쪽 토레스델파이네 공원 방향으로 한 시간 이상을 달려 버스는 칠레 국경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했다. 여권만 갖고 내리란다. 칠레 입국 시에 받은 PDI카드를 회수하고, 여권에 스탬프를 꽝하고 찍어준다. 출국은 간단하다. 입국 시에는 질문도 하고 짐검사도 하지만... 반대편 차선의 칠레 입국하는 사람들은 캐리어를 전부 차에서 내려야 한다. 칠레가 과일이나 육가공제품을 까다롭게 걸러낸다고 한다. X-ray 장비뿐 아니라 마약탐지견인지 농축산물 탐지견인지 리트리버 같은 개도 어슬렁 거린다. 양쪽 차선에는 차단기도 설치되어 있어 검사가 끝난 차량만을 통과시킨다.
15분 정도나 걸렸나? 버스 승객 전부가 출국심사받는데. 버스가 심하지 않은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안데스 산맥의 끝자락을 오르는 것이다. 곧 포장도로가 끝난다는 표지판이 계속 보인다. 결국 국경인 대륙분수령에서 포장도로가 끝났다. 아르헨티나의 광활한 팜파스 평원이 내려다 보인다. 비포장도로를 조금 내려가니 아르헨티나 출입국 사무소다. 차단기도 없고 한쪽 차선만 열어놓은 그대로다. 개인 차량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아르헨티나 입국이다. 버스의 짐을 들고 가야 할 것 같은데 여권만 갖고 가란다. 사무소는 네 개의 창구만 있고 아무것도 없다. 여권을 리더기로 스캔만 하고 스탬프도 없이 여권을 돌려준다. 끝이란다. 10년 전에는 이 국경을 역으로 넘었다. 그래서 배낭을 들고 칠레 입국 검색대를 줄 서서 통과했던 기억이 난다.
입국심사가 금방 끝났는데 버스가 출발을 하지 않는다. 차장이 인원을 세더니 운전기사에게 한 명(Uno)이 없다고 한다. 결국 그 한 명이 버스를 한 시간 세웠다. 정상의 바람이 어찌나 거세게 불던지 정차하고 있는 버스가 좌우로 흔들거린다. 셀룰라 신호도 잡히지 않는 곳에서 한 시간은 정말 긴 시간이다. 나중에 휴게소에서 차장에게 영어로 물었다. 궁금한 것을 못 참으니. 차장이 스페인어를 하는지 영어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인디언이란 단어와 패스포트란 단어만 귀에 들렸다.
10km 이상을 비포장도로를 달리더니 드디어 국도를 만나 포장도로에 들어섰다. 왕복 2차선 아스팔트 포장은 간신히 버스 두 대가 교행 할 수 있는 정도만 포장했다. 포장한 지 제법 되었는지 상태도 그리 좋지 않다. 오고 가는 차 거의 없는 길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2층 버스의 2층이 좌우로 출렁거린다. 너무 심하게 출렁거려 이러다가 홱하고 자빠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태양은 열일하고 서쪽으로 넘어가는데 버스는 동쪽을 향해 아주 천천히 내려간다. 눈앞에 엄청난 경치가 펼쳐져 나는 정신 못 차리고 있는데, 양쪽의 젊은 중국인 처자들은 스마트폰만을 붙잡고 있다. 내 폰은 아무 신호도 안 잡히는데 그녀들은 채팅을 하는지 인스타를 하는지 계속 바쁘다. 국경을 넘었으니 통신사도 달라지는 것 아닌가? 유심을 바꿔 끼우는 것도 보지 못했는데, 주변을 둘러봐도 기지국 같은 것이 있을 상황도 아닌데, 이어폰들을 끼고 있으니 물어볼 수가 없네.
혹시 스타링크를 하나???
안데스 동쪽 팜파스 평원 위의 구름이 칠레 파타고니아에서 보던 구름과 사뭇 다른 것 같다. 동쪽으로 지평선까지 뻗어 있는 구름들이 신비롭게 보인다. 간간이 서쪽의 토레스델파이네 산군들이 보인다. 100km 이상 달려온 것 같은데... 오후 8시가 다되어 휴게소에 정차했다. 10분 정차한다기에 얼른 내려 햄치즈샌드위치를 샀다. 오늘의 점심과 저녁식사인 셈이다. 아직도 두 시간은 더 가야 하는데...
드디어 엘칼라파테에 도착했다. 7시간 가까이 걸렸네. 오후 10시가 좀 넘었지만 일몰시간이 10시 정각이라 아직 사방에 빛이 남아 있다. 10년 전 2박을 했던 숙소까지는 걸어서 20분, 차로는 5분인데, 어찌할까를 버스 타고 오는 내내 고민 중이었다. 캐리어를 끌면서 10시 넘어 20분을 걷는다는 것이 사실 부담스럽다. 그렇지만 내려보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버스터미널이 이미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모든 창구가 닫혔고, 주차장에도 택시 한 대 없다. 걸을 수밖에...
'쓸데없는 걱정과 고민하느라 현재를 살지 못한다'는 명언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