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란 노래가 생각나네!!!
칠레 파타고니아에 있을 만큼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칠레를 떠나 아르헨티나에 입국한다.
칠레의 푼타아레나스, 푸에르토나탈레스, 푸에르토몬트 같은 지역은 이리저리 방황하다 보니 세 번씩이나 들렀다. '좋은 곳은 세 번은 가야 한다'는 내 모토( https://brunch.co.kr/@jkyoon/264 )를 실행하고 있다. 방랑이 방황과 연이 닿아 있다는 사실( https://brunch.co.kr/@jkyoon/663 )을 체험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푼타아레나스에서 푸에르토나탈레스로 3시간 반 버스 이동, 크리스마스에는 푸에르토나탈레스에서 아르헨티나 엘칼라파테로 6시간(?) 버스 이동이다. 보통 여행객들은 이 정도는 하루에 이동한다. 시간은 없고 보아야 할 것은 많으니. 그렇지만 시간은 많고 딱히 볼 것도 없는 방랑자는 급할 것이 없다.
남미 대륙의 땅끝 도시 칠레의 푼타아레나스에 한국 라면가게가 있다. 푼타아레나스에서 9+2+2박을 하면서 음식점을 검색하다 우연히 눈에 띄었다. 리뷰를 보니 10년 전 예능프로에도 나왔었다는 기록도 있다. 방랑 중에 무엇을 먹을 것인가가 내게는 가장 큰 고민이다. 한국 라면이라면 김치나 단무지와 함께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찾아갔다. 음식점이라기보다는 가게가 맞다. 구멍가게...
문에 들어서자 문 쪽에는 칠레의 젊은 커플이 앉아 있다. 양쪽 벽에는 여기를 다녀간 수많은 한국사람들이 남기고 간 명함과 사연들이 빼곡히 붙어있다. 화구가 딱 두 개 있는 가스레인지에 라면을 끓이고 있던 어르신이 돌아본다.
"한국인이면 들어오면서 한국말로 인사를 해야지!"
"그런가요? 라면이랑 김밥 주세요."
"김밥은 다 떨어졌어. 라면 밖에는 안돼."
언제 봤다고 다짜고짜 반말이다. 물론 내가 어르신보다는 젊어 보일 테지만. 리뷰 중에 젊은이가 반말에다가 야단까지 맞으면서 라면을 먹었다고 불평을 쓴 것을 읽었다. 기다리고 있는 칠레의 단골손님이 5개를 포장해 가야 해서 난 15분쯤 기다려야 한단다. 상관없다. 급할 것 전혀 없으니. 다행히 맥주가 있다. 코로나와 하이네켄. 코로나 한 병을 마시면서 기다렸다. 노트북에 연결된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한국 음악이 흘러나온다. 궁금한 것을 못 참는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존댓말로 많은 것을 물었다.
지금은 74살이고, 미국에서 25년 살고, 칠레에서 22년 사셨단다. 라면가게는 2008년 7월에 오픈했단다. (우와 17년이 넘었네!!!) 한국 국적에 미국 시민권, 칠레 영주권을 갖고 있단다. 미국에서도 수산업을 했고, 칠레산 홍어를 처음 한국에 수출하셨단다. 푼타아레나스에 배가 세 척이나 있었단다. 한 번 조업을 나가면 열흘이상 한 달을 바다에 머물기도 했단다. 칠레 앞바다 풍랑의 무서움도 얘기하셨고, 라면가게 손님으로 온 한국손님 중에 가장 연세가 많으신 분이 84세였단다. 고등학교 산악부 선후배들 4명이 온 적 있는데 그중의 가장 연장자였단다.
가장 묻고 싶었던 것을 결국 물었다.
"혹시 칠레 여인과 사세요?"
칠레 여인과 지고지순한 사랑에 빠져 거센 바람이 불고 날씨가 급변하는 파타고니아 대륙 끝에서 17년 넘게 한국 라면가게를 열고 있다는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니야. 큰 아들은 한국에서 직장 다니고, 딸은 미국에 살고, 같이 있던 막내아들이 지금 한국에서 군 복무 중이고, 아내는 지금 큰 아들네 집에 있지. 여기 한국사람 한 명 더 있는데 그 친구는 칠레 여인이랑 살지."
"그러면 더욱이 이제는 가게 정리하고 한국 가셔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쎄, 아직 건강하니까 이러고 있지."
"내일이 크리스마스이브인데 어떻게 보내세요?"
"여기 혼자 사는 칠레인 친구가 있는데, 그 집에서 둘이 위스키 한 병을 까지. 년례행사야. 올해는 내가 술 한병 들고 가고, 그 친구가 아사도(고기) 준비하지. 작년에는 내가 고기 사들고 갔거든."
안다고 모든 것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지 못하면 그냥 외워!'라는 명언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얘기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안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니다.
산타할아버지 다녀가신 크리스마스 아침에 푸에르토나탈레스의 호스텔에서 바람소리를 들으며 깼다. 엄청난 바람이 짧은 간격으로 무서운 휘파람 소리를 내며 지붕을 훑고 간다. 파타고니아에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오늘 오후 버스 편으로 아르헨티나 입국이다. 10년 전 배낭그룹패키지여행 때 육로 국경 통과를 무수히 했기에 어렵지 않음을 안다. 이제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방랑 루트를 생각해야 한다. 한 곳에 계속 머물면 방랑이 아니니.
아르헨티나 첫 도착지 엘칼라파테는 모레노 빙하를 보기 위한 전초기지다. 모레노 빙하를 보기 위해 방문객이 년 70만 명이란다. 인구 3만 명이 안 되는 엘칼라파테는 이 어마무시한 여행객들을 재우고 먹이는 도시다. 모레노 빙하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자동차로 3 시간 정도 떨어진 엘찰텐의 피츠로이를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할 생각이다. 피츠로이봉은 '불타는 고구마'란 별칭을 갖고 있다. 일출 시에 햇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변하는 봉우리가 고구마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광경을 가까이서 제대로 보려면 4시간 정도의 산행 끝을 일출 시간과 맞춰야 한다.
엘칼라파테에서 10년 전 배낭여행 때 묵었던 숙소 'Del Norte'( https://brunch.co.kr/@jkyoon/326 )에 묵고 싶은데 부킹닷컴에 안나온다. 구글맵에서 검색해도 없다. 결국 구글맵의 로드뷰를 샅샅이 뒤져 찾았다. 'Hostel Elal'로 상호를 변경했다. 2박을 예약했다. 10년 동안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해서.
파타고니아에는 기찻길이 없어 렌터카나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2층 버스의 제일 앞자리에서 경치를 보며 낮 시간대에 이동하는 것이 혼자서 렌터카를 운전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것을 여러 번 느꼈다.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를 낮 시간대의 버스를 이용하여 방랑을 할 생각이다. 생각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시도는 해봐야지.
https://maps.app.goo.gl/No2Lx31UoV92Dbif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