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 Gallegos

by 재거니

2025년의 마지막 날 엘칼라파테에서 리오가예고스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딱 중간에 칠레의 토레스델파이네로의 갈림길이 나오고, 'Esperanza'란 아주 작은 마을이 있다. 큰 주유소와 호텔만 덩그러니 있는 곳이다. 먼 길을 자동차나 오토바이로 달려온 사람들이 하루 묵고 가는 곳이다. Esperanza는 번역하면 희망이다. 스페인어권 나라의 지명이나 상호에 정말 많이 사용되는 단어다. 인간은 희망으로 산다.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힘든 시절을 인내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인생을 살아내는 힘이 희망이다.


리오가예고스(Rio Gallegos)는 이름 그대로 가예고스 강이다. 대서양으로 흘러가는 가예고스 강 하구의 도시다. 이 일대가 속한 파타고니아 산타크루즈 주의 수도지만 인구는 12만 명이 안된다.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관광객이 결코 머물지 않는 도시라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모른다. 호텔을 3박 예약하고 해안선을 따라 북상하는 버스표만을 예약해 둔 상태다. 공항도 있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3시간이나 날아가는 비행 편이 매일 있다. 그렇지만 편도 가격이 400불이 넘고, 시간도 한 밤 2시경에 출발한다.


결국 2026년 신년 첫날을 리오가예고스에 맞았다. 지인들의 신년인사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그렇지만 신년이라고 무슨 특별함이 있을까? 사람들은 특별함이 있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올해의 신년인사 메시지 위에 작년의 신년인사 메시지만 떨렁 있다. 지난 일 년 동안 한 번도 메시지조차 교환할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자주 보는 가족이나 자주 메시지를 교환하는 지인과는 신년인사를 나눌 일 없다. 만나거나 메시지 교환할 일이 한 번도 없던 사람들과 아직 살아 있음을 서로 확인하는 것이다. 아직 살아 있다고...


1월 1일 호텔 파타고니아의 조식 뷔페를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는 중국인 가족 일행 4명만 있다. 그리고 아무도 없다. 호텔의 방이 100개가 넘는 것 같은데 어제 체크인할 때도 로비가 조용했다. 오전은 침대 위에서 뒹굴다 정오가 넘어 차려입고 호텔을 나섰다. 하늘은 약간의 구름만 있을 뿐 아주 파란데 바람이 장난 아니다. 여기도 파타고니아라는 것을 새삼 상기시켜 준다. 로비에 직원들도 없다. 오늘이 휴일이라 호텔 레스토랑도 아침만 제공하고 안 한단다. 로비라운지만이 약간의 음식을 제공할 뿐이란다.


거리로 나섰다. 시내 중심인데 문 연 가게가 없다. 문 연 음식점도 없다. 거리에 사람도 없다. 간간히 자동차는 지나가지만 멀리 노숙자 행색의 사람만 보일뿐 아무도 없다. 바람은 거세게 불어댄다. 모자가 벗겨지고, 걷기가 불편할 정도다. 두 블록 정도 벗어나니 주택가다. 주택가는 무슨 유령도시 같다. 움직이는 자동차도 없고, 아르헨티나에서 그 흔한 개조차 오늘은 안 보인다. 사진처럼 완전히 정지된 도시 주택가 풍경에 바람만 세차게 불어댄다. 일단 강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직선으로 난 도로 끝에 가예고스 강이 보인다. 강 하구라 강폭이 매우 넓다. 흐르는 것 같지 않은 강 위에 바람에 의해 부서지는 파도만 보인다.


강가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문 닫은 푸드트럭들이 줄지어 있다. 하나라도 열었으면 핫도그라도 사 먹고 싶은데... 공원에 낯익은 전투기가 한 대 있다. 포클랜드 전쟁 때 사용되었던 슈퍼 에탕타르 전투기다. 멋진 삼각 날개를 갖고 있다. 리오가예고스는 포클랜드 전쟁 당시 아르헨티나 전투기의 주요 발진기지였다. 파타고니아 앞바다 대서양에 있는 포클랜드 제도(말미나스 제도)의 영유권을 아르헨티나가 느닷없이 주장하면서 1982년에 전쟁을 일으켰다. 설마 멀리 있는 영국이 대응하겠냐고 생각하면서. 극심한 경제난과 민주화 요구에 국민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정권이 일으킨 전쟁이다. 결국은 폭망하고 항복했지만, 전쟁 초기 아르헨티나의 슈퍼 에탕타르전투기에서 발사된 프랑스제 엑조세 대함미사일 한 방에 영국의 신형구축함 셰필드호가 침몰했다. 미사일 한 방이 거대한 구축함을 침몰시킴으로써 고전적 무기인 전함이 무용하다는 주장을 기억하고 있다.


전 세계가 포클랜드 전쟁이라고 기억하지만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말미나스 전쟁이라고 기억한다.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하여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전쟁을 일으킨다면, 아마도 그 전쟁의 이름은 '독도전쟁'이라 불릴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다께시마전쟁'이라 불릴 것이다. 그런 일 없기를 바라지만...


Hotel Patagonia 옥상에 근사한 공간이 있다. 헬스장과 사우나. 그리고 휴식공간이 있는데 아무도 없다. 멀리 가예고스 강도 보인다. 사우나에는 6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고 전기로 작동한다. 사우나를 켜달라고 로비에 전화했다. 생수, 주스, 맥주 한 캔을 들고 이 공간을 독차지하고 있다. 세찬 바람이 요란하게 창문을 흔들고 있다. 바람소리가 창문 틈으로 매섭게 들어오지만 온실효과로 실내는 춥지 않다.


책 읽고 브런치 쓰기에 완벽한 공간이다.

호텔 옥상에서
가예고스 강 하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