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 길이 맞는 것일까?
무슨 목적이 있어 여기 온 것이 아니다.
파타고니아 방랑루트를 리오가예고스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2,500km를 가능한 육로를 이용하여 가려다 보니 처음 기착지가 여기다. 거의 자정이 되어 푸에르토산훌리안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자정 넘어 예약한 숙소에 체크인하는 것은 좀 부담스럽다. 24시간 프런트 데스크가 운영되는 큰 호텔은 문제없지만, 작은 호스텔이나 호스테리아는 문을 세차게 두들겨 주인을 깨워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푸에르토산훌리안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까를 검색하다, 여기가 마젤란의 세계일주 탐험의 큰 변곡점이었음을 알았다. 지도를 보면 이곳은 천혜의 항구다. 내륙으로 항아리 모양으로 쑥 들어온 바다는 풍랑을 피하기 아주 완벽한 장소다. 스페인에서 5척의 배를 이끌고 출발한 마젤란은 이곳에 1520년 3월에 도착했다. 파타고니아의 초겨울 날씨가 모든 사람을 힘들게 한다. 마젤란은 여기서 날씨가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정한다.
“정말 이 길이 맞는 걸까? 길이 있기는 한 것일까?”
'Fuerto San Julian' Julian 성인은 여행객과 순례자의 수호성인이다. 지금은 고요한 이 항구에서 500년 전, 인류 최초의 세계일주가 실패할 뻔했다. 마젤란은 포르투갈인, 선원 대부분은 스페인인이었다. 지휘권을 둘러싼 긴장은 결국 이곳에서 폭발했다. 부활절의 반란. 세 척의 배가 반란군에게 넘어갔고, 마젤란은 다행히 진압했다. 선장 한 명은 진압 중에 살해되고, 한 명은 진압 후 참수, 그리고 반란의 주동자인 산안토니오호 선장이자 왕실감찰관은 이 황량한 땅 파타고니아에 버려졌다.
마젤란은 계속 항해할 것을 결정한다.
그렇지만 시련은 또다시! 남쪽 해안 정찰을 나간 산티아고호가 갑작스러운 풍랑을 만나 난파되었다. 다행인 것은 선원 모두가 육로로 귀환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선원들의 얼굴에는 확신보다 두려움이 쌓여가고 있었다.
'집에 갈 수 있을까?'
겨울의 고비를 넘긴 8월, 마젤란의 함대 4척은 푸에르토산훌리안을 떠나 남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두 달 뒤 10월, 드디어 태평양으로 나가는 (마젤란) 해협에 들어섰다. 해협을 탐사하기 위해 흩어져 항해하던 중 산안토니오호가 사라졌다. 폭풍 때문도, 좌초 때문도 아니었다. 의도적인 탈주였다. 산안토니오호는 함대에서 가장 큰 배였고, 식량과 물자도 가장 많이 실려 있었다. 반란 후 임명된 선장은 마젤란의 측근이자 사촌이었는데, 일등 항해사가 선장을 감금하고 반란을 주도했다. 산안토니오호는 조용히 방향을 틀어 무사히 스페인에 도착했다.
“마젤란은 무모했고, 항해는 실패였다.”라고 말했다.
끝까지 완주한 배는 단 한 척, 빅토리아호였다. 마젤란은 필리핀에서 전사했고, 돌아온 사람은 18명뿐이었다.
빅토리아호의 리플리카가 여기 있다. (푼타아레나스에도 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아주 작다. 요트 수준이다.
마젤란은 자발적으로 길을 떠났지만, 260여 명의 선원들에게도 그런 의지가 있었을까?
푸에르토산훌리안에서 마젤란의 냄새를 맡으려 큰 숨을 들이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