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가예고스를 떠나는 날이다.
'Hotel Patagonia'에서 3박을 했다. 결코 잊지 못할 호텔이다. 이런 엘리베이터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박물관에 있어야 어울리는 엘리베이터다. 내부가 훤히 보이는 유럽식 '철제 창살(Scissors Gate)' 스타일의 고급 버전이다. 엘리베이터는 항상 로비층에 대기하고 있다. 바깥문을 당겨 열고, 철제 창살문을 옆으로 밀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한다. 그리고 바깥문과 창살문을 닫는다. 가고자 하는 층수 버튼을 누르면 묵직한 소리와 함께 덜컹거리며 엘리베이터가 작동한다. 원하는 층에 도착하면 3초 이내에 창살문부터 열어야 한다. 시간을 놓치면 로비층으로 되돌아간다.
엘리베이터 호출 버튼을 누르면 2대 중에 한 대가 올라온다. 엘리베이터 도착 후 3초 이내에 엘리베이터의 바깥문을 손으로 당겨 열어야 한다. 시간을 놓치면 로비층으로 되돌아간다. 엘리베이터의 창살문을 옆으로 밀고 탑승한다. 바깥문과 안 문을 모두 닫고 3초 이내에 가고자 하는 층의 버튼을 눌러야 한다. 시간을 놓치면 자동적으로 로비층으로 내려간다. 문을 여닫고 타는 방식은 완전 수동이고 엘리베이터 작동은 완전 기계식이다. 전기가 모터를 작동시키고, 층수 버튼을 작동시키지만, 우리가 지금은 너무 익숙한 전자식이란 방식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트랜지스터가 발명되고 응용되기 이전의 장치다. 어떻게 이런 엘리베이터를 아직도 유지보수하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오후 6시 버스를 타고 Puerto San Julian으로 다섯 시간 이상을 이동해야 한다. 첵아웃하고 호텔 로비에서 빈둥거리며 오후 시간을 보낼까 하다가 Laguna Azul을 갔다 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Laguna Azul은 리오가예고스에서 남쪽으로 70km 정도 떨어져 있는 분화구 호수다. 산타크루즈 주에서 지정한 자연보호구역이라 일반인들의 방문은 토요일과 일요일만 허용(?)한다고 나와 있다. 마침 오늘이 토요일이다. 우수아이아로 향하는 3번 국도 바로 옆에 위치하여 차만 있다면 가기 어렵지 않다. 칠레와의 국경을 넘기 직전이다. 편도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다. 호텔 프런트에 택시 섭외를 부탁했다. 나랑 나이가 비슷할 것 같은 어르신이 포드 레인저를 끌고 나타났다.
하늘은 잔뜩 흐리고 바람도 분다. 날을 잘못 잡았나 싶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리오가예고스를 벗어나자 우수아이아 586km라는 사인이 보인다. 우수아이아 까지는 국경을 두 번 넘나들어야 한다. 그리고 마젤란해협을 페리로 건너야 한다. 10년 전 마젤란 해협을 건널 때 배에서 돌고래를 사진 찍었다. 사진이 기억을 유지한다. 빗방울이 뿌리기 시작한다. 간간히 와이퍼를 작동시킨다. 좌우로 지평선이 보일 정도의 넓은 초원을 가로질러 신나게 달린다. 제주도의 오름 같은 봉우리들이 멀리 간간이 보인다.
거의 직선인 3번 국도는 오가는 차량도 거의 없다. 운전이 너무 심심하다. 운전하는 어르신이 하품을 한다. 한 손으로 뒷목을 주무르기도 한다. 영어가 조금이라도 되면 내가 운전하겠다고 하겠건만... 검문소를 통과하며 젊은 경찰과 악수를 하고 대화를 한다. 아는 청년인 것이다. 한 시간도 안되어 Laguna Azul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호수가 보이는 분화구 정상까지 50m도 안 되는 거리를 안내하더니 내려가는 길을 가리키며 갔다 오란다. 제법 큰 분화구 호수다. 'Azul'은 영어로 번역하면 'Blue'다. 왜 blue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호수 색깔은 거의 녹색이다. 해가 쨍하면 파랗게 보이나? 바람을 맞으며 망설이고 있다. 저 밑의 호수까지 내려갈 것인가? 여기서 보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고도차는 100미터 정도 되어 보인다. 그런데 경사가 장난 아니다. 보통 트레킹은 시작이 오르막이고 내리막으로 끝나는데, 이거는 내리막이 시작이다. 나중에 올라올 때 힘들지 않을까? 140,000페소나 주기로 했는데, 왕복 두 시간에 내가 여기서 사진 몇 장 찍고 그냥 가자고 하면 오히려 좋아할까? 차에서 눈 붙이고 싶겠지?
별 감흥이 없다. 사진으로 보나 눈으로 보나. 호수나 폭포에 내가 특별한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굵은 모래 같은 화산토에 푹푹 빠지며 미끄러져 내려갔다가 호숫가에서 한 참을 앉아 있었다. 물속에는 이끼와 녹색의 수초가 자라고 있다. 분화구라 바람은 거의 불지 않는다. 과나코 무리들이 경사면을 따라 이동한다. 과나코도 바람을 피해 분화구 안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상상한다. 역시 되돌아 오르는 것이 더 힘들다. 경사면을 짚고 누르면 푹 빠지면서 미끄러진다. 마침내 분화구 정상에 오르자 파타고니아의 바람이 세차게 분다.
이 바람맞자고 파타고니아 온 것 아니던가?
바람이 엄청 부는 파타고니아의 도로에는 쓰레기가 없다. 바람에 날려 어느 구석에 처박힐 테니... 리오가예고스 변두리에 들어서니 쓰레기가 많이 보인다. 길가 철조망에 걸려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 비닐 조각들이 특히 눈에 거슬린다. 얼마나 오래 저기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얼마나 오래 더 저기에 매달려 있을까? 바람에 날려 사라지기는 할까? 아니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계속 새 비닐들이 걸릴 테니까...
https://maps.app.goo.gl/a26KT1UWniJi9Hq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