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ínsula Valdés

Ruta Nacional 3

by 재거니

남위 43도인 트렐류까지 올라왔다. 조금 더 올라가면 파타고니아를 벗어난다. 지금이 한 여름이라고 트렐류에 도착한 어제 낮 기온이 33도였다. 겨울옷 밖에 없는데 어쩌지?


저녁에 호텔 프런트에서 렌터카 회사들 전화번호 리스트를 받아 왓츠앱으로 여기저기 문의했다. 그런데 답장이 다 스페인어로만 온다. 할 수 없이 비싼 Hertz를 App으로 예약했다. 8km 떨어진 공항에만 사무실이 있다. 택시 타고 공항 가서 렌터카를 픽업했다.


5만 km 정도 달린 Fiat Cronos를 받았다. Fiat는 난생처음이다. 이탈리아의 감성을 느껴본다는 것에 설레기도 하다. 그런데 수동변속기다. 오랜만에 수동변속을 하려니 긴장된다.


설렘과 긴장! 묘한 조합이다.


클러치를 밟은 상태에서만 시동이 걸린다. 운전석 의자 높낮이 조절과 등받침 각도 조절이 모두 오른쪽에 있다. 신기하네. 속도를 높이니 핸들이 아주 묵직해진다.


구글맵의 Península Valdés를 찍었다. 150km가 넘고 거의 두 시간이 소요된다고 알려준다. 가서 점심 먹으면 되겠네. 아르헨티나의 국도 3호선(Ruta Nacional 3, RN3)에 올라탔다. RN3는 아르헨티나 동부 해안을 따라 남북을 잇는 가장 중요한 도로로, 대륙의 끝까지 가는 길이라고 불린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작하여 티에라 델 푸에고 섬의 우수아이아에서 약 12km 더 들어간 라파타이아 국립공원(Parque Nacional Lapataia)에서 끝난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끝나는 것이다. 총길이가 무려 3,045km에 달한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3번 국도는 단순한 도로가 아니라 남쪽 끝 우수아이아를 향한 '로망의 길'이란다.


100km 정도 달리다가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발데스반도를 향했다. 반도 전체가 국립공원이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는다. 외국인은 45,000페소, 내국인은 15,000페소. 공원 웰컴센터에 들렀다. 바다사자 무리들과 고래를 볼 수 있다는데 노인네 혼자 무슨 재미가 있겠나 싶다. 그럴듯한 안내와 소품들을 진열하고 있는데, 영어 안내에 아주 인색하다. 무려 30달러나 받으면서... 욕 나오네!!!


대서양으로 튀어나온 반도 주변 절벽 아래 곳곳에 바다사자 무리들이 널려 있다. 꽥꽥 소리가 멀리서도 들린다. 바다사자 무리는 한 마리의 수컷과 많은 암컷들, 그리고 새끼들로 구성된다. 한 마리의 수컷이 'Macho'다. 마초가 스페인어인지 여기 와서 알았다. 전망대에서 사진 몇 장 찍고 나니 끝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여행객들이 많다. 동양인은 없다. 지나치는 아이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검은 모자, 검은 티셔츠, 검은 등산 바지차림의 동양 노인네를 처음 봤을테니… 태양이 너무 뜨겁다.


뫼르소는 태양빛에 눈이 부셔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다는데, 나는 태양볕이 너무 뜨거워 환장할 지경이다.


가축이 아닌 야생동물을 구경하는 것이 처음에는 신기하다. 그것도 동물원이 아닌 곳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한 번이면 족하다. 두 번 세 번 할 만큼의 재미나 가치는 역시 없다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 손주들과 왔다면 손주들의 흥분을 보고 나도 같이 흥분할 수 있겠지 싶다. 발데스 반도의 중심지인 Puerto Piramides로 차를 몰았다. 뭔가를 먹어야 할 것 같아. 해변이 있다. 그런데 수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다. 날은 더운데...


주유소 편의점에서 크로와쌍 두 개로 점심을 하고 오후 두 시경에 차를 돌렸다. Puerto Madryn으로 약간 돌아서 호텔로 가면 얼추 저녁 시간이 될 것 같다. 공원 내 도로를 신나게 달리는데, 맞은편 차가 내게 라이트를 깜빡거려 눈뽕을 날린다. 이렇게 황량한 벌판에 경찰이 있을 리는 없고, 과나코 조심하라고 신호를 주나? 그런 차가 두 번 더 있었다. 갓길에 세우기도 마땅치 않은데 무슨 일이지? 그렇게 50km 이상을 달려 Puerto Madryn 시내에 들어섰다. 전망대를 찍고 가는 중이다. 신호등 제일 앞 줄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오른쪽 길에서 대기하던 차가 내게 손짓을 한다. 뭔가 내 차에 문제가 있기는 있구나.


비상등을 켜고 주유소에 차를 세웠다. 나와 보니 앞 번호판이 떨어지기 직전이다. 나사 구멍이 벌어져 간신히 하나의 나사에만 번호판이 비스듬히 걸려 있다. 국립공원 내의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 심한 진동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공항 렌터카 사무실까지는 여기서 50km 정도다. 살살 갈 수 있을까? 아예 떼고 갈까? 아르헨티나 카센터를 찾아가서 해결할까?


난감하네!!!

10배 줌으로 당겼다.
트렐류 공항 앞에 세계에서 가장 큰 공룡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