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다.
나이 들면 개처럼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칠레나 아르헨티나 할 것 없이 파타고니아에 개들이 정말 많다. 사람수만큼은 있는 듯. 그것도 엄청 큰 개들이... 집 울타리 안에서 길을 가는 나를 보고 짖는 개들도 있지만, 길거리에 개들이 엄청 나와 있다. 자빠져 있거나 어슬렁어슬렁 거리다 나를 보고 수줍게(?) 꼬리 치며 다가오는 개들이 많다. 난 개를 만지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리저리 피하지만…
은퇴란 사회적 죽음이다. ( https://brunch.co.kr/@jkyoon/322 )
은퇴 후란 물리적, 실체적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알람소리에 깨어 부지런히 준비하고 출근할 직장도 없고, 회의랍시며 의미 없는 협의나 쓸데없는 논쟁을 할 이유도 없다. 물론 매달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도 없다. 수십 년간 유지하던 일상인 직장과 사회가 한순간 없어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실감에 우울증을 앓기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걱정을 한다. 갑자기 많아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를 걱정하고, 보장되지 않은 노후를 불안해한다.
보장된 노후란 있을 수 없다!
방랑을 하면서도 어디로 이동할지, 어디서 잘지,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할지를 계속 고민하고 걱정한다. 정해지지 않은 미래가 불안한 것이다. 이동 수단을 고민하고 선택해 예매하고, 숙소를 검색해 저울질하고 예약하고, 때로는 자동차를 렌트하든지 투어에 참여하든지 하며 방랑을 이어간다.
일상을 떠난 이유를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왜 여기에 존재하는가?'
아르헨티나 트렐류의 스테이크 레스토랑에서 안심 스테이크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다. 왜 트렐류에 왔지? 파타고니아를 방랑 중이다 보니! 왜 방랑을 하고 있는데? 그냥!!! 질문에 답이 될까?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떨쳐낼 가장 좋은 방법은 섹스라고 생각해. “ 영화 대사인지, 소설 속 문장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끌리는 마음이 있어 오래전에 메모해 둔 문장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떨쳐낼 가장 좋은 방법은 방랑이다. 얘기되네!!!
존재이유를 찾는 것은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의미가 없거나 명분 없는 일을 하기 싫은 것은 본능이다. 아니다. 본능이 아니다. 그렇게 교육받은 것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 가스라이팅 당한 것이다.
'인생은 원래 의미 없다'고 수많은 철학자와 현인들이 주장하지만, 그런 소리는 개소리라며 내심 동의하지 않는다. 모든 인생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은 일종의 종교다. 쓰임이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끊임없이 돈을 추구해야 한다. 자본주의니까.
노후가 걱정되는 것도 결국은 돈 때문이고, 배우자나 자식과의 문제도 대부분 결국은 돈 때문이다. 넉넉한 돈이 있는 사람은 제법 많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돈이 넉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넉넉하다는 기준도 애매하다. 대체 얼마가 넉넉한 것일까? 중요한 것은 인정하고 만족하는 마음이라지만 인정에 인색한 이유는 사회적 죽음 뒤에 얼마나 살다 갈지 자신이 모르기 때문이다.
개들은 주인에게 전적으로 묶여 있다. 개들은 주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 개들은 자신을 쓰다듬어줄 인간을 갈구한다. 처음 본 사람에게도 꼬리 치며 다가온다. 관심을 주고 만져주기라도 한다면 벌렁 뒤집어져 배를 보일지 모른다. 개들에게는 다정한 주인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주인만을 바라보며 항상 즐겁게 살 수 있다. 주인에게 버려진 개는 즐겁지 않다. 안락사(?) 당할 가능성이 높다.
즐거운 개처럼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누가 그랬다. 그보다 더 확실한 행복은 없다면서...
다정한 주인이 있는 개만 즐겁다.
모든 개가 행복한 것이 아니다.
주인 없는 주체적 인간은 개처럼 행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