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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an 29. 2021

정년퇴직은 사회적 죽음이다.


대학교수의 정년은 만 65세가 되는 학기의 끝이다.

이즈음 다니다 보면 정년이 얼마나 남았냐고 내게 묻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딱 3년 남았다. 교수들의 표현으론 6학기 남았다.


정년퇴직이란 사회적 죽음이다.


그래서 장례식 유사한 많은 기념행사가 벌어진다. 정년퇴임 기념 강연이나 의식들이 학기 말마다 정기적으로 학교에서 행해진다. 이런 의례적 기념행사에 주연으로 참석하고 싶지 않다. 진부한 기념 말고 나 만의 기념을 하고 싶다.


사회적 죽음이란 사회에서의 역할이 드디어 끝나는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해오던 일(노동)을 사회적 약속에 의해 그만두는 것이다. 노동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귀족이다. 정년퇴직 한다는 것은 귀족이 되는 것이다. 정년퇴직 이후에 대학이란 울타리가 주던 보호막(shield)이 사라지고 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호칭만 명예교수지, 무보수고 개인 연구실도 없다. 지도학생도 없고 조교도 없다. 사회적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개인 연구실로 오피스텔 같은 것을 마련하여 책을 쓰고 연구를 계속하는 분들도 제법 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 사이에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사회적 죽음을 어떻게 기념할까 고민하다 맘에 드는 생각이 떠올랐다.


파타고니아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파타고니아(Patagonia)는 남아메리카의 최남부를 포함한 지리적 영역이다. 남위 40도 부근을 흐르는 네그로 강 이남 지역을 말한다.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양국에 걸쳐 있으며, 서쪽에서 남쪽으로는 안데스 산맥, 동쪽으로는 고원과 낮은 평원을 포함한다. 파타고니아라는 명칭은 마젤란과 그의 원정대가 거인족이라고 묘사했던 원주민들을 가리키는 파타곤(patagón)이라는 말에서 비롯됐다. 당시 묘사된 파타곤(patagón)이란 평균 키가 1.60m 였던 스페인 사람에 견주어 평균 키가 1.80m인 장신족 떼우엘체 족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위키백과)


5년 전 남미 배낭여행( https://brunch.co.kr/@jkyoon/3​ )때 일주일 정도 만에 파타고니아를 휙 지나갔다. 달리는 말 위에 올라타고 관광한 기분이었다. 수많은 설산과 태풍 같은 바람이 몰아치는 평원을 갖고 있는 파타고니아 같은 곳을 처음 가면 엄청난 감탄과 흥분이 있지만 처음에는 정신을 못 차려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정보도 부족하고 배낭 그룹의 정해진 일정대로 움직여야 하니 내 몸도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 35박 일정의 남미 배낭여행 중에 가장 감격스러웠던 곳은 마추픽추, 우유니 사막, 이과수 폭포, 리우 데 자네이로가 아니고 파타고니아였다. 여행 이후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를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내 마음이 흥분되었다.


대충 일정은 이렇다.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파타고니아의 입구 격인 엘 칼라파테까지 가서 렌터카를 빌려 피츠로이와 토레스 델 파이네를 가볍게 트래킹하고 마젤란 해협을 건너 우슈아이아까지 간다. 전체 편도 거리는 약 1000킬로미터 정도다. 두세 달 머물면서 파타고니아의 설산을 질리도록 보고 태풍 같은 바람도 실컷 맞고 싶다. 그러면서 육체적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지를 생각해야겠다.


파타고니아를 천천히 음미할 마음을 먹고 나니 정년이 기다려진다. 3년 동안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든다. 특히 육체를 잘 보존해야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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