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법칙
바이아블랑카의 날씨가 좋다. 기온이 30도 가까이 오르지만 습도가 없어서인지 그늘 안에만 있으면 아주 쾌적하다. 정오에 호텔을 나섰다. 일단 광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아무리 작은 도시라도 제일 중심에 광장이 있다. 광장 이름이 Rivadavia다. 지나온 파타고니아 도시 중에 Comodoro Rivadavia가 있었다. Rivadavia가 아르헨티나 최초의 대통령이란다. 미국 곳곳에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이름이 사용되듯이, 아르헨티나 곳곳에 리바다비아란 이름이 사용되는 것이란다.
30만 인구의 바이아블랑카 도심은 완전한 바둑판 형태의 도로를 갖고 있다. 그리고 도로는 일방통행이다. 어제 토요일도 그랬지만 오늘 일요일에도 사람이 없다.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마치 영화 속의 유령도시 같다. 지금 1월이 아르헨티나의 휴가시즌이다. 사람들이 떠난 도심은 비둘기들이 점령하고 있다. 인도 곳곳에 비둘기똥이 가득 있다. 아르헨티나 비둘기가 우리나라 비둘기보다 30% 정도 크고 아주 통통하다. 아르헨티나도 비만인 사람들이 많은데 비둘기도 비만인가 보다. 솔직히 비둘기들이 먹음직스럽다(?).
미술관이나 박물관들의 개관시간이 주말에는 오후 4시부터 7시까지다. 현대미술관의 개관시간에 맞춰 갔는데 문이 굳게 닫혀 있다. 휴가시즌이라 그런지 몰라도 미술관 홈페이지를 찾아봐도 휴관 공지가 없다. 아르헨티나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다. 구글맵의 영업시간이 믿을 것이 못된다. 모든 것을 다 아는 듯이 알려주는 AI의 대답이나 설명도 믿을 것이 못된다. 그렇다면 믿을 만한 것은?
믿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냥 자신의 직관대로 움직일 뿐이다.
현대미술관 관람을 허탕치고 근처 음식점을 찾았다. 문을 연 레스토랑이 없다. 아르헨티나 대부분의 레스토랑의 오픈이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다. 휴가철이라 아예 안열지도 모른다. 간신히 문을 연 카페를 발견했다. 그나마 있는 손님들은 휴가를 떠나지 않은(못한) 노인들뿐이다. 남미 국가 중에 백인 비율이 가장 높다는 아르헨티나다. 관광지가 아닌 항구도시, 군사도시, 산업도시인 바이아블랑카에서 백인 아닌 사람은 나뿐인 것 같다. 흑인도 인디언도 동양인도 볼 수가 없다.
신호등 있는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자동차의 앞유리를 닦아주고 팁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 비에드마의 레스토랑에서는 테이블마다 편지를 돌리고, 잠시 후 편지를 회수하러 와서 양말을 사달라는 사람을 보았다. 예전에 우리나라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익숙하게 보던 광경 아닌가? 아르헨티나 경제가 어렵다는 것이 실감 난다.
방랑을 떠나면 몸무게가 줄줄 알았다. 왜냐하면 입이 짧은 내가 제대로 먹지 못해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파타고니아 방랑 중에는 만나지 못한다. 그런데 방랑이 70여 일 지난 시점에 내 몸무게는 전혀 줄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약간 늘었을 수도 있겠다. 체중계가 없어 재보진 못하지만 내가 내 몸을 느낄 수 있다.
왜 그럴까?
눈앞에 먹을 것이 있을 때 최대한 먹는다. 왜냐하면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해 끼니를 굶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그렇지만 끼니를 굶은 적이 있던가? 기억이 없다. 버스로 제법 긴 거리를 이동 중에 운전기사와 차장이 식사하기 위한 20분 정차가 있다. 나도 하차하여 햄치즈 샌드위치라도 사 먹는다. 백팩 안에는 비상식량(크래커와 바나나)도 있다. 있을 때 최대한 먹는 것이 본능이란 생각이다. 호텔의 조식뷔페에서는 점심을 굶어도 좋을 만큼 뱃속에 많이 집어넣는다. 이런 본능이 잡식이나 육식동물의 전형적인 행태 아닐까? 초식동물이야 초원에 사니 먹을 것을 항상 밟고 다닌다. 따라서 그런 욕구 없을 테지만, 육식이나 잡식은 항상 먹을 것이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눈앞에 먹을 것이 있으면 일단 최대한 먹고 봐야 한다. 그것이 생존의 법칙이다.
음식 공급이 줄어들면, 우리 몸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음식에 집착한다. 다시 음식이 풍족해지면, 증가한 식욕으로 충분한 지방을 저장해 이후의 기근에 대비한다. 이는 생존 메커니즘으로서 매우 합리적이다. 그렇지만 체중 감량을 원하는 사람들이 악순환에 빠지는 요인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떻게 지구를 먹어치우는가'란 서평기사에서]
위의 기사에서 또 놀라운 것은 '일본의 건강수명이 평균 74.1세로, 미국의 66세와 영국의 70세에 비해 높은 수치다.'란 대목이었다. 우리와 비슷한 일본의 경우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인데 미국의 데이터가 의외다. 찾아보니 선진국들이 매년 조금씩 연령이 늘어나는데, 미국은 최근 수년간 오히려 감소하거나 정체하였다고 한다. 이는 비만, 약물과다복용과 총기사고로 사망률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란다. 트럼프가 마약과 전쟁을 하는 이유이자 명분이다.
동물의 존재이유가 생존과 번식이라던데 번식기가 끝난 어르신도 생존에는 진심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