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아이아

by 재거니

아르헨티나의 모든 도시에 도시의 이름을 크게 조형화한 장소가 있다. 지금 Ushiaia의 그 장소에 있다. 경치가 좋은 곳, 그보다는 함께 사진을 찍히고 싶은 장소다. 9시에 문을 여는 세탁소에 오픈런으로 세탁물을 맡기고(오늘이 토요일이라 오후 한 시에 문 닫는다) 해안가로 나왔다. 벤치에 앉아 비글해협의 동쪽 끝 열린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바람은 조금 불지만 아주 쾌적한 상태다. 구글맵으로 우측에 보이는 칠레의 섬들을 확인한다. 이 순간을 박제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사진을 찍는 것뿐이다.


관광버스 두 대가 등 뒤에 주차를 한다. 한 무리의 어르신들이 몰려나온다. 레깅스를 입고 등산화를 신은 구부정한 할머니가 남편인지 아들인지 모를 남자에 기대어 힘겹게 걷는다. 걷는 모습은 요양원 침대에 눕기 직전 같은데, 어떻게 이곳 우수아이아에 오게 되었을까?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 땅끝(Fin del Mundo) 우수아이아 찍기였나? 우수아이아 표지판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선다. 두 사람(부부 거나 파트너)씩 표지판 옆이나 뒤에 서면 가이드로 보이는 남자가 사진을 차례대로 찍어준다. 이번 여행의 의미를 박제하는 순간이다.


우수아이아는 오래전부터 땅끝이라고 홍보하여 발전한 도시다. 남쪽 비글해협 쪽으로 지형이 경사져 건물들의 전망이 좋다. 건물에서의 전망이 좋다는 것은 밑에서 올려다보는 도시의 경관도 좋다는 것이다. 연중 추운 도시지만 모든 건물의 창이 남쪽을 향하고 있다. 태양볕을 받기보다는 전망을 선택한 배치다. 여기저기 높은 건물들이 바다 쪽을 향해 한창 건설 중이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폭망 했지만 우수아이아는 아니다. 오늘같이 적당한 구름에 적당한 기온인 날, 우수아이아는 정말 예쁜 도시다. 살인적인 물가라지만 난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어제 나보다 한 발 앞서 체크인을 한 백인 남자가 호텔에서 혼자 아침을 먹고 있다. 인상이 좋아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냐고? 미국이란다. 미국이 좀 넓으냐! 어느 주? 코네티컷이란다. 나더러 코네티컷을 아냐고 묻는다. New Haven과 Yale University가 있잖아. 너 혹시 Professor냐? Retired Professor! 웃으면서 Retired Professor가 그냥 Professor보다 좋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자기는 연말에 은퇴하고 2주 동안 은퇴기념 여행 중이란다.


기념이란 의미를 부여하는 몸부림이다. 탄생기념, 입학기념, 졸업기념, 결혼기념, 은퇴기념 모두 마찬가지다. 사망을 기념(?)하는 의식이 장례식이다. 자신의 장례식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인생에 마지막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이다. 청개구리 엄마가 시냇가에 묻어달라는 부탁은 죽어서도 시신이 온전히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지만 죽은 뒤에는 모든 것을 살아있는 존재들이 결정한다.


인생의 의미를 갈구하지만 원래 없는 것을 아무리 원하고 기도한들 없던 것이 생길 수 없다.




렌터카 2일 차다. 어제 이미 리오그란데와 우수아이아 구간을 왕복했으니 자동차를 렌트한 목적은 달성했다. 오늘은 자동차가 없으면 가기 힘든 곳을 가볼 생각이다. Puerto Almanza와 Estancia Harberton로 방향을 잡았다. 톨윈과 우수아이아 RN3 중간에서 남쪽으로 50여 km를 가야 한다. 이 도로는 비포장이다. Estancia Harberton의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게이트가 닫혀있다. 무슨 일이지? 비포장 도로를 한 시간이나 운전하고 왔는데. 게이트 앞 갓길에 정차하고 있는 허츠의 렌터카가 있다. 무슨 일이야? 13분 뒤 정오에 게이트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단다. 다행이다. 헛걸음은 아니었네.


Estancia Harberton의 카페에 들어갔다. 이런 경우 영어로 내가 말문을 열면, 상대의 반응은 여러 가지다. 자신이 영어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는 사람, 영어를 생각해 내려고 애쓰는 사람, 넌 영어 해라 난 스페인어 할란다고 그냥 스페인어로 답하는 사람, 유창하진 않아도 깔끔한 영어로 답하는 사람 등등.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든 내 다음 동작은 일관적이다. 'Wifi first!' 그리고 'Menu please'다. 메뉴에 영어가 없으면 방금 와이파이가 연결된 스마트폰으로 번역을 시작한다. 오늘 이 친구는 영어로 응대한다. 기분 좋은 날이다. 커피와 케이크를 주문하고 우수아이아에서 도시전경이 잘 보이는 장소를 추천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친절하게도 구글맵의 장소(Mirador Las Hayas)를 찍어준다.


Puerto Almanza는 예전에 보았다. 칠레의 나바리노섬 푸에르토윌리엄스에서 일주일을 머물 때, 밤마다 비글해협 건너편 불이 환한 곳이 Puerto Almanza란 것을 구글맵으로 확인하고 알고 있었다. 티에라델푸에고 섬의 동쪽에 치우친 작은 항구다. 칠레와의 영토전쟁을 할 때 사용했던 포대들이 방치되어 있고, 해안을 따라 해물음식점들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킹크랩이 우수아이아의 반값이라고 극찬한 구글맵 리뷰들이 많아서인지 음식점마다 사람들로 가득하다.

Mirador Las Hayas
경사가 전망을 만든다
Estancia Harberton의 Cafe에서
Puerto Aman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