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정각이다. 티에라델푸에고섬 리오그란데의 Full(YPF주유소 카페)에 실존하고 있다.
리오그란데는 티에라델푸에고 섬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다. 그래봐야 10만. 이곳은 산업도시라 자동차나 오토바이로 우수아이아를 목적지로 가는 여행객들이 지나칠 뿐이다. 공항은 있지만 LADE항공이 매주 화요일 우수아이아에서 온 비행기가 내렸다가 바로 리오가예고스로 갈 뿐이다.
톨윈의 숙소에서 7시 반에 렌터카를 몰고 나왔다. 일단 리오그란데의 YPF 주유소를 찍고 달렸다. 2차선 국도의 포장상태가 양호하다. 주변이 구릉구릉 하지만 길은 거의 직선이다. 연두색으로 칠해진 키 작은 나무들의 숲이 여기저기다. AI에게 물으니 렌가나무 숲이란다. 지금은 연두색으로 보이지만 가을에는 색이 바뀐단다. 연두색의 렌가나무를 가까이서 보면 기괴하게 생겼다. 흘러내린듯한, 아니면 녹아내린듯한 연두색의 줄기와 잎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밤에 보면 무서울 것 같다.
제한 최고속도는 승용차가 110km/h인데 내차를 추월하는 차들의 속도가 150을 넘는다. 과나코를 주의하라는 사인이 보인다. 왼쪽 언덕 위에 서서 먼 곳을 응시하며 미동도 하지 않는 과나코가 보인다. 과나코는 무리생활을 하는데 저 녀석은 웬일로 혼자 있을까? 무리에서 쫓겨났을까? 혼자 아침 산책을 나온 걸까? 아니면 나처럼 혼자 방랑하고 있는 걸까?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가 없네!
톨윈은 리오그란데와 우수아이아의 딱 중간에 있다. 그런데 톨윈에서 리오그란데까지의 길과 우수아이아에서 톨윈까지의 길은 느낌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톨윈에서 리오그란데는 전체적으로 평탄하다. 에스탄시아들이 간간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목장 아니면 렌가나무 숲이다. 운전이 좀 지겨울 수 있다. 그렇지만 워낙 빨리 달리는 차들의 추월이 신경 쓰인다. 중간에 폐차장처럼 검문소 옆에 사고 난 차량을 스무 대쯤 버려진 곳이 있다. 워낙 흉하게 망가진, 사고 난 자동차를 보고 운전 조심하라고...
우수아이아와 톨윈의 구간은 거의 산길이다. 제법 높은 고개를 넘는다. 고개 정상에는 잘 만든 전망대가 있다. 유난히 긴 Cami 호수를 중간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작은 호수도 간간이 보여 전망이 좋은 곳에 작은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소위 scienic drive 코스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우수아이아까지의 RN3를 다 이동해 본 경험에서 보면, RN3의 하이라이트는 톨윈에서 우수아이아까지의 구간이다. 대부분의 파타고니아의 경치는 '경치가 없는 것이 특별한 느낌을 주는 경치'다. 파타고니아 평원은 경치가 없다. 아르헨티나의 RN3에 비해 칠레의 Carretera Austal Ruta 7( https://brunch.co.kr/@jkyoon/911 )은 안데스 산맥을 끼고 달린다. 거의 모든 구간이 환상이다.
리오그란데 바닷가로 차를 몰았다. 수평선만 보이는 대서양이다. 혹시 바다사자나 물개라도 볼 수 있을까 하여 왔는데 아무것도 없다. 해변으로 밀려든 해초를 쪼아대는 작은 새들만 있다. 톨윈으로 다시 방향을 틀었다. 드라이브는 양방향으로 해보아야 진정 완성한 것이다. 톨윈의 입구에도 YPF 주유소와 카페 Full이 있다. 점심도 해결할 겸 Full의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았다. 옛날 미국 대륙횡단 여행할 때 맥도널드의 높게 세워진 사인이 보이면 마음이 푸근해졌는데, 아르헨티나에서는 YPF 사인이 보이면 언제나 마음이 안정된다.
우수아이아로 방향을 잡았다. 어제저녁에 급하게 오느라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회상하며 천천히 운전했다. 역시 이 구간을 운전하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느낌 어디서 느꼈지? 셀 수가 없네! 심호흡을 크게 한다. 이 벅차오름을 깊이 들이마시겠다고...
RN3는 우수아이아를 지나 17km 정도를 더 가야 끝이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네!'란 탕웨이의 영화 대사가 떠오른다. 끝이나 마지막에 사람들은 의미를 부여한다. 우수아이아에 관광객이 이렇게 몰리는 것도 남미 대륙의 끝이라고 홍보한 덕이다. 사람들은 진정 끝(?)인 줄 안다.
우수아이아 시내를 벗어나자 비포장 구간이다. 구글맵은 40분을 더가야 한다고 알려준다. 오가는 차량들로 먼지가 장난 아니다. 아르헨티나 정부를 욕하면서 짜증 내고 가는데 라파타이아 국립공원 입구가 보인다. 공원 Ranger 제복을 입은 젊은 아르헨티나 여인이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코리아라고 하자, 환영한단다. 국립공원 당일 입장료가 외국인은 30,000페소란다. 공원 안에 뭐가 있냐고 물었다. RN3의 끝과 작은 항구, 트레킹 코스가 있단다. 망설였다. RN3의 끝을 보기 위해 3만 페소를 지불할 것인가? 비포장을 12km를 더 운전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아마도 내려서 사진 몇 장 찍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다시 돌아 나올 것이 뻔한데...
우수아이아는 항구를 따라서 길게 형성된 도시다. 우수아이아를 벗어나기 위해 해안도로를 탔다. 해안 공원에 사람들이 많다. 10년 전 비글해협 유람선 탔던 선착장을 지난다. 그때의 기억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감을 느낀다. 꼭 10년이다. 날짜까지 얼추 같다. 10년이란 시간이 별거 아니다.
내 건강수명도 잘해야 앞으로 10년이다. 정말 운이 좋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