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아이아에서 대학동기 부부를 만났다. 부부는 남미 패키지여행 중이다. 10년 전 내가 한 남미 패키지여행은 35박이었는데 친구의 여행은 28박이란다. 거의 비슷한 코스인데 어떻게 일주일을 줄였나 보니 거의 모든 도시 간 이동이 비행기다. 내가 했던 것은 비행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야간버스이동이었는데... 파타고니아는 푸에르토나탈레스, 엘칼라파테, 우수아이아 일정이 포함된다. 어디서 만날까를 고민하다 우수아이아를 선택했다. 친구보다 이틀 먼저 우수아이아에 도착하여 렌터카로 혼자 방랑하다 렌터카를 반납하고 만났다.
10년 전 남미 패키지여행( https://brunch.co.kr/@jkyoon/3 ) 이후 다시는 절대로 패키지여행은 안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개인의 자유를 철저하게 박탈한다. 물론 현지 투어는 옵션이고, 점심과 저녁 식사는 각자 알아서 하지만, 여행의 핵심인 숙박과 이동은 완전히 함께 해야 한다. 야간 버스 이동이 끔찍하여 세 번 정도의 이동을 무리에서 벗어나 비행기 이동을 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정해진 시각에 모든 일행이 모여 이동을 함께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금보다 딱 10년 젊었기에 낙오하지 않고 따라다녔다. 그러나 나만의 아침 의식(ritual)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행복하자고 떠난 여행이건만 항상 분주하고 불만족스러웠다.
친구로부터 들은 얘기다. 친구는 가이드(길잡이)에게 들은 얘기다. 가이드가 남미패키지여행을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어르신을 모시고 다닌 적 있다고 한다. 밤에 호텔방을 나가지 못하도록 캐리어로 방문을 막았다는 얘기, 어르신만을 보낸 딸에게 연락했더니 완전히 모른 척하더라는 얘기를 하며 가이드가 어이없어했단다. 자식도 얼마나 함께 있기 힘들었으면 한 달 패키지여행에 어머니를 보냈을까? 설마 현대판 고려장을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손주들의 방학이 되기 전에 딸은 손주들을 보낼 캠프를 열심히 찾는다. 아직 여러 날의 캠프를 보낼 수 있는 나이가 아니기에 매일 등하원을 시켜야 하는 캠프라도 보내야 딸은 자신만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다. 알츠하이머 치매가 있는 부모를 패키지여행에 보내는 자식의 경우도 그런 심정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수십 명의 여행객을 핸들링해야 하는 가이드 입장에서는 정상에서 벗어난 어르신을 모시고 다닌다는 것은 항상 조마조마하며 엄청 신경 쓰이는 일이었을 것이다.
가이드는 패키지여행 중에 돌아가신 분도 보았다고 한다. 보호자도 아닌 가이드가 그 뒷수습하느라 황당했을 것이다. 어르신이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이다. 페루의 쿠스코, 볼리비아의 라파즈와 우유니 사막은 고산지대다. 정상인도 고산증상 때문에 힘겨워하는데, 고산증상을 처음 겪는 어르신은 충분히 세상을 떠날 수 있다. 치매증상이 급격히 악화할 수도 있고, 혈전이 생겨 심장이나 뇌로 가는 중요한 혈관이 막힐 수도 있다. 객사 자체는 사실 그렇게 나쁜 것 아니지만, 패키지 단체를 인솔하는 가이드 입장에서는 엄청난 부담이다.
어르신의 마지막 가는 길을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식이다. 자식이기에 운명이라 생각하고 군말 없이 하는 것이다. 형제 남매들도 있는데 왜 내가 이것을 혼자 짊어져야 하느냐고 불평할 수는 있다. 공정하지 않다고, 공평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 달의 기간을 전혀 모르는 남인 가이드에게 떠넘기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온전한 생각은 아니다. 어쩌면 패키지여행 중에 돌아가시기를 바라지는 않았다고 강변할지 모른다. 효도관광 보내드린 것이라고 뻔뻔하게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친구 부인을 포함한 일행은 전부 옵션투어를 가고 친구와 단 둘이 걸었다. 우수아이아 주변의 가벼운 트레킹을 할까 하다가 우수아이아의 해안도로를 걸었다. 평지를 걷는 것이라면 아직은 얼마든지 걸을 수 있다. 1978년 대학 2학년 때부터 알게 된 사이니 무려 48년을 알고 지낸 사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학위를 하고, 직장을 다니다 비슷한 시기에 정년퇴직을 했다. 거의 비슷한 인생을 산 것 같지만 각자의 인생은 다른 우여곡절을 거치며 전혀 다른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난 모든 인생이 연재 중인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완전 지구 반대편 우수아이아의 해안 길을 걸으며 거의 쉬지 않고 지난 인생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친구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는데, 왜 혼자 묵언수행하며 방랑하고 있는 걸까 싶다.
화장실을 찾아 한적한 비글해협의 바닷가로 나갔다. 일을 마치고 보니 우수아이아 공동묘지가 바로 옆이다. 조화도 있지만 야생화들이 정말 이쁘게 피었다. 묘지를 찾은 사람들도 제법 있다. 무슨 마음일까? 보고 싶은 것이겠지. 어르신들은 묘지를 마주하면 은근히 숙연해진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으니 다음은 내 차례란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먼저 간 사람들의 묘지를 보며 내 묘지를 상상한다. 묘소마다 꽂혀있는 십자가를 보면 먹먹해진다. 어떻게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이 진정 잘하는 것일까 생각한다.
인생이 의미 없다는 것은 모든 행동이 의미 없다는 것이다. 의미 없는 행동에 특별한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의미도 없고, 이유도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냥 걸을 뿐이다. 그냥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그냥 방랑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