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

by 재거니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다. 우수아이아에서 4박 하고 오후 비행기로 9시 반에 AEP 공항에 도착했다. 일주일 전에 와봤던 공항에 다시 오니 많은 것이 눈에 익숙하다. 능숙하게 우버를 불러 숙소로 향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야간 착륙 시에 보는 경관이 장관이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평탄한 도시가 어둠 속에서 나타난다. 거의 모든 가로등과 조명이 켜져 대지에 보석이 잔뜩 깔린 것 같다. 도시 위를 낮게 선회하는 비행기의 창문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도로를 따라 보석들이 줄을 맞춰 정돈되어 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장면이 아닌 실제 상황을 보고 있다는 것에 더욱 감탄한다. 살아 있다는 단순한 기적에 더해 볼 수 있다는 황홀한 축복을 비행기의 창가 자리가 제공한다. 그래서 난 항상 창가 자리를 고집한다.


처음 가는 숙소는 기대와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숙소는 셀프 체크인이라 더 긴장된다. 부킹닷컴으로 열흘 전에 예약했더니 바로 다음 날 왓츠앱으로 숙박료의 50%를 입금해야 예약이 확정된다는 메시지가 왔다. 숙소 이름으로 온 것이 아니고 'Mango Rental'이란 회사이름으로 왔지만 내 전화번호를 알고 있고 정확하게 숙박료의 50%를 청구하니 의심하지 않았다. 돈을 송금하고 며칠이 지나자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부킹닷컴으로 수없이 예약했지만 이런 경우 처음이다. 그리고 부킹닷컴의 메시지를 통하지 않고 왓츠앱으로 연락하는 것도 처음이다. 혹시 부킹닷컴이 해킹당하여 내가 사기당한 것은 아닌가 하고... 참 불안이 높다.


아파트 메인 출입구는 잠겨 있다. 출입구 오른쪽에 긴 박스가 있고 박스를 열면 아파트 방 번호가 표시된 작은 박스들이 일렬로 배열되어 있다. 내가 배정받은 아파트의 작은 박스가 네 자리 숫자의 자물쇠로 잠겨 있다. 아침에 온 메시지에서 비밀번호를 찾아 열었더니 열쇠가 하나 있다. 메인 출입구를 여는 열쇠일 뿐이다. 그다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가 배정받은 아파트 도어록 앞에 섰다. 도어록 비밀번호도 메시지로 날아왔다. 짜잔 하고 아파트 문이 열린다. 셀프체크인 성공!


스튜디오 형태의 아파트다. 냉장고, 전기곤로, 전자레인지를 비롯한 웬만한 살림은 다 갖춰져 있다.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설거지하기 싫어 아마도 음식을 조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후 열 시 반이다. 당연히 피곤해야 하는데 오히려 잠이 안 온다. 긴장해서 나온 호르몬들이 아직 나를 각성시키고 있다. 지난번 머물던 숙소를 예약했으면 이렇게 긴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통 웬만하면 익숙한 숙소를 다시 예약한다. 그런데 그 숙소에 방이 없다. 할 수 없이 새로운 숙소를 예약한 것이다.


거처를 옮겨 정착하는 과정이 방랑 중의 가장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Sube'라는 교통카드가 있어야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탈 수 있다. 편의점에서 1,500페소를 주고 교통카드를 샀는데, 편의점 교통카드 충전기가 마침 고장이다. 지하철 역에서 어렵게 교통카드를 충전하고 지하철을 탔다. 스크린도어도 없고, 차량도 깔끔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서울의 지하철 1호선 예전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지하철은 1913년에 처음 Line A가 건설되었고, 나무로 만들어진 전동차가 꽤 최근까지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Line A를 타볼 생각이다.


버스를 탈 때는 앞문으로 타면서 기사에게 가고자 하는 곳의 정거장 이름을 (스페인어로) 말하면 (거리에 따른 차등이 있다) 기사가 요금을 선택한다. 그리고 수베 교통카드를 찍어야 한다. 그것을 모르고 승차한 방랑자는 카드를 들이대며 웃을 수밖에 없다. 구글맵으로 현재 위치가 파악되니 문제는 없다.


가장 중심가를 걸었다. 관광객도 많은 거리에서 여러 사람들이 '캄비오 캄비오'를 외치고 있다. 캄비오는 환전이다. 소위 암달러 환전을 한다는 얘기다. 환전율이 무척 궁금하지만 소심한 내가 환전할 것도 아니면서(아직 페소가 충분하다) 다가가 묻지 못했다.


지난번에 이틀 있으면서 두 번이나 찾아갔던 한식당을 또 갔다.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좀 찜찜해하면서도 비빔냉면을 무척 맛있게 먹었는데, 역시 다음 날 설사를 했다. 짜파게티를 봉지째 판다. 두 개를 샀다. 비빔냉면 먹으며 남긴 김치를 싸달라고 했다. 두 끼를 해결했다.


아파트 숙소 밑에 슈퍼가 있다. 맥주 안주로 땅콩을 살까 하여 저녁 먹고 나갔다. 와인이 한쪽 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것은 소고기와 와인이라는데, 적포도주 매일 한 잔은 심장에도 좋다던데, 아르헨티나 말벡 포도주를 여기서 안 마시면 평생 후회할 텐데, 한국에도 수입되는 트라피체는 말고, 너무 종류가 많아 와인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2500페소부터 만 오천 페소까지 있다. 가장 비싼 만 오천 페소 와인을 만 이천에 세일하는 것을 선택했다. 쪼잔하다고 해야 할까? 잘했다고 해야 할까?


Buenos는 Good이고, Aires는 Air다. 굿에어, 좋은 공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