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 공항에 제주항공의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 선회 중이다. 이국 공항의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공항의 담장 위를 비행기가 낮게 지나간다. 곧 뒷바퀴의 터치다운이 있을 것이다. 난 본능적으로 허리를 C자형으로 곧추 세우고 바른 자세에 돌입한다. 비행기의 하강이 느껴진다. 엉덩이를 앞뒤로 가볍게 움직여 몸에 탄력을 준다. 터치다운을 대비하는 동작이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Hard Landing시의 척추(허리)를 보호하기 위한 나만의 루틴이다.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일까? 내가 너무 불안이 높은 것일까? 아니다. 난 불안하지 않다. 척추에 손상을 줄 수도 있을 만큼 심한 Hard Landing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제법 오래전에 필리핀 클락공항에서였다. 밤이었지만 공항 주변은 밝았고 시야도 좋았다. 활주로에 천천히 접근하는 진에어의 B737은 흔들림이 거의 없었다. 부드러운 착륙을 기대할 만했다. 그렇지만 꽝소리가 나면서 뒷바퀴가 터치다운을 했다. 비행기 동체와 내 허리가 아작 나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어떤 놈이 비행기를 조종한 거야? 기장은 아닐 거야? 완전 초보 부기장이겠지. 조종에 소질이 없는 놈이네!'
다행히 내 허리는 괜찮았지만 비행기가 걱정되었다. 비행기는 기계장치고, 바퀴에는 착륙의 충격을 흡수하는 쇽업소버(Shock Absorber)가 있다. 흡수할 수 있는 충격보다 더 큰 충격이 가해지면 쇽업소버가 기능을 잃을 수 있다. 내가 느낀 충격은 보통의 충격이 아니었다. 착륙장치에 큰 충격을 받은 비행기는 정비가 필요하다. 최소한 괜찮다는 검사가 이루어져야 다시 비행할 수 있다.
내 사촌형님은 팬텀기 조종사였다. 팬텀기는 국민 세금으로 마련한 매우 비싼 장비다. 훈련이나 초계비행 후에는 항상 Soft Landing을 해야 한다. 간혹 조종사가 실수로 Hard Landing을 하면, 그 충격값이 기록에 남는다. 따라서 어느 이상의 충격은 항공기 정비사들을 짜증 나게 한다. 추가 검사와 추가 정비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주 이런 상황을 야기하는 조종사는 결국 진급하지 못하고 도태될 것이다.
도로에 설치된 과속방지턱은 자동차의 현가장치에 부담을 준다. 속도를 줄여서 천천히 지나가야 자동차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가끔 과속방지턱을 보지 못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과속방지턱을 넘게 되면, 쇽업소버를 비롯한 현가장치 여러 부품의 수명을 줄인다. 운전자는 방지턱에 닿는 순간을 바로 인식하고 몸이 긴장한다. 그렇지만 뒷좌석의 승객은 상황 인식에 시간차가 있다. 넋 놓고 있다가 충격이 가해지면 허리를 비롯한 척추를 다칠 수 있다. 다친 척추는 시간이 지나 좋아질 수도 있지만, 기계장치는 재생능력이 없다.
천천히 주의 깊게 운전해야 고장 없이 오래 자동차를 유지할 수 있다. 당연한 것 아닌가?
카트를 밀고 공항 청사 밖으로 나왔다. 건너편의 주차장으로 카트를 밀고 가는 중이다. 공항청사와 주차장 사이에는 넓은 도로가 있고,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있다. 청사 출구를 나서면 신호등의 상태가 보인다. 빨간불이면 천천히 횡단보도를 향해 가면 된다. 그렇지만 간혹 파란 신호와 남은 시간이 보인다. 건너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일 때, 어르신 당신은 어떤 태도를 취하시나요? 이번에 꼭 건너겠다고 달려가시나요? 아니면 이번에 건너는 것을 바로 포기하고, 다음 신호를 천천히 기다리시나요?
어르신과 어린아이는 달릴 때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집니다. 아직 창창한 미래가 남아 있는 어린이가 달리는 것은 정상이고 머리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여생이 많이 남지 않고 경험이 많은 어르신은 달려서는 안 됩니다. 몇 분 일찍 가려다 영영 가실 수 있습니다. 뛰다가 넘어져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오지 않을 미래를 기다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결국은 남보다 먼저 세상을 떠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즈음 뛰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합니다. 어르신은 급할 일 없으니까요! 급한 일 만들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합니다.
발생가능한 위험을 미리 인지하고 조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위험을 인식하는 능력이 남보다 떨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능력이 평균 이하면 결국 다치거나 일찍 죽을 확률이 남보다 크겠지요. 진화론을 생각하면 현대의 인간은 위험인지 능력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위험을 인지하고 가능한 위험을 회피해 온 선조들이 후손을 많이 낳아 자신의 유전자를 대대로 전한 것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