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손이 떨리네!!!

by 재거니

필리핀 클락이다. 풀빌라 세 동에 한국 골프여행객을 유치하여, 재우고 먹이면서 골프장 예약 및 교통편을 제공하는 여행사(?) 비즈니스를 하는 친구 살림집(빈방이 네 개)에 머물고 있다. 살림집과 풀빌라는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오늘 아침은 풀빌라 가서 먹자고 한다. 손님들은 다 골프 치러 나갔고, 만들어 놓은 한국음식이 많단다. 오랜만에 빵이 아닌 밥을 조식으로 먹게 되었다.


콩나물국을 숟가락으로 떠올리는데 숟가락이 떨린다. 웬일이지? 가만히 정지하고 있으면 괜찮은데, 입으로 가져가기 위해 들어 올리는 중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숟가락 속의 국물이 흔들린다. 국물이 흔들리고, 숟가락이 떠는 것은 내 손이 떨리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정작 닥치니 당황스럽다. 몇 번을 반복해서 테스트했다.




최근 서울에서 3년 선배들과 저녁 약속을 잡았다. 대학 시절부터 어울렸으니 47년 차다. 같은 과 선배들도 아니다. 선배 중의 한 명이 아버지의 친한 고향(평양) 친구의 외아들이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알던 형이다. 전공은 다르지만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공릉동 캠퍼스에서 조우했다. 형은 대학원생이었고 난 학부생이었다. 형의 대학원 연구실에 놀러 가면 형 친구들이 많았다. 친구들은 거의 전부 형이 졸업한 중앙고등학교 동기동창생들이었다. 그 덕에 난 중앙고를 졸업하지 않았지만 많은 선배를 두었다.


저녁 식사 장소에 아주 오랜만에 보는 선배가 먼저 와 있었다. 과학기술원 석사과정 입시준비를 도와줬던(중앙고 선후배 사이에 전달되던 소위 족보를 준) 선배다. 다른 선배들을 기다리며 일단 맥주를 주문했다. 첫 잔은 따라줘야 한다며 내게 술을 주는 선배의 손이 심하게 떨린다.


“놀랄 것 없어! 우리 집안에 손 떠는 유전자가 있어. 파킨슨은 아니고.”




모든 동작은 소뇌가 주관한다.


소뇌도 나이 들면 노화되어 문제를 야기한다. 손이 떨리고, 걸음걸이가 달라지고, 구음장애라고 말하는 것도 어눌해진다. 미세한 움직임이 요구되는 모든 동작에 영향을 준다. 연하장애라고도 하는 삼킴장애도 보통 노화 때문이다. 대표적인 증상은 자주 사레가 든다. 이즈음 나 자신이 사레가 들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급하게 뭔가를 들이키려다가. 노화는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가끔 단차를 주며 뚝 떨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뚝 떨어지는 순간을 그나마 느낄 수 있다.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큰 기대 안 하고 ChatGPT에게 물었다.

“손이 떨리면?”

예상한 대로 원인은 노화, 파킨슨증후군, 본태성, 가족력, 스트레스와 피로, 과다 카페인 등등이란다. 본태성이란 딱히 원인을 모르는 것을 지칭한단다. 가만히 있어도 떨리면 파킨슨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클락의 코아호텔 루프탑 레스토랑에서 피나투보 산군을 보며 혼자 저녁을 먹었다. 된장찌개를 주문했다. 혼자 먹을만한 메뉴는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등이다. 찌개를 숟가락으로 뜨면서 떨림을 관찰했다. 아무렇지도 않다. 노화로 인한 현상이 다시 좋아질 수는 없는데... 노화는 대표적인 비가역 현상이다. 엔트로피 증가 현상이다. 그렇다면 어제 아침의 떨림의 원인은 무엇이지?


자정이 넘어 클락공항에 도착하여 숙소의 잠자리에 든 것이 새벽 세시(한국 시간은 네시)가 넘어서였다. 식물성 멜라토닌 한 알 먹고 잤지만, 잠자리가 바뀌고 시간대가 변하여 이틀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래서 손이 떨렸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지만 한창 젊은 사람은 며칠 밤을 새우며 일을 하고나도, 숟가락 든 손을 떨지 않는다.


나 자신의 노화 정도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면 되겠다.

그렇게 노화도를 안다고 사는 것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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