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The Only Story )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라고 나는 결국 생각한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 '연애의 기억'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
사랑은 결국 괴로움이라 사랑의 정도가 크면 괴로움의 정도가 커서, 가능한 괴로움을 피하려면 사랑을 적당히 하란 얘긴가? 부커상을 받은 작가라고 진실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소설의 첫 문장이라고 해서 꼭 진리일 필요는 없다. 소설이 갖는 책임 없는 자유로운 표현일 뿐이라고 치부해도 상관없다. 그렇지만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서인지는 몰라도, 아예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사회면 기사에 이즈음 자주 언급된다.
답을 선택할 수 있어야 질문이 성립하는데, 과연 사랑의 정도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냐고 저자는 답한다. 그러면서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지만 사랑은 분명 아니라고 정의한다.
사랑이 결국 괴로움이나 상처로 끝난다는 것에 동의한다.
시간이 흐르면 사랑의 열정은 식는다. 열정이 식는 시간이 3일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고, 무려 3년까지 갈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괴로움이 남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상처가 남는다.
신데렐라가 왕자님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을 우리는 안다. 왕자님이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 신데렐라가 식음을 전폐하고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신데렐라가 아기를 낳다가 죽어 왕자님의 눈물이 아직도 마를 날이 없는지도 모른다. 동화 작가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해야 사람들이 좋아한다. 그런 사랑을 유아시절부터 세뇌당해 왔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을 읽다 보면 '좆같은'이란 표현이 자주 나온다. 물론 구어체 문장에서...
"네가 받은 좆같은 축복에 감사해라." 이 문장은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란 소설에서 주인공이 암 진단을 받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에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들의 무리를 보며 혼잣말한 것이다. 암 진단을 받았을 망정 맹인보다는 자신이 축복받은 것을 인정하는 독백이다. '좆같은 축복'의 영어 원문이 무엇일까? 'Fucking Blessing'일 것이다. 관사 'A'를 붙여야 할지 'The'를 붙여야 할지는 모르겠다.
이 표현이 워낙 내게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아직 암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내 상태인 것 같아서.
"나 자신의 머나먼 좆과 씹의 경험을 기억해 보자면." 이 문장은 '연애의 기억'이란 소설에서 주인공이 자문(?)을 구하러 방문한 (나이가 많은 유부남의 오랜 정부였던) 여인이 한 말이다. '좆'이나 '씹'이란 표현을 일상적으로 내뱉는다면 상스럽고 점잖지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런 표현을 읽으면서 야릇한 감정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심지어 영어 원문을 찾아보고 싶은 호기심까지 드는 것은. 묘한 쾌감이 드는 것은 욕이 갖는 카타르시스 효과 때문이다. 어휘력이 높은 사람이 욕 어휘도 풍부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작가인 줄리언 반스가 어휘력이 풍부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이즈음 그의 소설에 푹 빠져있다.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 실컷 욕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