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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Dec 24. 2016

공항에 오면 마음이 설렌다.

숨쉬기 위해 떠나는 여행


공항에 오면 마음이 설렌다. 일상에서 탈출하고 있다는 생각에...


짐을 싸 들고 공항으로 온다. 집에서 짐을 쌀 때 이즈음 고통스럽다. 많은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에 꼭 필요한 것만 챙긴다고 노력하지만 있으면 좋고 없어도 무방한 것들을 빼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꼭 필요한 것을 빠뜨리지 않고 챙기는 것도 힘들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짐의 크기는 여행 중 얼마나 자주 빨래를 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3일마다 할 것인가? 일주일마다 할 것인가? 아니면 열흘마다 할 것이냐에 따라서... 여행 중에 빨래하는 시간이 아깝다면 많은 짐을 들고 다녀야 한다.

나는 공항에 항상 일찍 도착한다. 두 시간 전보다 일찍 오는 것을 좋아한다. 공항에만 오면 살짝 들뜨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오래 즐기기 위함이다. 공항 라운지도 한 시간 이상 이용한다. 공항에서의 여유를 즐긴다. 그러나 최근 엄청나게 늘어난 항공편으로 인천공항뿐 아니라 전 세계 주요 공항은 매우 혼잡해졌다. 텅 빈 게이트의 우아한 여유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공항 라운지도 꽉 차서 이용할 수 없는 경우도 다반사다. 공항 활주로가 붐벼 승객을 다 태우고 게이트를 떠나 30분 이상 대기하는 경우도 있고 며칠 전에는 마닐라 공항 상공에서 내가 탄 777 여객기가 선회를 하며 30분을 대기하다 착륙하기도 했다. 이제는 한가하고 여유 있는 공항의 분위기를 즐기기 쉽지 않다.

지금은 장가갈 나이가 된 아들이 초등학교 때였다. 아들은 학교 가는 것을 싫어했다. 나는 이해했다. 나도 학교 가는 것이 싫었으니까... 이미 온 가족이 두 번의 인도 배낭여행을 한 뒤였다. 아들과 둘만의 인도 히말라야 배낭여행을 내가 제안했다. 아들은 엄마와 누나가 동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심 내키지는 않았으나 아직 여름방학이 시작하지 않은 학교를 빼먹고 간다는 것에 선뜻 동의했다. 그만큼 학교 가기를 싫어했다.

아들과 둘이 인도 델리로 갈 비행기표를 찾았다. 인도 직항의 국적 항공기 요금의 거의 반값의 ANA 전 일본 공수의 비행기표가 있었다. 50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싼 대신 일본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 오사카에는 저녁에 도착하고 환승은 그다음 날 아침이다. 공항 밖으로 나가 호텔에서 자려면 일인당 5만 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든다. 그것을 아끼려면 공항 대합실 의자에서 자야 한다. 대부분의 배낭여행객이 공항에서 잔다고 여행사 직원이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나도 간사이공항에서 노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인도 델리로 출발하기 며칠 전에 아들에게 우리의 항공일정을 설명했다. 아들은 아무 말없이 듣고 있었다. 다음날 내게 아들이 물었다.

"아빠, 꼭 길에서 자야 해?"

여러 번 비행기를 타봐서 공항이 어떤 곳인지는 아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공항 대합실에서 잔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나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을 괜찮다고 설명하며 아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오직 하이텔 게시판의 사람들의 후기만을 보고... 사실 나도 불안했다. 공항 대기실의 긴 의자에서 잠을 자고 다음 연결 편을 타야 한다는 것이...

일본 오사카 간사이공항은 1994년 9월에 개항하였다. 바다를 간척하여 직사각형의 인공섬을 만들고 활주로와 공항터미널을 만들었다. 아주 깨끗하고 한적한 새 공항이었다. 이삼십 명의 한국 배낭족들이 환승구간에 모여들었다. 일단 마음이 놓였다. 아무래도 무리 속에 끼어있으니... 심지어 아주 젊은 공항 보안요원이 환승 지역을 밤새 지키고 있었다. 혹시 모를 불미스러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환갑이 내일모레인 이 나이에도 공항에 오면 마음이 설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무섭게 많은 여행을 했건만 조금의 틈만 나면 집을 떠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7명의 학생을 이끌고 여름방학 때 문무대왕 수중왕릉으로 유명한 감포해수욕장에 갔다. 그때 처음 나는 파도가 넘실대는 푸른 동해 바다를 보았다. 그때 처음 나는 비릿한 멍게 한 마리를 통째로 먹어야 했다. 달착한 초고추장도 없이...

어머니가 중학교 2학년 여름에 돌아가시고 그 해 시월부터 새어머니와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게 사춘기도 왔을 것이다. 이 집을 나가겠다고 고등학교 때 나는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교 시절 집을 나가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수도 없이 많다. 4학년 때는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방학 때마다 산으로 바다로 나가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여행은 내게 자유를 주었고 집은 내 숨을 막히게 했다. 나는 숨쉬기 위해 물 밖으로 뻐끔뻐끔 대는 물고기처럼 여행을 떠나야만 했다. 숨쉬기 위해...

남미대륙의 끝 우수아이아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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