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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페페 Oct 20. 2020

공간의 힘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적이 있는가. 바로 나다. 회사를 그만 두고 지인들에게 부탁한 화이팅 선물은 스타벅스 이용권이었다. 그 곳이 내가 머물려는 주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내 공간이 있을 때는 잘 모른다. 크던 작던 자신에게 딱 맞는 공간이 아주 드물다는 걸.


집에서는 잠과 TV보기 이외에 1도 하지 못하는 나는 밖에서 공간을 찾아야 했다. 동네 카페가 첫번째 고려대상. 여러모로 괜찮다. 거리도 가깝고 카공족들에게 무난한 분위기. 카페를 주 공간으로 정했다면 다섯 개 정도의 매장 위치는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공간을 옮겨 다닐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돈을 내고 이용하는 곳이지만 내 사무실도 아닌데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방문해 하루 종일 머물자니 괜스레 뒤통수가 당긴다. 새로운 분위기나 메뉴로 전환하고자 다른 곳을 찾기도 한다. 

이게 참 쉽지 않다. 의자와 테이블의 높이가 적절치 않은 데가 태반. 오래 머물기에는 너무 조용하거나 너무 산만하다. 주문 할 메뉴가 마땅치 않다. 다 좋은데 접근성이 떨어진다. 어느 시간대가 되면 사람들이 너무 몰려 눌러 앉아 있기가 그렇다.   

카공족이 되면 짐이 무거워 진다. 주말 신문이나 볼 겸 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머물러야 하는 공간이다. 꽤 오랜 시간 있어야 한다. 시원한 에어컨은 추운 바람이 되기에 긴 옷 하나는 갖고 나오는 게 좋다. 충전을 위한 어댑터와 라인들이 따라 붙고 중간 양치질을 위해서는 간단한 도구도 필요하다. 내리 진지한 작업에 집중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킬링타임을 보내기 위해서 이어폰이나 헤드폰이 있으면 좋다. 중간에 집에 들어갔다 오면 되지 않느냐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회사형 인간으로 오래 있었던 이에게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휴식 모드의 ON을 의미한다. 냉장고를 열고 소파에 눕고 다시 나오기가 힘들다. 그래서 최대한 한 공간에서 버텨야 한다. 

버티는 일이 또 쉬운 게 아니다. 좋은 자리 차지하기가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카페는 차 마시기에 적합하게 설계된 곳이기에 오랜 작업에 최적화한 자리는 매우 드물다. 몸이 배배 틀리고 허리가 아프고 다리도 붓는다. 그래도 일단 자리를 뜨면 다른 누군가의 자리가 되기 때문에 견뎌야 한다. 신체의 무리도 견디고 에어컨의 세기도 견디고 주변의 예기치 않은 소음도 견뎌야 한다. 난 다행히 어느 정도 소음이 있을 때 집중이 잘 되는 타입이라 그나마 낫다지만 시끌벅적한 손님들이 오래 머물 경우 산만함은 각오해야 한다.

어디서든 각오와 의지만 있으면 열심히 할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추운 교실에서 공부할 때 선생님들은 공간이 안락하면 사람이 게을러 진다고 했다. 동의하지 않는다. 쾌적한 화장실이 인류의 위생에 기여했고, 순조로운 냉난방은 인간의 활동시간을 확장했다. 단순히 쾌적함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생각과 개념을 갖는다. 걷기 좋은 길은 걷게 만들고, 쓰기 좋은 공간에서는 생각하게 하고, 대화하기 좋은 공간에서는 공감이 이루어진다. 공간은 우리를 확장하고 바꾼다. 


여행자로 도쿄에 와 있다. 오늘도 나는 쓰기 좋은 공간, 책 읽기 좋은 공간, 생각하기 좋은 공간을 찾아 헤맨다. 오늘 먹을 메뉴와 해야 할 일의 접목도 잘 해야 한다. 잠시 쉬고 싶을 때의 위치도 고려한다. 메트로폴리탄에는 이런 곳이 많아서 좋다. 네모에 들어가면 네모로 생각하고 동그라미에 들어가면 동그라미로 생각한다. 오늘은 어디로 들어가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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