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재범이 아니니까

by 제이켠

슬리피 형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박재범이 될 수 없단 걸 너무 늦게 알았다”

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형이 1초도 안 돼서

“너는 제이켠이 되면 되지!”

라고 대답했다.


그때 뭔가 댕 하고 머리를 치는 느낌이었다.

분명히 슬리피형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열정적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이다.

혹시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소개를 하자면,

가난함의 아이콘이라는 콘셉트로

방송을 재미있게 하는 그런 엔터테이너이다.

가난을 코스프레한다는 사람들의

곁눈질이 있긴 하다. (물론 예전보단 낫겠죠)

하지만 여전히 그때의 험블함으로 살아간다.

열심히 디펜스하고 사는 건

아마 재벌들 아니고서야 다 비슷할 것이다.


말이 조금 샜는데,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20대에는 ‘난 꿈을 이루고야 말겠어’라는

집념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잠깐 서서 얼굴을 보다 보니,

어라? 이미 내가 통과하고 싶었던

골대를 지나쳐 버린 것이다.

삶을 뒤로 갈 순 없는 노릇이죠.

그때 비로소 뭔가가

온몸에 피가 돌듯이 스르륵 깨달아졌다고나 할까요.


분명 예전에는 무언가 살아 있었는데,

무언가… 풍화된 나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곤란해졌다.

지갑을 집에 둔 채로 지하철에 도착했다면

다시 돌아가면 되는데.

그게 아니지 않나.


나는 본질적으로 지각생이다.

그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늦어버릴 줄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늦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늦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


써 놓고 보니 누군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자,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어떻게 해야 되지?

• 나는 박재범이 아니니까 -

그 시기에 가장 고민했던,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이다.


강력한 인플루언서라는 존재는

어떤 분야에나 있을 것이다.

그게 글이건 그림이건, 가수건 배우건,

심지어 바리스타 업계에서도 말이다.

아니 어쩌면 길고양이계(?)에서도 있지 모른다.

상수역 헤어숍 마스터피스 근처에 어슬렁거리는

그 냥이 봤어? 수군거리면서 말이다.

음, 너무 비약적이라 죄송합니다.

요는 그런 존재는

내가 어떤 행위를 해서 따낸 자리라기보다는

‘선택받은’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 선택받지 못했다는 느낌은 좌절감을 살찌운다.


박재범

왜 그 친구를 예로 들었냐면

내가 만나 본 아티스트 중

가장 쿨하고 밝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잠깐이었지만

내가 있던 팀의 리더로서

멤버들을 세심히 챙기고

(정말 티를 안 내면서 챙길 건 다 챙겨 준다)

안 보는 것 같으면서도

모든 정황을 다 읽고 있는 그런.

동시에 어린아이 같은 장난기도 보유하다니

정말 부럽잖아?!

쇼미 11 “SLAY” 팀과의 무대. 나를 찾아보세요.


그때는 몰랐는데

나는 나도 모르는 새 “비교”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비교는 몸에 해롭다.

특히 나보다 월등한 누군가가 대상이라면.

아니, 박재범과 나를 비교했었단 말이야?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비교를 멈췄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대단해진 건 아니다.

다만 다리 떠는 습관 같은 안 좋은 버릇을 떼낸 정도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될 수 없는 나’를 기준으로

‘이미 충분히 살아온 나’를 심문하고 있었다.

꽤 잔인한 취조였다.


오늘도 SNS에는 멋진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제는 그것을 조금은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딱히 탁월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나에게 제공된

하나의 콘텐츠 정도로 만끽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런대로

비교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안 하게 되더라.


SNS는 잘 만든 예고편 같다.

다들 인생의 하이라이트만 30초로 편집해 올린다.

그런데 그걸 하루 종일 보다 보면

내 인생은 늘 본편이 아니라 삭제 장면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요즘 나는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아, 또 누군가 잘 살고 있군’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 이상은 상상하지 않는다.

상상은 대체로 나에게 불리하게 작동하니까.


아무튼 간에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나대로의 매력이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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