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를 필요

by 제이켠
“혹시 그분, 맞죠?”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분이라니.

“아 네 맞습니다. 하하”라며 뒤통수를 긁기도 애매하고,

“아닌데요”라고 하자니 너무 매정하다.

출장 차 간 박람회장에서

대뜸 “파이팅!”을 외치고 가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행기 옆자리에서

내가 “그 래퍼”임을 알아보고

한참 동안 그의 업계 동향 얘기를 나누며

인도양을 함께 건넌 적도 있다.

생각해 보니 그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진 않았다.

모두 “제이켠”이라는 이름을 알았을까

갑자기 궁금해지는군요.


누군가 알아봐 준다는 건 참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직장에서 첫 알아봄(?)을 당했을 때는

꽤나 난감했다.

그날은 사무실이 이사를 하는 날이었다.

최선을 다해 꼬질꼬질한 복장으로

짐이나 나를 생각이었다.

그때 온, 새로 합류하기로 한 수석님이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을 줄이야.

나를 알아보고 왜 여기 계시냐는 질문에

뭐라 답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딱히 내 복장이 신경 쓰이진 않았다.

그가 말하길, 처음 사무실에 들렀을 때는

긴가민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얼굴을 가까이 마주했을 때

그는 마침 이때다 싶었나 보다.

그는 내가 “제이켠”임을 확인하고 나서야

회사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데요~. 쇼미 더 머니 아시죠?”
거기서 이번에 어쩌고저쩌고.


약간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회사에서는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감출 생각도 없었다.

조용히 내 할 일이나 잘하자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정체가 탄로 났다.

이렇게 얘기하니 무슨 히어로가 된 것 같아

그것 또한 난감하군요.

음악을 취미로 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일개 직원으로서

감히?라는 느낌을 줄 것이라 예상했지만

회사 대표님과 이사님은 좋아해 주셨다.


“찾아봤더니 좋은 노래 많던데요.”

“다음 쇼미 더 머니 시즌엔 휴가를 어떻게 줘야 되나 고민이 됩니다.”


이런 스몰토크가 가능해졌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누군가 아는 체해 주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꼈었다.

나는 성향상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조용히 흘러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나를 알아본다는 것은 여러모로 곤란하다.


그랬던 적이 있다.

늦은 밤, 지하철과 버스가 몽땅 끊겨

심야버스를 탄 적이 있다.

굉장히 초췌한 몰골이었는데

뭘 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느낌상 비에 젖은 길고양이 같은 이미지였던 것 같다.

내가 타야 할 버스는

심야에 긴 코스를 돌아 멀리까지 가기 때문에

배차 간격이 굉장히 컸고,

집까지 가는 시간도 매우 오래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원래 심야버스는 좌석제 버스인데,

내가 탄 버스는 그런 종류는 아니었다.

일반 버스였기 때문에 자리가 차면 서서 가야 했다.

그날따라 사람이 많았고,

나는 앞사람과 마주 보는 자세의 자리에서 서서 가야 했다.


“저 혹시… 제이켠 맞죠?”


나를 마주 보고 있던 승객이 말을 걸어왔다.

그런 질문은 예/아니오 외에는

선택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 네.”
심야버스 사건(?) 근처 시절의 제이켠

하고 어색한 표정의 인사를 했다.

나는 그때 당시에 [Lucky J]라는

혼성 팀으로서의 활동을 마친 직후였고,

그 시기 즈음 근처에 TV에도 나왔었다.

그런 주제에 조용히 있는 것을 선호하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갸우뚱하다.

아무튼 그래서 나를 알아봐 준 게 아닐까.

그 인사만을 나누고

긴 시간 버스를 타고 갔다.

무려 마주 본 채로.

지금 생각해도 머쓱하다.


“혹시 괜찮은 라멘집 아시나요?”
같은 질문이라든지,
“한국의 출산율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나누며

하하 호호하며 가는 게 더 나았으려나.

여하튼 쓸데없는 생각이다.

그날, 차 유리창에 비친 초라한 내 얼굴,

못나 보이게 내려간 입꼬리.

이런 감정들을 담아

“의문부호”라는 곡을 낸 적이 있다.


I pray for mommy
I pray for love I pray for my…
조금 필요할 것 같아
머릿속에 질문들을 지운 생각 없는 밤이
사실 알아보는 사람들이 반갑지는 않았네
늦은 밤 심야버스나 초라한 날 지하철에
앉을 때 비친 창가에 내 얼굴의 무표정이
못나 보인다는 걸 문득 알았을 때
기운이 빠진 몰골이 돼서
샤워기에 물 흠뻑 맞았을 때
괜히 지칠 때가 있어
괜히 지칠 때가 있잖아
좋은 생각만 하기에도 내가 가진 시간은 짧아
”의문부호“ 가 수록된 앨범

사실 이 노래를 추천해 주고 싶지는 않다.

그날의 축축했던 기분의 무게가 다시 느껴질 것 같아서.

나는 그날 알았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게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너무 또렷하게 알아보고 있었다는 걸.

초라한 얼굴, 처진 입꼬리,

말없이 버티고 있는 몸.

그걸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밤이었는데,

나는 괜히 거울 같은 창문에 나를 비춰봤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는 ‘알아줘야 할 것’보다

‘굳이 알 필요 없는 것’이 더 많다고.

세상에는 많은 [모를 필요]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버스 유리창에 날 비춰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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