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에 대한 소회

by 제이켠


20,015원.

이 정도의 금액이라면

서울에서 한 끼 식사를 하고

저렴한 커피 한 잔을 더할 수 있는 정도다.

첫 월급을 받기 하루 전,

내 통장에 남아 있던 잔고였다.


나는 음악을 해 오면서

사실상 마이너스의 사업을 지속해 온 셈이었고,

돌아보니 빚이 잔뜩 쌓여 있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한 곡을 만드는 데 100만 원이 들면,

리턴되는 수익은 10만 원 미만이었다.

무려 -90퍼센트의 사업을

고집스럽게 이끌어 온 셈이다.

‘언젠가는…!’이라는 심정으로.

지금 생각하면 나는 뭘 기대했던 걸까.

미련하다고 해야 맞지 않을까.

“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는데, 뭐가 문제인 걸까?”

그러나 나는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우리가 실패했을 때 느끼는 비참함은

단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패배자’라는

낙인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했었나.

그 문장을 읽고도 나는 별로 위로받지 못했다.

온전히 나 혼자만의 실수로

그런 일이 벌어졌기에 결국 스스로 감당해야만 했다.




수입이 0인 기간이 길어졌다.

놀랍게도 이 기간은

내가 ‘제이켠’으로서

<쇼미더머니 11>이라는 무대 위에서

나름의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대중의 박수를 받은 직후였다.

무대의 조명은 뜨거웠지만,

무대 뒤편의 고지서는 아무 말 없이 차가웠다.

수입이 없다는 사실보다,

수입을 계속 계산하게 되는 하루가 더 길었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아무 일도 안 한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분명히 나는 부지런히 살고 있는데,

그렇게 뒤로 밀려나듯이

나의 하루들은 서로를 구분하지 못한 채

비슷한 얼굴로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번뜩 정신이 들었다고나 할까,

몸 어딘가에 달린 위기 감지 센서 같은 게 울렸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했다.

오랫동안 음악 관련 일만 해온 터라

본격적으로 난처해졌다.

다행히 사회에서 수줍게 내밀만한

기술사항 한 줄 정도는 있었다.


그나마 갖고 있던 영상 촬영과 편집.

이마저도 내가 음악을 할 때

제작비를 아껴 보겠다고 독학으로 연습했고,

그렇게 어쩌다 습득한 것이었다.

어쩌다 습득한 기술로

몇 개의 캠페인을 찍을 기회가 있었고,

그게 포트폴리오가 되어주었다.

그렇다고 면접 합격 같은 일이

어쩌다 일어날 리는 없었다.


60군데가 넘는 회사에 이력서를 냈지만

답장은 한 군데도 오지 않았다.

그 어떤 업체라도

“이력 없음 – 나이 마흔”

이라는 두 가지 조건만으로

충분히 망설여질 게 분명했다.


[건설업 기초 안전·보건 교육 이수증]

그걸 받아

일용직 건설 현장에서라도 일할 심산이었다.

그 교육 현장에서

삼성 반도체 공장의 헤드헌터가

잠시 광고를 했었다.

열정적으로 업무와 처우에 대해 설명했고

명함을 돌렸다.

나는 아직도 그 명함을 갖고 있다.

그냥, 어떤 상징 같은 것이었다.

내 절박함을 꾹꾹 눌러 담아

종이 한 장으로 만든 셈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르바이트를 지원했던 회사였다.

원래는 A업무로 지원을 했는데,

우연히 담당자가 내 포트폴리오를 보고

영상 파트에서 일할 생각이 없냐고 대뜸 제안을 했다.


그렇게 지금의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말 그대로 운이 좋아서였다.

마흔 인 주제에 어떤 회사에서의 경력도 없었으니,

내가 면접관이었어도 곤란했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팀장님은 처음의 내 업무 능력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럴 법도 했다.

사회생활은 처음이었고,

나 자신도 내가

나사 하나 빠진 의자처럼 삐걱대는 게 느껴졌으니.

내가 래퍼로 활동했었다는 건 감추고 싶었다.

왜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 당시에

출근하는 하루하루가 기뻤어야 정상인데,

매일이 어떤 파도 같은 슬픔에 부딪히는 기분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치열했고,
예전에 유행하던 평일 시트콤같이 절박했다.


한참 동안 찾아 헤매며 원했던 수입.

첫 월급을 받았을 때 나는 무덤덤했다.

월급이라는 건 이상한 숫자다.

나를 평가한 결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얼마나 잘 버텼는지에 대한

영수증에 가깝다.

꿈 대신 지불되는 가격이라기보다는,

당분간 계속 살아도 된다는 허가증 같은 것.


통장에 찍힌 숫자를 내려다보는 내 표정은

마치 아스팔트 위를 굴러다니는 빈 페트병 같았다.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치이다가,

결국 차도 구석에 멈춰 선,

누가 봐도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그런 페트병 말이다.


소회라는 말은 솔직히 조금 어렵다.

그렇다고 “첫 월급에 대한 기억”이라고 하자니

그리다 만 그림 같았다.

기억 서랍 안에서 서류를 하나 꺼내,

그 위에 소복이 쌓여 있는 먼지를

‘후-’ 하고 불어낸 뒤,

당신에게 슬그머니 내밀어 본다.


이것이 한때 나를 지탱했고,

동시에 나를 무너뜨렸던

나의 아주 사적인 소회라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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