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과 커피의 프렌드쉽

by 제이켠

“우리가 커피 마시려고 일하지,

일하려고 커피 마시냐! “


뭔가 앞뒤가 뒤바뀐 문장 같지만,

한가로운 래퍼가 주 업무(?)이던 시절

직장인 친구와 장난스럽게 나눴던 대화다.

커피에 한참 빠져 있을 때였으므로

하루에 3잔 정도는 기본이었다.

나는 수면의 질이 좋지 않은 편이었는데

그럴 만도 했다.

다른 데서 이유를 찾았었다니 참.


잠깐 친구가 운영하는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 친구는 커피에 조예가 깊은 친구였다.

직접 로스팅을 해 커피 대회에 출품도 하는.

그때 그 친구가 내려준

볶은 지 얼마 안 된 커피 맛을

지금도 기억한다.


꽃향이 나는,

거의 차에 가까운 커피였는데

비싼 원두였기 때문에

한잔을 판다고 가정하면

5만 원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 고급의 커피를 맛본 이후

스페셜티 커피를 찾아다니는

분수에 맞지 않은 짓을 했던 기억이 있다.


모두가 일하는 평일 낮 2-3시쯤,

주말이면 늘 붐벼

가기 힘든 그런 커피숍에서

일상을 피해

한가로움을 만끽하는 것.

햇볕은 따듯했고

책을 읽거나 특별한 무엇을 하지 않고도

그 자체만으로 만족스러웠다.


나는 9 to 6의 직장인이 되었고,

이제는 그런 시간이 드물어졌다.

한동안은

그 평일의 여유를 못 누린다는 사실에

어떤 비통함과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도 있다.


나는 그 생활이 좋았다.

한가한 번화가를 어슬렁거린다던지

어딜 가도 차가 막히는 시간대를

자유롭게 피할 수 있었다.

갑자기 일본에 가고 싶어 진다면

비행기 티켓이 저렴한 날짜를

제약 없이 고를 수 있었다.


“그레이 랩”이라는

봄이 되면 벚꽃이 아주 만개하는

뒤뜰을 가진 카페가 있는데,

나는 그 카페 단골이었다.

벚꽃이 절정에 이를 때면

그 뒤뜰을 보기 위해

카페 오픈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였다.

그레이랩의 환상적인 뒤뜰


거기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작업도 하며 통유리창 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나는 시간을 쓰고 있었던 건지,

시간을 피해 다니고 있었던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커피는 충분히 맛있었지만,

그걸 천천히 마셔도 되는 사람인지에 대해선

확신이 없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게으르기”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여백을 채우고자 노력했다.


아득히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루의 형태가 완전히 바뀌었다.

직장인이 된 내 아침 루틴은


* 6시 기상 - 7시 회사도착

* 아침 식사

*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과 영어공부

* 9시 업무 시작


이렇게 매우 평범하게 이루어지는데,

아침의 커피 한잔은 하루의 시작에 큰 도움이 된다.

회사 탕비실에는 검은색 투박한 커피 머신이 있는데

그 뒤로 큰 창문이 있어

나름대로 그때의 기분을 조금은 느낄 수 있다.


내가 직접 얼음을 담고

버튼을 누른 다음

에스프레소가 내려오는 걸 확인하는

그 리추얼은 어떤 위안을 준다.

동시에 창밖으로 계절의 변화도 확인할 수 있다.

그날그날의 기분 또한 같지 않은데,

울적할 때도 상쾌할 때도

커피는 늘 함께였다.

이 정도 친밀함(?)이 쌓였다면

가히 프랜드쉽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애틀이라 말하지 않으면 눈치 챌수 없는 라떼


개발이 되기 전 우사단로의 챔프커피

인사동 사람이 붐비던 블루보틀

지금은 유명해진 합정의 엔트러사이트

멋쟁이들이 많았던 새 검정

내 작업실 바로 위의 다스이스트프로밧

상수역의 커피워커스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 곳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엄청나게 마셔댔군요.

“카페인 중독”을

굉장히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 정도 세월이라면

프랜드쉽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이쯤 되면 커피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질 정도다.

“넌 그때 이래 보였고, 그 선택은 아쉬웠어”

뭐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해주지 않을까


어쨌거나 확실한 건 예나 지금이나

나에게 커피는 땔 수 없는 존재다.

그 오래된 우정은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늘 변치 않았다.


언젠가는 연차를 내고

일찌감치 집을 나서

아무 계획 없이 커피숍에 앉아 있어야겠다.

커피 마시려고 일을 한다는 말을

지킬 수 있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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